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이삭을 줍는 룻 – 은혜를 부르는 삶 (룻기 2장)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6. 11. 29. 00:48

이삭을 줍는 룻 은혜를 부르는 삶

 

룻기 2

 

은혜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것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과 친절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많이 받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찌 보면 하나님께서 공평하지 않으셔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렇지 않음을 봅니다. 하나님은 항상 은혜로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런데 그 은혜가 어떤 사람에게는 은혜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은혜를 감사히 받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많은 은혜를 베푸시지만, 그렇지 않는 자에게는 은혜의 물이 막힙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우리가 공부할 말씀의 주인공인 룻은 은혜 받은 자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룻의 삶은 한마디로 말해서 은혜를 부르는 삶이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항상 그 은혜 안에 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러 중요한 교훈들을 전해줍니다.

 

오늘 룻기 2장 말씀을 통해서 룻이 가르쳐주는 은혜를 부르는 삶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은혜를 하나하나 (저는 한톨 한톨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감사히 받고 소중히 다루는 것입니다. 둘째는, 은혜를 베푸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겸손히 행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받은 은혜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받은 은혜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이 룻을 통해서 증거된 은혜를 부르는 삶의 비결들입니다.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즉 이 비결들은 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는 받은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자기 눈에 차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무시하는 것입니다. 또 은혜를 당연히 여기며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교만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받은 은혜들을 잊어버리거나 자기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은혜로 받은 것들을 독차지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매우 인색하게 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실상 많은 은혜를 받고 있으면서도 가난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그 은혜를 쫓아내거나, 또 은혜 밖으로 뛰쳐나가버린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룻은 모압 여인” (2) 또는 이방 여인”(10)으로 소개됩니다. 그녀는 본래 모압 사람이었지만, 모압으로 이주한 유대인 남자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젊은 나이에 죽어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역시 과부인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서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유대 땅에서 룻은 이방인이며, 또 과부였습니다. 그녀에게는 섬김이 필요한 늙은 시모 외에 의지할 사람도 없었으며, 갖고 있는 재산도 없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그녀는 복이 없는 불쌍한 여자였습니다. 하지만 룻은 이런 자신의 형편에 대해 절망하고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은혜를 부르는 아름다운 삶을 살았습니다. “태생적으로 은혜를 받은유대 여인들보다도 더 축복된 삶을 살았습니다. 심지어 그녀의 이름이 예수님의 계보에 기록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이렇게 은혜를 받은 것은 앞에서 설명한 은혜를 부르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룻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감사히 받고 이를 소중하게 다루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2절 말씀에서 룻이 시모 나오미에게 말합니다.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때는 보리 추수가 시작되는 철이었습니다. 룻은 자신과 시모의 먹을 양식을 얻기 위해서 추수하는 밭에 나가 이삭을 줍고자 했습니다. 이삭을 줍는 것은 아주 작고 사소한 일입니다. 그런 일을 하는데 시모의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고, 누군가의 은혜를 입을 만한 일도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뒤를 따라 다니며 떨어진 이삭을 줍는 일은 여자로서의 품위와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룻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을 위해 시모의 허락을 구하며, 또 누군가의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룻에게는 밭에 떨어져있는 이삭을 줍는 것도 은혜였습니다. 그녀는 이삭 줍는 일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으며, 심지어 그 일을 위해 누군가의 은혜가 필요함을 알았습니다. 당연히 그녀는 감사함으로 이삭을 주웠을 것이며, 또 모은 이삭들을 매우 소중하게 다루었을 것입니다.

 

