메시지

한나의 기도 (사무엘상 1:1-28)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6. 7. 19. 10:27

한나의 기도

 

사무엘상 1:1-28

 

사무엘서 상하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등장한 초대 왕 사울과 가장 위대한 왕 다윗을 기록한 장대한 서사시입니다. 그런데 이 장대한 서사시의 시작 부분인 사무엘 상 1장과 2장 앞부분은 남자가 아닌 여자 한나의 이야기와 그녀의 찬송시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볼 말씀의 주인공입니다. 한나는 두 왕 사울과 다윗을 기름 부어 세운 선지자 사무엘의 어머니이며, 그녀의 기도와 찬송시로 유명합니다. 한나가 살던 시대에 대해, 사무엘상 3 1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이 말씀은 그 시대의 영적인 상황을 한 마디로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어둡고 암울했습니다. 말씀이 없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구별된 거룩한 특성들을 잃어버리고, 주변의 이방인들과 다름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암울했던 시대에 한나는 이스라엘의 가장 영화로운 시대의 서막을 여는 샛별과 같았습니다. 그 어두운 시대에 한나는, 더구나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특별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에 소개된 그녀의 배경은 그리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삶은 오히려 오늘날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불행한 조연과 같았습니다. 한나는 엘가나라는 남자의 두 아내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아내 브닌나는 자식이 있었으나 한나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브닌나는 늘 이런 한나를 격동시키며 괴롭혔습니다. 남편 엘가나는 한나에게 특별한 애정을 보이며 그녀를 위로하고자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이런 엘가나의 애정도 한나의 괴로움을 달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한나의 자식 없음에 대해서, 필시 브닌나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한나를 사랑하시지 않는 증거라고 하면서 한나를 괴롭혔음이 틀림이 없습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의 5,6절 말씀에는 한나의 무자함에 대해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곧 한나에게 자식이 없음은 하나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으셨기 때문입니다. 한나에게는 남편의 특별한 사랑도, 남들보다 갑절이나 되는 분깃도 기쁨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어느 누구도, 어느 무엇도 채울 수 없는 깊고도 깊은 공허함과 가난함이 있었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크고 깊은 결핍을 채울 수 있는 분이 오직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괴로운 마음을 안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10,11절은 한나의 기도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한나가 막장 드라마의 불운한 주인공이 되지 않고, 이스라엘 역사에 샛별 같은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된 것은 마음이 괴로울 때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고 통곡했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자신을 격동시키는 브닌나와 다투거나, 자신의 괴로움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속 없는 남편과 씨름하지 않았습니다. 또 한나는 자신을 이렇게 곤란한 상황에 버려두신 하나님을 원망하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자포자기한 채 죽기를 기다리지도 않았습니다. 한나는 모든 괴로움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이를 하나님께 쏟아 부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기억하시고, 돌아보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씨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씨름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혼자 씨름을 한다면 매우 우스꽝스러울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상대가 있어야 전력투구를 할 수 있으며, 밀고 당기는 정교한 기술들을 사용할 수 있으며, , 지든 이기든,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기도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상대하는 씨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주 보이는 사람과 싸움을 합니다. 심지어 혼자서는 평화롭게 잘 지내다가도, 누군가가 나타나면 싸울 거리를 만들어서 싸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보이는 사람들과 싸우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씨름했습니다. 이는 한나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었습니다. 한나는 자식 문제를 포함하여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긍휼하셔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셔서 자신의 막힌 태라도 능히 여시고 아기를 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한나의 기도는 한 많은 여인이 허공에 대고 하는 넋두리가 아니었습니다. 한나의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하여 전력을 쏟는 씨름이었습니다. 사람과의 씨름은 이기든 지든 결국 지는 싸움입니다. 하나님과의 씨름은 이기든 지든 결국 이기는 싸움입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아들을 주실 것을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긍휼히 여기사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의 평생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릴 것을 서원하였습니다. 그리고 후에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를 들으사 아들을 주셨을 때, 그녀는 서원한 대로 아들 사무엘을 젖을 떼자마자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2 1-10절에서 한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이 기도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이 찬송은 한나의 마음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들 사무엘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잘 보여줍니다. 한나에게 있어서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자, 그녀의 마음 속에 있던 모든 응어리들이 눈 녹듯 사라지고, 그녀의 깊고 어두웠던 공허함이 하나님의 빛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녀가 얻은 것은 아들 사무엘이기보다 여호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자신에 주신 아들을 하나님께 되돌림으로 이 하나님을 감사하고 경배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한나는 모든 괴로움을 하나님께 쏟아 부은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축복과 기쁨도 하나님께 쏟아 부었습니다. 한나에게 하나님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녀는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가졌으며, 그래서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웠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드리면서도 감사와 찬송이 넘쳤습니다. 비록 한나가 하나님께서 아들을 드렸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한나를 사무엘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나의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 이는 곧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나를 받으시고 높이십니다. 이는 곧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나의 기쁨이 되시며 나의 구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는 사단입니다. 마귀가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며 말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태복음 4:3). 또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보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조롱하며 말했습니다.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누가복음 23:34).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40일을 굶으시기도 하시고, 또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극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마귀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네가 그리스도이거든하며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듯이, 또 브닌나가 한나를 격동하듯이,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을 때, 마귀는 다가와서 우리를 시험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데 어찌하여 이런 일들이 생기는고?” 고난 자체가 견디기 어렵지만, 우리에게 더 큰 고통은 이런 고난이 있을 때 우리 마음 속에 생기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과 불신입니다. 이러한 의심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사단이 뿌린 것입니다. 사단 마귀가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며 격동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험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토로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 자신을 마음 중심으로 기뻐하며 경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수 마귀의 궤계를 이기고, 하나님 안에서 승리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이렇게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한나가 매우 오랫동안 이 인생 문제를 겪었다는 것입니다. 한두 달이 아니고, 일이 년도 아니고 아마도 여러 해를 변함 없이, 오히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고통에 시달리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들은 한나에게 결코 무의미한 시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이 오랜 인고의 세월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소망이 더욱 견고해졌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18절에 보면, 한나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후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한나가 가진 문제는 아들을 가졌을 때 해결된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견고해졌을 때 해결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리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성숙해지고 완성되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는 빨리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매우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천천히 일하십니다.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은 한나의 태를 닫으신 분도, 또 그 태를 여신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한나가 고통 중에 있을 때도 사실은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하고 아름답게 계획하시고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한나는 더 이상 근심하거나 금식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녀의 닫혀 있는 태도, 브닌나의 격동함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이제 한나의 태를 여실 때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시작과 끝이 다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섭리는 나와 하나님 사이의 씨름을 통해서 진행되고 완성됩니다.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리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를 기다리십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두드려 열기를 기다리십니다. 나를 온전히 주님께 드리고 맡기기를 기다리십니다. 다시는 주님을 떠날 생각이 들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고 경배하기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가 남자든 여자든, 노인이든 젊은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어둡고, 나의 인생 문제가 깊고, 주위의 사람들이 실망스러울지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인내하며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우리의 믿음이 완성될 때, 우리는 이미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우리 각자에게 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