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마리아, 에스더야!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해서
특히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진리들은
무궁무진하다.
하나 하나가
별처럼 빛나고
진주처럼 값지고
맑은 시냇물처럼 우리 영혼을 적신다.
마리아, 에스더가
성경 말씀을 사랑하며
늘 가까이 두고 읽으며
자나 깨나 마음으로 묵상하기를 기도한다.
시편 1:1-3절 말씀 알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이 말씀은 그냥 듣기 좋은 시가 아니다.
변하지 않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너희들 평생에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므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풍성한 과실을 맺으며
행복한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성경 안에는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수 많은 생명의 말씀들이 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2:2절에서
바울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왜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님과
주님의 십자가만
알기로 작정했을까?
성경의 다른 말씀들은 무시한 것일까?
그런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5:39절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사실은 모든 성경 말씀이
다 예수님 안에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다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 있단다.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예수님을 배우는 것이고
또 예수님을 배운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배우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가복음 8:34)라고 하셨지.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십자가를 져야 한단다.
"십자가를 진다"는 뜻도 모르고
실제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으면
결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단다.
예수님께서 좀 봐주시지 않을까?
전혀 안 봐주신다.
십자가의 의미를
다 헤아릴 수 없겠지만
크게 네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님께 대해서,
사람들(죄인들)에 대해서,
예수님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원수 사단에 대해서다.
하나님께 대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순종"이다.
죄인들에 대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용서"다.
예수님 자신에 대해서 십자가는 "겸손"이다.
그리고 사단에 대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승리"다.
이것들은 모두
너무나 중요한 것들이며
너희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생명과 같은 것들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말씀을 잘 듣는 것이다.
너희들도 잘 알다시피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들이 그 말씀을 어기고 그 실과를 먹은 것이다.
사무엘상 15:22,23a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종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왕 사울에게 전한 말이다.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순종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담에게나 사울왕에게나
하나님께서 어려운 것들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의 욕심과 교만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보고
무서운 죄를 지은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순종"의 모델이다.
히브리서 5:8-9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님께서는
받으신 고난 곧 "십자가"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다.
또한 예수님께 순종하는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신다.
예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지는 것이다.
"고난들"을 통해 순종을 배우며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아무리 큰 고난이 따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죄인들을 "용서"하셨다.
죄를 용서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다.
우리가 잘 아는 주기도문 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마태복음 6:12)
이 말씀에 따르면
그냥 "죄 지은 자"가 아니고
"우리에게 죄 지은 자"라고 되어 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냥 나쁜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이다.
용서란 "나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의 그 잘못에 대해
원수를 갚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행복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심지어는 내가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말이다.
쉽지 않겠지?
예수님의 십자가는 "용서"의 모델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기도하신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누가복음 23:34a)
사람들은 그들의 악함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데
예수님은 그들을 그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속죄의 희생 제물이 되어 그냥 십자가를 받아들이신다.
예수님의 이 특별한 "용서의 사랑"에 대해서
로마서 5:6-8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마리아, 에스더야!
이 예수님의 "용서"는
우리가 할 수 있기는 커녕
사실은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용서"란다.
그럼에도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께서 하신 "용서의 사랑"을
이해하고 배우고 또 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매일 기도해야 한다.
죄인들에게 "용서"는
"산소 (oxygen)"와 같은 것이다.
숨을 쉴 수 있게 해준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세상에 "용서의 메시지"를 전하며
또한 "용서의 사랑"을 해야 한다.
우선은 이렇게 하거라.
진실된 마음으로 너희들이 가장 미워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거라.
그게 바로 예수님께서
너희를 위해 하신 것이다.
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자신을 낮추셨다.
십자가는 곧 예수님의 "겸손"이다.
예수님의 겸손을 가장 잘 표현한 말씀은 아마도
빌립보서 2:6-8절일 것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자기를 비어"라는 말씀을 NIV 영어 성경은
"made himself nothing"이라고 번역한다.
예수님께는 "나"라는 단어가 없다.
"그럼 나는?" 하시며 자기를 주장하지 않으신다.
자신을 "종"으로 낮추셨다.
하나님께 순종하실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셔서 그들을 섬기셨다.
마가복음 10:45절 말씀이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생애는
한 마디로 "섬기는 종"의 삶이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철저하게 낮아지시고
충성된 종의 삶을 사셨는지는
그 섬기신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철 없는 어린 아이들,
사람들이 더러워하는 하는 문둥병자,
간음하다 잡힌 여인,
죄인 세리,
온갖 병자들과 불구자들,
멸시 받는 사마리아 여인,
말귀를 잘 못알아 듣는 니고데모,
잘난 것 없이 높아지고자 다투는 제자들,
교만한 바리새인들,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
십자가 처형을 당하는 흉악범,
심지어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원수들,
교회를 핍박한 사울,...
