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예수님
사랑하는 마리아, 에스더야!
큰고모가 방문한 동안
아빠가 정신이 좀 없었는데
이제 조금 여유가 생기는구나.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은
하늘의 별들처럼 셀 수 없이 많은 빛나는
진리의 말씀으로 가득하단다.
오늘 아빠가 하고 싶은 말씀 또한
그렇게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과 같다.
아빠의 마음 속에서 항상...
마가복음 6:45-5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밤에 물위를 걸어
제자들에게로 오시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그 전날 저녁에 예수님께서
오천명의 무리를 오병이어로 배불리 먹이신 후
제자들을 먼저 배에 태워 그곳을 떠나게 하셨단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육지에 남아서
무리들을 집으로 보내시고
산에 홀로 올라가셔서 기도를 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 없이 자기들끼리
배를 저어서 바다(갈릴리 호수)를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에게 어려운 문제가 생겼단다.
맞바람이 불어서 힘껏 노를 저어도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거야.
바람이 부니 파도도 심했겠지.
더구나 때는 한밤중이고
이미 바다 한 가운데까지 온 상태라 돌아갈 수도 없어.
제자들의 상황이 이해가 되니?
캄캄한 밤중에
넓은 바다 한 가운데서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는 가운데
거친 바람과 성난 파도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이들...
제자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아마도 몹시 두려웠을 것이다.
"어둠"이 그들을 덮고 있다.
아무도 그들을 발견할 수 없어.
또 그들은 바다 한 가운데 있었다.
어느 누구도 도움의 손을 뻗칠 수 없는 곳이지.
그렇게 어둠 속
바다 한 가운데서
조각배 한 척에 의지하여
사나운 바람과 성난 파도와 싸우고 있는거야.
참으로 절망적인 상황으로 보이지.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단다.
6:48절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이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은 제자들이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셨다".
또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이 말씀에 의하면
"깊은 어둠"도 "거친 바다"도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를 가로막을 수 없단다.
"어둠"이 제자들로부터 예수님의 눈을 가릴 수 없고
"바다"가 예수님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단다.
얼핏 보기에 제자들은
바다 한 가운데 홀로 버려진 것 같지.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단다.
실상은
조금 전 푸른 잔디 위에서
예수님과 함께 떡을 먹은 것처럼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품 안에 있고
여전히 그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이 그렇더라도
예수님께서 조금 심하신 듯 하다.
제자들이 바다 위를 걸어 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다"하고 소리를 지른다.
제자들이 놀랄만도 하지.
한 밤중에 바다 한 가운데서
그렇잖아도 몸과 마음이 지치고 두려운데
누군가가 물 위를 걸어서 옆을 지나가고 있다고 상상해 보거라.
예수님께서 좀 짓궂으시지?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을까?
물론 제자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시거나 훈련하시기 위함이지.
예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시는 걸까?
51,52절 말씀은 이렇다.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심하게 놀랐다.
바다 위를 걸어오신 것도 그렇고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친 것도 그렇고 ...
하지만 성경 말씀은 그들이 놀란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는다.
그들이 놀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떡 떼시던 일"이란
조금 전에 있었던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신 사건이다.
제자들은 이 "떡 떼시던 일"를 통해
무엇인가를 배웠어야 했고
또 그 배운 것을 이 경우에 써먹었어야 했다.
어둠 속 풍랑이 이는 바다 한 가운데서 말이다.
예수님께서 이 두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이지?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전능하신 구원자"라는 사실이다.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시는 일이나
바다를 걸어오시며 폭풍을 잠잠케 하시는 일은
모두 "불가능한 일들"이지.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불가능한 일들을 하신단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성경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훈련시키시는
한 가지 일관된 방향이 있단다.
무엇이냐 하면 "어둠 속에서 예수님(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마가복음 5:36절에 보면
병에 걸린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온 한 회당장에게
예수님께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신다.
그런데 회당장의 딸은 이미 죽었단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두려워 말고 예수님만 믿으라"고 하신다.
출애굽기 14:13절에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당시 그들은 홍해 바다와 그들을 쫓아오는 애굽 군대 사이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도 모세는 "두려워 말고 오늘날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한다.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란다.
바로 "두려움" 때문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자꾸 "두려워 말고"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다.
