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산 자와 죽은 자 (누가복음 24:1-12)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6. 8. 1. 04:22

산 자와 죽은 자

 

누가복음 24:1-12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생명의 하나님이시며, 예수님은 생명의 길이시며, 성경은 생명의 책입니다. 성경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는 요한복음 3:16절 또한 생명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한편 역설적으로 기독교는 죽음을 나타내는 십자가로 표시됩니다. 우리는 생명에 대해서 말하지만, 그 생명은 죽음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성경이 말하는 생명죽음의 참된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록한 누가복음 24장 말씀을 통해서 이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후 사흘째 되던 날 이른 새벽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한 무리의 여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사용할 향품을 가지고 그 무덤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는 놀라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막았던 돌은 옆으로 굴려져 있고,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또 그곳에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있었는데, 이들은 여자들에게 뜻밖의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박히고 제 삼 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이들은 예수님을 산 자라 칭하였습니다. 사흘 전에 십자가에 고통스럽게 죽으셨던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산 자또는 살아있다는 말을 씁니다. 숨을 쉬고 움직이면 살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살아있다는 말은 아직 살아있는 상태또는 아직 죽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살아있다는 말 자체가 죽음을 예견하는 말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죽음 안에 있으며, 죽음을 기다리는 한계적인 생명입니다. 연약한 생명이며, 늘 두려움과 불안에 쫓기는 생명입니다. 또 사람들에게서 죽음이란 생명이 소멸되는 것이며 모든 것이 끝나는 상태입니다. 곧 죽음은 생명의 반대가 되는 것이며, 무섭고 두려운 것입니다. 사람들은 살아 있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음을 피하며 살 길을 찾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너무도 강해서 아무도 이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생명과 죽음의 의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안에서 생명과 죽음은 우리의 이런 일반적인 이해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생명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4:4절에서 예수님은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이 말씀은 사람의 생명이 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있음을 말해줍니다. 더하여 신명기 30:19,2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 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해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 이 말씀들은 우리에게 생명과 죽음에 대한 매우 중요한 진리들을 가리켜 줍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진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생명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인가가 살아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자극을 가합니다. 자극을 주어서, 그 자극에 반응을 하면 살아있는 것이고 반응을 하지 않으면 죽은 것입니다. 또 손발이 제대로 기능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이리 저리 움직여봅니다. 그리고 손발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지면 제대로 기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몸에 붙어있더라도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이렇게 시험하십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 또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가를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움직이면 살아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은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 대하여살아있거나, “하나님께 대하여죽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생명은 이것입니다. 산 자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는 자이며, “죽은 자하나님께 대하여 죽어있는 자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는 자는 죽었더라도 생명이 있는 자이며,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있는 자는 살았더라도 생명이 없는 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진정한 산 자이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순종하시되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시고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8).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은 예수님께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훨씬 더 큰 하나님께 대한 경외함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하나님께서 살아계셨으며, 어떤 것도 예수님을 이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이 하나님 앞에서 사시고 하나님 앞에서 죽으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항상 산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생명의 비밀은 예수님 안에서 완전하게 나타났지만, 우리는 성경 곳곳에서 그 예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애굽 왕 바로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않고 애굽을 떠났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자기를 죽이려 하는 사울 왕을 오히려 보호하였습니다. 이들이 산 자가 된 것은 이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생명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살 길을 찾아 몸부림을 치지 않고, 죽음의 두려움과 고통을 참으며 하나님께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살아 있는 자는 죽음도 더 이상 죽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죽음은 생명의 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은 매우 역동적이며 생산적인 생명 활동입니다. 요한복음 12:24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또 요한복음 10:11절에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하십니다. 이 말씀들은 예수님께서 죽으신 죽으심이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한, 그리고 양들의 생명을 구하시기 위한 주님의 사랑의 수고임을 말해줍니다. 더 나아가 십자가 죽으심은 예수님께서 영광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며,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길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죄로 인한 저주에서 생명에 이르는 축복으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이제 죽음도 축복이 된 이 마당에,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살아계시면, 내가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 안에 살아계신 만큼,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살아계신 만큼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내 안에 하나님께서 충만이 살아계시며 또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게 역사해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죽고 내 안에 하나님께서 사셔야 함을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가 사는 길은 믿음으로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사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사 나를 생명 길로 인도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설사 그 길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일지라도, 목자 되신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바라보며 순종하여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내 안에 주님께서 살아계시면,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죽음도 결코 죽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죽음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며,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사랑하고 섬기는 자가 됩니다. 진정한 산 자가 됩니다. 우리는 내 안에 주님께서 사신 만큼만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만큼만 산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생명은 죽음을 이기는 참 생명입니다. 다시는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아침에 무덤을 찾은 여인들은 예수님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삶, 아주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갑자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그 모든 행복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를 통해 예수님의 생명이 그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며,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계획하신 일입니다. 이 여자들이 사랑하는 주님은 산 자이십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그들의 행복을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는 울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는 죽은 자를 찾아 무덤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는 산 자 되신 예수님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을 죽도록 사랑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기 전에 여러 번 자신이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항상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깨어서 그 날을 예비하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이야 말로, 모든 산 자와 죽은 자가 심판을 받는 날입니다. 그 때에 우리 안에 주님께서 계시면 영생으로, 그렇지 않으면 영벌로 인도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주님께서 살아계신 만큼 산 자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주님 앞에서 해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살아계신 하나님께 드려지며,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산 제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 우리 각자가 진정한 산 자가 되며, 영생의 소망을 가진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