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에스더에게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2. 11. 29. 14:33

마리아 에스더,

오늘 하루도 잘 지냈니?
날씨가 덥구나.

오늘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이다.

하지만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아니면 용서를 하시긴 하시지만
특별히 미워하시는 죄라고 할까?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는 어떤 죄일까?

바로 "용서하지 않는 죄"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주기도문)에 보면
이런 기도문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마태복음 6:12)

이 말씀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지은 죄를 용서해준 사람이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힘들어하실 것 같다.

마태복음 18장에서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용서"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주인이 10,000 달란트 빚진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그 빚이 없는 것으로 해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에게 100 데나리온 빚을 진 친구를 붙잡아 옥에 가두었단다.

100 데나리온은 적은 돈이 아니야.
그 당시 1 데나리온이 일꾼의 하루 품삯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1 데나리온을 오늘날 100달러로 계산하면 
100 데나리온은 10,000달러나 되는 큰 돈이지.
그런 돈을 아직 돌려받지 못했으니 화가 날만도 하지.

하지만 주인이 그 사람을 위해 없는 것으로 해준 10,000 달란트는 그보다 훨씬 더 큰 돈이야.
당시 1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이었대.
그러니 10,000 달란트는 60,000,000 데나리온 또는 6,000,000,000 달러나 되는 돈이지.
오늘날 세상에는 이 정도 돈을 갖고 있는 부자들이 있지만
정상적으로 일해서는 수천년을 일해도 벌 수 없는 돈이지.

그러니 10,000 달란트에 비하면, 100 데나리온은 아주 미미한 금액이지.
그런데도 이 사람은 친구를 때리고 옥에 가두었단다.

이 일을 들은 주인은 그 사람을 불러다가 책망했다.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친구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이 주인의 말에서 중요한 것은 "불쌍히 여김"이야.
주인은 10,000 달란트 빚진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그의 빚을 없는 것으로 해 주었어.
하지만 이 사람은 100 달란트 빚진 친구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그를 가두었어.

자기가 받을 빚을 받기 위해 그 사람을 옥에 가둔 것이니
그 사람은 자신이 "정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지.
하지만 이 주인은 그를 "악한 종"이라고 부른다.

나쁜 사람이라는 거지. 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큰 죄(10,000 달란트)"는 용서하시지만
"작은 죄(100 데나리온)를 용서하지 않는 죄"는 용서하지 않으셔.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원하신 가장 큰 뜻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야.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용서하시기 위한 것이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큰 값을 지불하셔야 하는데
그게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희생하시는 것이야.

이 비유에서 보자면 "예수님"이 바로 그 주인이 포기한 "10,000 달란트"지.

누군가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인가를 희생해야 한다.
이 사람도 친구를 용서하기 위해서 "100 데나리온"을 포기해야 하는거지.
이것이 용서하기 어려운 이유란다.

나와 상관 없는 죄인들을 용서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란다.
왜냐하면 용서하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 또는 손해봐야 할 것이 없으니까?

하지만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에는 분명히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곧 "우리에게 죄 지은 자"라고 쓰여 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에게 죄를 지은 자를 용서하라는 것이다.

누가복음 11장에도 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 (누가복음 11:4)
이 말씀에서는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이라고 쓰여 있다.
그러니 한 사람도 빼 놓지 말고 다 용서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이니 우리가 순종해야 하겠지만
막상 부딪히면 "용서"처럼 어려운 일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야 말로 우리의 큰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며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길이요 생명이다.

장차 심판의 날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우리가 "얼마나 착한 일을 많이 했는가"보다도
우리가 "얼마나 용서를 많이 했는가"를 보실 것이다.

"용서"야 말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방법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가장 착한 일"이란다.

마리아, 에스더야,
세상에서 너희에게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말고
그들을 불쌍이 여기고, 용서하고, 사랑하거라.

그렇게 하기 힘들 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라.

마리아, 에스더가 "용서의 사람들"이 되길 빈다.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란다.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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