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구원
마리아, 에스더야!
무더운 여름을 지내느라
고생이 많구나.
항상 건강하길 빈다.
에스더가 잘 먹어서 예쁘다.
이제 예전의 통통하던 볼이 제 모습을 찾은 것 같다.
너희의 영혼도 이처럼 살이 붙고
늘 윤택하기를 기도한다.
마리아, 에스더야!
성경은 "구원의 책"이고
예수님은 "구원의 주"이시다.
복음서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무엇으로부터
그리고 어떻게
구원하시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을 보면,
1장에서는
더러운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신다.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치료하신다.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신다.
2장에서는
한 중풍병자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를 일으키신다.
세리 마태를 부르시고 그와 함께 잡수신다.
제자들을 금식, 안식일 율법 등으로부터 보호하신다.
3장에서는
한 손마른 사람의 손을 고치신다.
많은 병자들을 고치신다.
4장에서는
제자들을 광풍과 거센 파도로부터 보호하신다.
5장에서는
군대귀신 들린 자를 온전케 하신다.
12년 동안 계속된 혈루증 걸린 여인을 낫게 하신다.
회당장의 외동딸을 죽음으로부터 살리신다.
6장에서는
오병이어로 5천명의 무리들을 먹이신다.
바다 위를 걸어 곤경에 빠진 제자들에게 가신다.
7장에서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귀신들린 딸을 고치신다.
한 귀먹고 어눌한 자의 귀를 여시고 혀를 푸신다.
끝이 없어...
정말 놀랍지 않니?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는 끝이 없단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말씀인 21:25절은 이렇게 끝맺는다.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줄 아노라"
예수님의 구원하시는 일은
지금도 매일 매 순간
우리들 가운데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단다.
그리고 우리는
이 예수님의 구원을
알고
기뻐하고
놀라워하고
자랑해야 한단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예수님의 구원을 잊고 지낸다.
혹시 성경에서처럼 문둥병에 걸렸다가 치료를 받거나
눈이 안보였었는데 보게 되었다든가
죽었다가 살아났다든가 하면
좀 더 실감이 날 것 같은데 말이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
장차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며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
이런 축복된 약속들도 당장은 잘 실감이 나지 않지.
마리아, 에스더야!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구원을 실감하고
어떻게 이 구원을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할까?
도대체 "구원받았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구원받았다"는 말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렇지!!! "무엇으로부터" 구원받았는지를 알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구원받은 것일까?
성경에 기록된 대로다.
죄와 죽음,
사단과 악한 영들,
질병들과 연약함들,
세상의 율법과 관습들,
여러 광풍 같은 시련들과 어려움들, ...
하지만
이런 것들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단다.
가장 두려운 것
우리가 반드시 피해야 할 것
우리가 반드시 구원받아야 할 것!
그게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의 진노"란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의 진노"란다.
"하나님의 진노"로부터의 구원이
참된 (true) 구원이고 궁극적인 (ultimate) 구원이란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다.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았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화해(reconciliation)"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화해"
사실은 이것이 성경의 주제이고
성경 말씀이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전해주는
그 "구원"의 핵심이란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원수"였었으나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무서운 심판자"이셨었으나
이제 "자애로우신 아빠"가 되시는 것이다.
마리아, 에스더야!
이것이 "구원의 전부"란다.
누가복음 17:11-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10명의 문둥병자들을 고치신다.
그런데 그들 중 오직 한 명만
예수님께 돌아와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서 예수님께 감사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그를 축복하신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10명이 모두 "문둥병"에서 구원을 받았단다.
하지만 오직 한 명만이 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감사했다.
예수님께서 오직 그에게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오직 그 사람만이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신을 불쌍히 여기시고
자신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기뻐한 것은
단지 문둥병이 나았기 때문이 아니란다.
사람들도 더러워 피하는 "문둥병자"를
사람들이 멸시하는 "사마리아인"을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피하시거나 멸시하지 않으시고
받아주셨기 때문이란다.
그것이 "더 큰 구원"이고 "가장 큰 구원"이란다.
마리아, 에스더야!
구원은 다른 것이 아니란다.
구원은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이란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과 화해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하나님과 평화롭게 지내는 것은 아니지.
너희들이 때로는 아빠와 다투고 삐치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 일에 바쁜 나머지
하나님을 잊고 지내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시지 않는다고
또는 내가 원하지 않는 일들이 생긴다고
하나님께 불평하기도 하지.
그래서 사도 바울 선생님은
고린도후서 5: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마리아, 에스더야!
그 진노를 우리에게 쏟지 않으시고
대신 예수님께 쏟으심으로써
우리 죄를 용서하고 우리와 화해하신
이 하나님의 "가장 큰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거라.
이 은혜를 잊지 말고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감사하거라.
그러면 너희들이 항상 "하나님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뿐이 아니다.
고린도후서 5:18,19절 말씀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화해하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화해시키는 일"을 맡기셨다.
세상에 나아가서 이 "화해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마리아, 에스더야!
"가장 큰 구원"은
너희가 하나님과 화해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너희의 아빠가 되신 것이며
너희가 아버지의 사랑하시는 딸이 된 것이며
너희 안에 이 "화해의 메시지"를 갖게 된 것이며
그리고 이 메시지를 전하는 "하나님의 사신(messenger)"이 된 것이다.
늘 이 은혜 안에 거하거라.
사랑한다 딸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