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출애굽기 14장)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출애굽기 14장
칼 바르트(Karl Barth)라는 유명한 독일 신학자가 있습니다. 이분이 쓴 “하나님의 의(The Righteousness of God)”라는 에세이가 있는데 이 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수천 가지 방식으로 우리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을 만들었다.” 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자신들의 문화, 종교, 도덕률 등의 틀 속에 가두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함으로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없게 된 오늘날의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습니다. 이 말은 창세기 말씀과 대비를 하여 한 것입니다. 창세기 1:27절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이 성경 말씀과 칼 바르트의 말을 함께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는데, 사람은 사람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을 만들었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이것이야말로 오늘날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신앙하는 데서 갖고 있는 문제들 중 가장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성경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은 사람들과 다르시다는 것과 또 사람들이 이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있음을 거듭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 55:8,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또 로마서 11:34절은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질문하며, 고린도전서 2:11절은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말씀합니다. 이렇듯이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매우 제한되어 있으며 심지어 여러가지 면에서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 제한된 지식으로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단정하고 그 생각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대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편견들이나 고정관념들”을 깨뜨리고, 겸손히 “하나님에 관한 책” 곧 성경이 하나님께 대하여 전하는 계시의 말씀들에 마음의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앞에서 인용한 성경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어떤 점들에서 다르신가를 설명하면서 “생각,” “길,” “마음,” “영” 등을 언급합니다. 이런 것들은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이며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이며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로부터 모든 것이 나옵니다. 모든 능력, 모든 선하심, 모든 진리, 모든 창조물들, 그리고 우리 사람들, 이제까지 일어난 일들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 그리고 영원한 심판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다 한 원천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이며 “하나님의 영”입니다. 아무도 그 앞에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면 곧 그것이 길이 되며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의 길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이사야 3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려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선지자 이사야가 이 글을 쓸 당시에 애굽은 앗시리아와 함께 세계를 양분하고 있던 강대국이었습니다. 강대국 애굽은 많은 수의 마병들과 병거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앗시리아의 공격을 받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의 “강력한 군대”의 도움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대신 애굽을 의지하는 이스라엘을 책망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여줍니다. 곧 “하나님은 영”이시며, “사람은 육체”입니다. 사람은 육체로 일하지만 하나님은 영으로 일하십니다. 사람의 능력은 그 육체에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그 영에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뒤에서 쫓아오는 애굽 군대를 막으시며 또 앞을 가로막은 홍해를 갈라 길을 내십니다. 이것은 “사람의 육체”와 “하나님의 영”이 맞붙은 사건입니다. 모세의 지도하에 애굽을 빠져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닷가에 진을 쳤습니다. 어쩌다 보니 앞에는 바다요 뒤로는 끝없는 사막이 펼쳐진 곳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와 광야 사이에 갇혀있다는 사실이 애굽 왕 바로에게 보고되었습니다. 이를 들은 바로는 그들을 놓아준 것을 후회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시 잡아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군대를 소집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와 바다 사이에 갇힌 것이나, 바로의 군대가 그들을 추격한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획책”하신 것이었습니다. 본문의 4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한 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 온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으로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 17,18절에서도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이 사건은 애굽 군대 곧 “사람의 육체”와 “하나님의 영”이 맞붙은 싸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대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납게 자신들을 추격해오는 애굽 군대를 보고 극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하나님께 울부짖고, 모세를 원망하며, 또 애굽을 떠나온 것을 후회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이 말씀은 조금 위로가 되긴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으로서는 참으로 믿기가 어려운 말씀입니다. 애굽의 군대는 눈 앞에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반면, 영이신 하나님은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설사 “영”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이 막강한 군대 앞에서는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마른 잎”에 불과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바람 같은” 하나님의 영이 저 육중한 근육질의 군인들과 군마들 곧 “육체들”을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지 잘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19절에서 30절까지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애굽 군대를 멸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는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으로 애굽 군대를 막으시고, 또 큰 바람을 일으켜 바닷물을 밀어내시고 바다 가운데 마른 땅을 드러내어 길을 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건넌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좇아 바다 한 가운데로 들어온 애굽 군대를 불 구름기둥으로 어지럽히시고 또 양쪽에 벽처럼 서 있던 물을 다시 원래대로 흐르게 하셔서 그들을 모두 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람과 물과 불이 다 함께 움직이면서 그 뜻을 이루었습니다.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이 불가항력들(Acts of God) 앞에서, 애굽 군대야말로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마른 잎과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로 길을 막자 그들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고, 하나님께서 물로 덮자 그들은 코로 숨을 쉴 수 없어 다 죽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육체”는 결코 “하나님의 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전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도, 아무것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닫으시면 열 자가 없으며, 하나님께서 여시면 닫을 자가 없습니다. 하늘도, 땅도, 물도, 불도, 바람도 모두 이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사람은 힘을 기르고, 갑옷을 두르고, 무장을 하고, 말을 타더라도 다만 “육체”일 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권세를 가졌더라도 “하나님의 영”과 싸워서 이길 수 없습니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그의 군대로 이끌고 유럽 대륙의 대부분을 정복하였습니다. 하지만 도버 해협 건너편에 있는 영국과 넬슨 제독의 지휘 아래 있는 영국 함대는 나폴레옹에게도 “넘사벽”이었습니다. 또 러시아를 쳐들어가 모스크바까지 진격했지만 온 도시에 화재가 발생하여 프랑스 군은 한 겨울에 본국으로 철수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병력이 러시아 대평원의 혹한 속에서 얼어 죽거나 굶어 죽었습니다. 이로 인해 나폴레옹은 몰락하고 세인트 헬레나라는 작은 섬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섬에 있는 동안 나폴레옹은 군인으로서의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특히 주의할 일은 지금까지 나를 실패시킨 여러가지의 장애는 인간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모두 원소(elements)로부터 왔다는 것이다. 즉 남쪽에서 나를 좌절시킨 것은 바다였고, 북쪽에서 나를 좌절시킨 것은 모스크바의 불과 러시아 겨울의 혹한이었다. 이렇게 물과 공기와 불, 즉 모두가 자연이었다. 이것은 불가항력의 자연에서 생겨난 세계 혁신의 적들이다. 자연의 여러 문제들이야말로 인간의 힘으로는 풀 수가 없는 것이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실패와 좌절의 원인을 물과 공기와 불, 곧 자연의 원소들에서 찾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 따르면 이 자연의 원소들 뒤에는 그것들을 뜻대로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계십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 싸우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이제 우리는 두려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잠잠히 서서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하나님께서 영이시며, 사람은 육체라는 것입니다. 그 영은 무한한 생명이고 능력이지만, 사람의 육체는 “문자 그대로” nothing입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죽은 영을 살리시고, 또 하나님의 영을 우리 속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우리 육체 가운데 부어주신 것은 우리 육체 속에 갇히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육체로부터 자유롭게 하시며, 이제 하나님의 영을 따라 생명과 능력의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육체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을 만들고 예배하는 천박한 짓을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영이 살아서 성령께서 성경 말씀으로 계시하시는 참 하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람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그 영광스럽고 신비로운 하나님의 세계로 빠져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