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천명을 먹이신 예수님 (마가복음 8:1-10)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2. 7. 18. 01:24

일곱 개와 물고기 마리로 사천명을 먹이신 예수님

 

마가복음 8:1-10

 

우리는 전에 마가복음 6:30-44절을 통해 다섯 개와 물고기 마리(오병이어) 5000명을 먹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공부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일곱 개와 물고기 마리(칠병이어) 4000명을 먹이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건은 가지 차이점들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고 있습니다. 일종의 반복 교육과 같은 것입니다.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있는 교훈들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것들 하나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목자 (the Shepherd)” 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목자란 오늘날 흔히 쓰는 말로 지도자(leader)”입니다. 성경은 가히 지도자에 관한 이라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위대한 지도자들이 여럿 나옵니다. 대표적으로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했던 모세와 여호수아 장군이 있습니다. 다윗 또한 이스라엘의 목자요 지도자였으며, 그를 이어 등장하는 여러 왕들 또한 우리에게 리더십(leadership)”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닫게 해줍니다. 사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지도자들과 그들이 보여주는 리더십은 세상의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리더십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지도자들이 아니라, 오직 목자 되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올바른 리더십을 배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심은 그가 우리를 자신의 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무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는데 그들에게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오병이어 때와는 다르게 지금 예수님은 데가볼리 지방의 갈릴리 호숫가에 계십니다따라서 여기 모인 무리들은 근처에 사는 이방인들이거나, 아니면 갈릴리나 유다 지방으로부터 길을 걸어 사람들(3)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내가 저희를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중에는 멀리서 사람도 있느니라.” 예수님의 사랑은 먼저 양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들의 어려운 사정들을 자세히 아시고 이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어려운 문제들에 마음을 빼앗겨서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불쌍하기는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개가 있느냐?” 물으셨을 그들은 “() 일곱 개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의 혈기왕성한 젊은 제자들에게 일곱 개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양들을 불쌍히 여기시느라 자신과 제자들의 불쌍한 처지를 잊으셨습니다. 양들의 배고픔을 염려하시느라 자신의 배고픔을 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 속에는 오직 불쌍한 양들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들을 그냥 불쌍히 여기시기만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문제를 자신의 여기셨습니다. 3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저희를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하십니다. “내가 저희를 굶겨 집으로 보내면……” 예수님께서는 양들이 길에서 기진한다면 그것은 그들을 굶겨 보낸 예수님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에게 양들을 먹일 책임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그곳에 데려오신 것이 아니고 그들이 스스로 따라온 것입니다.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400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의 먹을 것을 예수님께서 홀로 책임지시는 것은 부당한일이었습니다. 오늘날의 관례를 따르자면, 오히려 사람들이 지도자이신 예수님께서 드실 음식을 준비해서 드려야 함이 마땅합니다. 먹을 것도 없이 와서 삼일 동안이나 예수님 옆에 붙어 있은 그들이 책망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문제가 누구의 탓인지를 따지는데 시간을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문제를 모른 하시거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지도 않으셨습니다. 양들을 먹이는 것은 전적으로 예수님 자신의 일로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감당하시고자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먹이려고 하심을 제자들은 바로 그렇게 없는 이유 찾아 들고 나왔습니다. “ 광야에서 어디서 떡을 얻어 사람들로 배부르게 있으리이까?” 그렇습니다. 제자들의 생각에 예수님께서 하려고 하시는 일은 불가능한 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개가 있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들에게 있던 일곱 개를 예수님 앞에 내놓았습니다. 4000명의 무리들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 것이 없는 양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를 받으시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작은 생선 마리를 받으시고 역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문제 앞에서 사람들은 자주 불신과 두려움에 빠집니다. 불신과 두려움은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만들고 이로 인해 보는 눈도 함께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자기 손에 가진 것도 보지 못하고, 자기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도 보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렇게 없는 이유들 선명하게 보이고, 그래서 깊은 불신과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불신과 두려움으로 인해 마음이 어두워지는 일이 절대로 없습니다. 예수님께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계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빛이 되시며 예수님의 능력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빛과 능력 안에서 보시며, 일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보잘 없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에게 들고 나온 일곱 개와 물고기 마리를 다시 하나님 아버지께로 들고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칠병이어는 4000명의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이 일곱 광주리를 가득 채울만큼 풍요로운 하나님의 축복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습니다.

 