오늘 아빠가 얘기하려는 내용과
가장 관련이 깊은 성경 말씀은
아마도 요한복음 11장일 것이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유명한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해
유대로 가시려고 하자
제자들은 가려고 하지 않는다.
11:8절에서 제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요한복음 10:30,31절에 예수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시자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고 한 일이 있었어.
아마 이 일로 인해 제자들 마음 속에
돌에 맞아 죽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것 같다.
제자들의 마음 속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11:9절 말씀이다.
"낮이 열 두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고로 실족하느니라."
사람이 낮에 다니면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않고
밤에 다니면 빛이 없으므로 실족한다.
당연한 말씀이지.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빛과 어두움은 무엇일까?
빛은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이고
어두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요한복음 1:4절 말씀을 기억하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이 우리의 빛이란다.
왜 생명이 "빛"이 되는 것일까?
이는 이 생명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걷도록"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해 "유대로 가자" 하셨을 때
제자들은 "Yes" 하고 예수님을 따라야 했다.
하지만 "죽음의 두려움"이 그들을 가지 못하게 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시고자 하시는데
제자들은 죽음의 두려움으로 어두움 속에서 그만 "실족"한 것이다.
풍랑 속의 제자들도 마찬가지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바다를 건너 오셨는데
두려운 제자들의 눈에 예수님은 그들의 생명을 구원하실 "구원자"가 아니라
그들을 물 속에 가라앉힐 "물귀신"으로 보였다.
홍해 바다와 애굽 군대 사이에 갇힌
이스라엘 백성들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시기 위해 그들을 이곳으로 인도하셨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그리고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구원자"가 아니시고 "살인자"이셨다.
이것은 이들이
"생명의 빛"이 되시는 하나님을
그리고 예수님을 보지 않고,
그들을 "죽도록 두렵게 하는 어둠들"
곧 죽음과 바람과 바다와 홍해와 애굽 군대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둠 가운데 있을 때
이들은 항상 "실족"했단다.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하나님의 종을 핍박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등
여러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리아, 에스더야!
하나님은 "전능하신 구원자"이시다.
이것이 바로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전하고
우리를 설득하고, 우리가 믿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메시지인 것이다.
이 하나님 안에서는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단다.
하나님께서 워낙 강하시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할 수 없단다.
하나님께서 워낙 밝으시기 때문이다.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훈련하시는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하시는
key point가 무엇인지 알겠니?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대하시는 믿음은
깊은 어둠 속 풍랑이 이는 바다 한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들이 "예수님을 봄으로써" 그 마음이 밝고 기쁘고 즐겁기를,
그리고 그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쉽지 않겠지?
그래서 훈련이 필요하단다.
마리아, 에스더야!
세상에는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들이
참으로 많단다.
제자들이 경험한
어둠 속의 바람이 거센 바다,
나사로의 죽음,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한 유대인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한
검푸른 홍해 바다와
사납게 쫓아오는 애굽 병사들...
회당장이 경험한
사랑하는 외동딸의 죽음,
애곡하는 사람들...
우리 마리아, 에스더도
마음을 어둡게 하는 많은 어려움들을 겪어왔다.
또 앞으로도 겪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의미있는 것들이다.
한 가지 점에서 말이다.
곧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훈련"을 위해서 말이다.
어떤 어려움이나 두려운 일도
예수님의 빛을 보는 너희들의 눈을 가려서는 안 된다.
너희들의 눈은 항상 "빛"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마태복음 6:22,23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예수님이 빛이시라면
너희의 눈은 그 빛을 너희 안에 비추는 등불이다.
너희 눈이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세상의 어두운 것들에 사로잡혀 있으면
너희들의 마음이 늘 어두울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캄캄할 것이다.
너희 눈이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면
너희들이 마음이 늘 밝고 환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온통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무리 어둡고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말이다.
마리아, 에스더야!
요한일서 1:5절에서는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빛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이
영광스러운 것이란다.
심지어는 어둠도, 죽음도
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빛"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단다.
사랑하는 마리아, 에스더가
예수님 안에 있는 이 "빛"에 눈을 뜨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너희들의 평생에
이 빛을 바라보며,
이 빛을 의지하며,
이 빛의 인도하심을 받기를 기도한다.
너희를 위해 늘 기도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