은혜를 부르는 삶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땅에 떨어진 한 톨의 보리처럼 그것이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말입니다. 룻은 땅에 떨어진 이삭을 줍기 위해서 바닥을 샅샅이 살피고, 또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야 했습니다. 시간과 정성과 수고를 쏟아 부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녀가 모으는 것은 그냥 밭에 떨어져 있는 보리 이삭이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모으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베푼 은혜들이었습니다. 룻에게는 보리 한톨 한톨이 다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녀는 마치 금싸라기를 줍듯이 그렇게 보리 이삭들을 주어 자루에 담았습니다. 아마도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는 한 톨의 보리가 갖고 있는 의미가 남다를 것입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햇볕과 바람과 비와 또 농부의 수고를 통해 생겨난 결실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작지만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매우 경이로운 것이며,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들은 다 이와 같습니다. 그것은 한 톨의 곡식처럼 작고 사소해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값진 것이며, 소중하게 다뤄야 할 것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셋방을 얻어 살 때였습니다. 어느 날 방의 천정 한 구석에 곰팡이가 생겼습니다. 이를 본 집주인은 제 앞에서 수건에 물을 묻혀 방바닥 구석에 있는 먼지를 조심스럽게 닦아냈습니다. 그리고 수건에 묻은 먼지를 제게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매일 열심히 방바닥의 먼지를 깨끗이 닦아내면 천정에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다네.” 천정에 생긴 곰팡이와 방바닥에 있는 먼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손이 닿는 방바닥을 소중히 여기고, 그곳에 쌓인 먼지를 열심히 닦으며 깨끗하게 관리해줄 때, “손이 닿지 않는 천정도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지금 내 앞에 두신 작은 은혜들을 감사함으로 소중히 받아 잘 관리할 때, 우리 영혼이 하늘을 향해 열리며 우리를 향해 밝게 웃으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룻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겸손히 행하였습니다. 룻의 겸손함은 자신이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이며 동시에 은혜가 간절히 필요한 자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룻이 밭에서 이삭을 주울 때, 그 밭의 주인이며, 부자이며, 유력한 자인 보아스의 눈에 띄었습니다. 보아스는 이미 룻에 대해서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룻이 자기 밭에서 안전하게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선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지난날 행했던 모든 착한 일들을 말하며 그녀를 축복했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보아스의 이 축복에 대해 룻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시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룻은 자신을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가장 낮은 자들보다 더 낮게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하며, 보아스의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보아스의 말이 자신을 위로하고 기쁘게 하였다고 말하며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지만 그 은혜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에 큰 가뭄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먹을 것을, 까마귀를 통해 그리고 한 가난한 과부를 통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것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자신의 삶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온통 둘러싸여 있으며 이것들에 심하게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겸손히 행해야 합니다. 늘 자신이 은혜 받을 자격이 없는 자이며, 동시에 은혜가 간절히 필요한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자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렇게 겸손해야 합니다.

 

보아스의 은혜 아래 룻은 저녁까지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주운 보리 이삭을 떨었을 때, 한 에바 곧 35리터나 되었습니다. 룻이 가져온 보리를 본 나오미는 놀라며 물었습니다.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너를 돌아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에 룻은 보아스가 자기를 위해 베푼 친절에 대해 말했습니다. 룻은 자신이 열심히 일을 해서 그 많은 곡식을 주웠다고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렇게 크게 축복하셨다고 두루뭉실하게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룻은 구체적으로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보아스의 이름을 대며, 이 모든 것이 그가 보아스로부터 은혜로 받은 것임을 시모에게 고하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보아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보아스와 룻 사이의 은혜의 관계는 더욱 발전하여 장차 룻은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룻이 보아스로부터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이를 기념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룻은 자신이 은혜로 받은 것들을 시모 나오미에게 드렸습니다. 은혜를 받는 자들은 또한 은혜를 베푸는 자들입니다. 이는 자기가 받은 은혜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빚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은혜로 받은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항상 은혜로 또 으로 남아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필요한 사람에게로 흘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복음 10:8b) 하시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b)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흐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흐르는 것입니다. 고인 물이 썩듯이, 흐르지 않는 은혜는 악취가 나고 볼썽사납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하나님의 일을 훼방합니다. 은혜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깊이 살펴야 할 것은, “내가 무엇을 받았는가?”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주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보아스는 1절에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이며 유력한 자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유력한 자란 재산이 많은 사람이나 용기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보아스라는 이름 자체가 “In him is strength” 힘 있는 자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룻에게 보아스는 우리에게 그리스도 예수님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친척이시며, 그 능력과 부유하심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자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석같이 빛나는 은혜들이 주어졌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룻과 같은 은혜를 부르는 삶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 안에 있는 더 깊은 은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며, 참으로 복 있는 자의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19-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