참된 지도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참된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 사람들은 언제나 예수님의 삶의 절대적인 의미이며 목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이 처한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가장 무거운 것은 죄와 죽음의 문제입니다. 세상의 지도자들에게도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 요구되는 기본적인 자질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전을 가져야 하며, 의사 소통을 하며, 동기 부여를 알고, 솔선수범해야 하고, 성공에 이르는 길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자질들을 가만이 생각해보면, 세상의 리더십은 사람을 이용하는 기술입니다. 심지어 그것들이 예수님의 리더십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리더십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며, 세상의 리더십은 사람을 이용하는 기술입니다. 예수님의 리더십의 목적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리더십의 목적은 성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이용하여 성공하시는 대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실패 택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낮아지시고, 버림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끝까지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10-15 말씀은 예수님의 리더십과 세상의 리더십을 분명하게 구별합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뿐이요 내가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지도자의 사랑하는 마음 우리가 어떻게 있을까요? 위에 인용한 요한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님을 비롯하여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지도자들의 중요한 특징은 그들이 불쌍한 사람들 같이 되어 그들과 함께 고생하고, 심지어 그들의 문제를 떠안았다는 점입니다. 히브리서 11:24-26절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사무엘상 22:2절은 다윗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윗)에게로 모였고 그는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 자가 사백 가량이었더라.” 말씀은 모세와 다윗이 어떻게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모세는, 세상의 눈으로 보자면, 이미 지도자 권력자의 자리에 올라 있었습니다. 그는 공주의 아들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아래 많은 부하들을 두고 쉽고 편안하게 지도자의 삶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지도자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공주의 아들로서 누릴 있는 모든 특권들을 포기하고 대신에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 “그리스도를 위해 능욕 받는 택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순수하게 사랑한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은 당시 도망자신세였습니다. 그를 미워하는 사울왕의 위협을 피해 광야와 산속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환난 당한 사람들, 빚진 자들,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도망다니는 다윗의 입장에서 이들은 달갑지 않은 불청객들이었습니다. 혼자 도망다녀도 사울왕의 칼날을 피하기가 어려운 판국에, 400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함께 다닌다면 쉽게 눈에 뜨일 아니라 이동하는 속도도 매우 느려집니다. 끼니마다 먹을 것을 준비하는 것도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들은 정말 도움이 안되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불쌍한 사람들이 도망다니는 형편의 다윗에게 모인다는 것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줍니다. 다윗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 가졌습니다. 그는 아마도 그에게 오는 사람들을 어떤 이유로도 거절하지 않고 환영하고, 기뻐하며, 그들의 억울한 사연들을 들어주었을 것입니다. 마치 자식이 고향집에 듯한 푸근함과 평안함을 느끼게 해주었을 것입니다. 양이 목자를 따르듯 아주 자연스럽게 다윗은 그의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지도자가 것입니다.

 

지도자의 사랑하는 마음 그가 양들을 위해 감당하는 고난과 희생 통해서만 보여줄 있습니다. 성경에는 반대가 되는 나쁜 예도 나옵니다. 누가복음 11:46절에 예수님께서 율법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들이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손가락도 짐에 대지 않는도다.” 율법사란 하나님의 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은 다름이 아니고 사랑입니다. 따라서 이들이 선생이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양들을 사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어려움을 함께 하며 그들의 짐을 대신 지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반대로 행동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지기 어려운 짐을 지우고, 자신은 손가락도 짐에 대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선생이나 지도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양들을 늑탈하고 생명을 빼앗는 도적들에 불과합니다. 양들을 위해 희생과 고난을 감당하지 않는 지도자는 결코 참된 지도자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리더십이 세상의 리더십과 구별되는 하나의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심은 주님께서 양들을 사랑하시는 마음과 통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양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리더십의 목표는 성공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지도자들은 항상 무엇이 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성공을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가?”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물론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지도자들은 성공 도달하는데 도움이 되는 유능한 자들을 원하며, 외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성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사람을 내버리고 등을 돌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는 성공이야말로 그들에게 하나님 같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리더십의 목표는 성공 아닙니다.  예수님의 리더십의 목표는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사람들을 지키시고, 돌보시고, 구원에 이르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과업들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수행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양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 구원하시는 것이 주님의 인생의 목표가 되십니다 (요한복음 17:12, 18:9). 예수님께는 생명 우주보다 귀하며 하나님과 같이 경이롭고 무거운 존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떤 영혼도 무시하지 않으시며 소망을 끊지 않으십니다. 심지어 그가 돌이킬 없는 죄에 빠졌더라도, 예수님께 대해서 원수가 되었더라도, 사단 마귀의 종이 되었더라도 그를 향한 사랑과 구원의 노력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이렇게 하심이 바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순종하심이 예수님께서 가지신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쏟아져내려오는 밝은 빛과 능력의 원천이 됩니다. 4000명의 무리들을 앞에 두고, 그들이 배불리 먹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일곱 개와 물고기 마리를 들고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정말 폭의 아름다운 그림과 같습니다. 이것은 기적이라기보다는 목자 예수님께서 그의 양들을 위해 베푸신 순수한 사랑이라고 해야 것입니다.

 

목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리더십의 동기 양들에 대한 사랑이며, 주님의 리더십이 지향하는 목적 양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체를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믿음과 경외심으로 감당하십니다. 예수님의 전체가 영혼에게 드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치 아흔 아홉 마리를 들판에 마리 잃은 양을 찾아 헤매는 목자와 같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주님은 4000명의 영혼들을 사람 사람 돌보십니다. 그들을 취급하시는 일이 절대로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리더이시기보다는 영혼의 목자가 되십니다. “나의 목자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예수님의 친밀하신 사랑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인도하심을 깊이 알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순금으로도 조각할 없는 주님의 순수하고 순결한 사랑이 우리의 빛이 되고, 평화가 되고, 기쁨이 되고, 생명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