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히 흐르는 물
마리아, 에스더!
다윗왕이 지은 유명한 시편 23편을 기억할 것이다.
시편 23:1-2절 말씀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여기서 "쉴만한 물 가"는
영어로는 "quiet water" (NIV) 또는 "still water" (KJV)라고 번역되어 있다.
곧 "잔잔히 흐르는 물"이라는 말씀이지.
잔잔히 흐르는 맑은 물 가의 푸른 잔디에 누워있는 양떼들을 상상해 봐라.
참으로 평화스러운 광경이지.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우리가 가진 "평화"란다.
하지만 이 말씀과 참으로 대조가 되는 말씀이 있어.
이사야 8:6-8a는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라야의 아들을 기뻐하나니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곬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치리라."
이 말씀에서 나오는 물은 "잔잔히 흐르는 물"이 아니고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mighty flood waters of the River)"다.
여기서 "하수 (the River)"는 지금의 유프라테스강을 말하고,
그 당시 유프라테스강 유역을 지배하던 강대국 앗수르 또는 앗수르 왕을 상징한다.
이 이사야서의 말씀에 따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 (gently flowing waters of Shiloah)"을 버렸다.
실로아의 물이란 예루살렘에 있는 "실로암 못"을 말한다.
요한복음 9장에 예수님께서
나면서부터 소경이었던 한 사람의 눈에 진흙을 이겨 바르시고
가서 눈을 씻으라고 보내신 그 "실로암 못"이다.
실로암 못은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연못인데
그 물은 거기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고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기혼 샘(Gihon Spring)이라는 곳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이다.
이 샘과 실로암 못 사이에 수로들(channels)이 있어서
그 수로를 타고 물이 흘러 실로암 못에 저장된다.
기혼 샘은 아마도 물이 콸콸 솟아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Wikipedia에 보니 "intermittent spring"라고 되어있다.
물이 항상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솟아나고 어떤 때는 그렇지 않고 그랬던가보다.
그러니 이런 물이 수로를 따라 흐를 때도
참 잔잔하게 흘렀을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이라고 한 것이 이해가 되지.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렸다.
왜 그랬을까?
이것을 이해하려면 열왕기 16장을 읽어봐야 돼.
열왕기 16장은 유다 왕 아하스에 관한 기록이야.
보통 유다 왕들과 이스라엘 왕들은
크게 좋은 왕(하나님을 경외한 왕)과 나쁜 왕(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왕)으로 나뉘는데
아하스 왕은 나쁜 왕 그룹에 속한 사람이야.
어느 날 아람 왕 르신이
이스라엘 왕 베가(위에서 말한 "르말라야의 아들"이란다)와 연합해서 유다를 쳐들어왔어.
그러자 아하스는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람을 보내서 구원을 요청했단다.
앗수르 왕은 아람의 수도 다메섹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아람 사람들을 포로로 끌어가고, 또 아람 왕 르신도 죽였어.
유다 왕 아하스는 앗수르 왕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
그가 있는 다메섹까지 그를 찾아갔어.
그런데 그곳에서 아하스 왕은
아람 왕 르신이 제사를 지내는 단(altar)를 보고 반해버린거야.
그는 그 단의 자세한 모양을 적어서
이것을 사람을 시켜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고 그대로 만들게 했어.
그리고 다메섹에서 돌아온 아하스 왕은 그 단에 제사를 올렸어.
원래 그 자리에는 놋(bronze)으로 만든 단 즉 놋 단(bronze altar)이 있었는데
이 단은 원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만든 거야.
열왕기상 8:64절에 보면 "여호와의 앞 놋단이 작으므로..."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아마도 이 놋 단은 크거나 화려하지 않고 오히려 작고 소박했던 것 같아.
거룩하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한 것인데도 말이야.
반면에 유다왕 아하스가 다메섹에서 본 아람 왕 르신의 단은
열왕기하 16:15절 말씀에 "이 큰 단 위에..."라고 하는 것을 보면
크고 화려했던 것 같아.
이것을 보면 무엇이 유다왕 아하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짐작할 수 있지.
여호와의 전에 있던 놋단은 작고 초라한 반면
아람 왕 르신이 우상에게 제사 지내는 단은 크고 화려했지.
이 크고 화려한 제단에 눈이 먼 그는
작은 놋단은 옆으로 치워버리고 그 자리에 큰 새 단을 만들었어.
그리고 그 위에 많은 제물들을 불사르고, 소제를 드리고, 피를 뿌리고 ...
이를 기뻐하지 않으신 하나님께서는 후에
아하스 왕이 의지하던 앗수르를 통해 유다에게 큰 고난을 주신다.
마치 큰 홍수가 나듯이 앗수르의 대군이 유다 온 땅을 점령하고
예루살렘까지 몰려와 그 성을 포위하였다.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라야의 아들을 기뻐하나니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곬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치리라"(이사야 8:6-8a)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거야.
이 말씀에서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과 "여호와 앞의 작은 놋단"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그리고 "르신 왕의 크고 화려한 제단"과 대조가 되지.
사람들은 눈에 보기에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잔잔한 것보다는 뭔가 dynamic하고 exciting한 것을 좋아하지.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잔잔히 흐르는 물"과 같단다.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사랑의 말씀들
예수님의 몸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물과 피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며 공급해 주시는 생명의 물
이 은혜들은 항상 우리를 깨끗하게 씻으며
우리 영혼에 쉼과 만족과 기쁨을 주시는 "잔잔히 흐르는 물"이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충실하게 공급해 주신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주시지.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잔잔히 흐르는 물"과 같단다.
그런데 화려한 이 세상을 볼 때
이 하나님의 은혜가 초라하고 보잘 것 없이 보일 때가 있단다.
그리고 아하스 왕처럼 "하나님의 놋단"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은혜를 싫어하고
세상의 크고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길 때가 있지.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기쁨이나 만족을 주는게 아니야.
우리가 그런 것들을 사랑하고 그런 것들을 좇으면
오히려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가 밀려들고
두려운 파도가 우리의 목까지 차오르게 된다.
이것이 세상의 화려함의 정체다.
마리아, 에스더야!
너희들은 아직 어리고 또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많을 것이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주신 것들이 보잘 것 없어 보이고
화려한 세상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너희들은 절대로 "잔잔히 흐르는 물"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싫어하거나, 잊거나, 떠나거나, 버려서는 안 된다.
너희들도 알 것이다.
그 동안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너희의 영혼과 너희의 삶을 얼마나 풍성하게 축복하셨는지를...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감사하거라.
너희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하거라.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순종하는 삶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마리아, 에스더야!
조금 심심하더라도, 조금 초라해 보이더라도
늘 예수님 안에 거하거라.
주님을 즐거워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잔잔한 평화를 누리거라.
사랑한다 똘들아!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