세상 모든 사람들을 섬기시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람보다 더 낮아지셨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섬김에서 제외된 사람이 없다.
예수님은 "가장 겸손하신 종"이시다.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사단을 이기셨다.
사단의 가장 큰 무기는
"죄"와 "죽음"이란다.
성경 말씀에 보면
사단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장면이 몇 군데 있단다.
사단이 무슨 볼 일이 있어서
하나님께 갔을까?
바로 사람들을 "고소(accuse)"하기 위해서다.
욥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그의 종 욥을 자랑하신다.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욥기 1:8).
하지만 사단은 하나님께 욥을 고소한다.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사단은 욥이 하나님을 순전한 마음으로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들 때문에 다만 겉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이며
그 축복들을 빼앗으면 하나님 면전에 대고 욕을 할 것이라고 한다.
스가랴 3장에도 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사자 앞에 서 있고
그 오른 편에 사단이 서서 그를 대적(accuse)하고 있다.
여호수아의 죄(더러운 옷)를 고소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보호하신다.
그의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말씀하신다.
누가복음 22:31,32절에서도
예수님께서 베드로(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여기서도 사단은 베드로의 죄를 이유로 그를 내어달라고 하며
예수님은 베드로가 믿음을 지키도록 기도하신다.
이렇게 사단은
줄기차게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죄를 고소하고
그 생명을 청구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줄기차게 우리를 위해 변명하시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하시며
우리를 사단의 고소로부터 보호하신다.
이 하나님과 사단과의 씨름에서
사단의 무기는 "죄"이며
하나님의 무기는 "십자가"다.
로마서 3:25,26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말씀이 좀 어렵지?
우선 하나님은 의로우신(just) 분이란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공의(justice)를 행하신다.
공의란 "죄(sin)"를 "처벌(punish)"하는 것이야.
그런데 위 로마서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고
전에 지은 죄를 간과(unpunished)하셨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공의(justice)를 행하지 않으신거지.
죄를 벌하지 않고 대신 오랬동안 참으시니까.
이것이 바로 사단이 하나님과 싸울 수 있는 이유란다.
사단은 늘 하나님께 가서 불평을 한단다.
하나님! 당신은 의로운 분 아닙니까?
그런데 왜 죄인들을 참으시는 겁니까?
왜 그들의 죄를 처벌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의로우시며
공의를 행하신단다.
다만 오래 참으실 뿐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justice)"를 나타내셨다.
곧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셨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다.
사람들의 죄를 오래 참으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그 진노를 쏟으셨다.
그런데 그 진노를
죄인들에게 쏟지 않으시고
죄 없으신 예수님께 다 쏟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대신해서 벌을 받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화목 제물이 되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죄"를 속한단다 (redeem).
모든 인류가 지은
이전의 죄들과
앞으로 죄들을 다 포함해서 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그 죄를 가져가셨음을 믿는 것이다.
그렇게 믿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의롭게 하신다 (justify).
곧 "죄 없다"고 선언하신다.
이제 사단은 더 이상
하나님께 나아가서
고소할 수 없단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이미 공의(justice)를 행하셨기 때문이다.
공의(justice)를 행하시고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며 (just)
죄인들을 의롭게 하셨다 (justify).
이것들이 일어난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란다.
하나님께서 이기시고
죄인들이 구원받고
사단의 머리가 박살난 곳
그 곳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란다.
마리아, 에스더야!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며
죄인들에 대한 "용서"이며
예수님의 "겸손"이며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는 하나님의 무기란다.
아빠가 십자가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얘기했지만
우리가 깊은 의미를 다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노력할 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을 갔다.
당연하지!!!
십자가는 아프고, 창피하고, 무섭고, 죽는 거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십자가를 사랑해야 한다.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마태복음 16:21-24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시고
사흘만이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이 말을 들은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말렸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를 책망하시며 말씀하신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비록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라도
그가 십자가를 싫어하면
즉시 그 자리에서 "사단"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십자가를 싫어하면
예수님의 손을 벗어나
사단의 손에 떨어지기 쉽단다.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베드로를 책망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십자가는 예수님만 지시는 것이 아니란다.
예수님의 제자라면
예외 없이 다 져야 한다.
마리아, 에스더야!
십자가야말로
하나님의 뜻의 전부이며
예수님의 가르치심의 전부란다.
너희들의 소원들과 계획들
마음의 생각들
입의 말들과 행동들
곧 너희들의 모든 것들을 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들고 나가서
검증(test) 받아야 한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는지
너희들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있는지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고 있는지
사단 마귀를 대적하고 있는지
테스트 하거라.
마리아, 에스더가
십자가를 사랑하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