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리라 (출애굽기 7:1-13)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4. 4. 29. 11:04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리라

 

출애굽기 7:1-13

 

문화는 지도자의 그림자이다 (Culture is the shadow of the leader)”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의 문화는 조직이나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는 말입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조직이 공유할 분명한 가치를 정의하고, 함께 추구할 공동의 목표를 비전으로 제시하며, 개인들이 목표의 달성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비전이 성취될 때까지 조직 전체가 몸으로 움직이도록 인도할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이런 지도자들의 예를 찾는다면, 모세는 분명히 그들 하나일 것입니다. 모세는 노예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출하고, 40 동안의 광야 훈련을 통해 그들을 하나님의 군대 빚어낸 지도자 중의 지도자입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지도자가 있었을까요?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모세가 어떻게 이런 지도자가 되었는지를 배울 있습니다. 사실 모세는 이렇게 무리들을 이끌 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너무 늙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7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세가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나이는 80세였습니다. 은퇴를 했어도 예전에 했을 나이입니다. 그는 가진 재산도 지위도 없었습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지팡이하나 뿐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말도 못하고 자신감도 별로 없었습니다. 6:29-30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여호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바를 너는 애굽 바로에게 고하라하시자, 모세는 대답하기를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를 들으리이까?” 합니다. 모세가 다른 곳에서도 여러 자신이 입이 둔한 자임을 언급한 것을 보면 (출애굽기 4:10, 6:12) 그가 실제로 말을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이런 그가 어떻게 200만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애굽을 탈출하고 물도 떡도 없는 광야에서 40년을 버틸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의 1-2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아론은 대언자가 되리니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너는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로 이스라엘 자손을 땅에서 보내게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로 바로에게 하나님이 되게 하리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에서도 비슷한 말씀을 모세의 아론에 대해서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4:10-16절에 모세가 자신이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해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순종할 없다면서 버티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여기에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세가 그의 아론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모세가 역사적인 지도자가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하나님처럼 만드신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가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를 하나님으로 높이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리더십입니다. 하나님의 리더십은 부르신 자를 하나님 자신처럼 만드시는 것입니다. 애니메이션 영화 Lion King에서 아버지 무파사(Mufasa) 그의 아들 심바(Simba) 자신의 곁에 앉히고, 그에게 자신의 왕국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장차 그가 왕이 되어 다스릴 땅임을 얘기합니다. 비록 아들이 아직 어리고, 겁이 많고, 지혜가 없지만 아버지 무파사는 아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안에 숨어 있는 왕의 자질을 일깨우고 이를 다듬어갑니다. 왕이 하나의 왕을 키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심바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그림자는 스카(Scar) 그림자입니다. 스카에게 심바는 권력 다툼에서 제거해야 적이며 방해물이었습니다. 스카에게는 명의 공존할 없었습니다. 이런 스카의 궤계로 인해 아버지 무파사는 죽게 되고, 심바는 아버지의 죽음을 초래했다는 누명을 쓰고 왕국에서 쫓겨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리더십과 마귀의 리더십의 차이입니다.

모세는 히브리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아 바로의 공주의 아들 되어 궁중에서 자랐습니다. 사도행전 7:22절은 말씀하기를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배워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합니다. 게다가 그는 공주의 아들로서 당시 최고의 문명 국가이며 강대국이었던 애굽의 모든 보화 마음껏 누릴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1:26). 심지어 그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의감에 불타는 젊고 용감한 청년이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젊은 모세는 리더로서의 자질을 모두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이는 그가 바로의 그늘 아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그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결국 모세는 애굽 사람을 죽인 죄로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광야로 도주하였습니다. 그리고 40 동안 그곳에서 양을 치는 목자로 살았습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목자의 지팡이 하나 뿐이었습니다. 아마도 매일 들판에서 홀로 양들을 돌보느라 말하는 법도 잊어버렸던 같습니다. 그런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하나님이 되게 하리라!” “너는 아론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높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모세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들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모세의 지혜가 되시고 능력이 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모세는 세상의 그늘로부터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늘로 들어갔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향만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지도자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말씀하십니다. 일은 애굽 땅에 많은 이적을 행하시고 재앙을 내리시며,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 자손을 땅에서 인도해 내시며, 이를 통해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애굽 바로와 애굽 사람들에게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참으로 어마어마합니다. 대제국 애굽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압도하시며, 없이 많은 사람들과 짐승들을 압제에서 자유롭게 하시며, 이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의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일을 행하시기 위해 달랑 모세 사람 세우셨습니다. 애굽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인도하시는데 있어서, 모세는 약한 고리(weak link)”처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좀더 좋은 스펙의 사람을 여러 세우시는 것이 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직 모세 사람을 부르시고 세우셨습니다. 이를 위해 오랫동안 그를 인도하시고 준비하셨습니다. 아마 모세 자신도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쓰시기 전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자신의 모습을 깨달은 것은 그를 하나님처럼만드시고 세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입니다. 심바가 도망자의 삶을 접고 아버지의 왕국을 회복하기 위해 돌아가는 계기가 것은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면서였습니다. 모세는 오랫동안 실패한 애굽의 왕자라는 씁쓸하고 무서운 과거의 기억을 안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 깨우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행할 ,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일을 하실 있는지를 친히 증거하셨습니다. 모세는 약한 고리가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이렇게 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디모데후서 1:7-8). 복음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뒤엎으시며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 예수님을 통해 세우신 구원의 열차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아들 디모데가 거대한 열차를 운행하는 사람 되기를 바라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일깨웁니다. 디모데를 덮고 있는 것은 세상의 두려운 그림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드리우신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입니다. 그늘 아래서는 두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오직 아버지와 아들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둘은 모두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둘이 함께 세상을 구원하는 사랑과 능력의 역사를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오직 하나님의 그림자 아래 살며, 하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시기를 바로 앞에서 아론의 지팡이를 던져 그것으로 뱀이 되는 이적을 행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에 바로는 애굽의 박사들과 박수들을 불러 그들로 하여금 같은 이적을 행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켰습니다. 성경에서 지팡이는 권능(power)” 상징합니다. 이는 마치 왕의 (royal scepter)” 같은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미디안을 떠날 애굽으로 돌아갈 그의 손에 지팡이를 잡고 있었는데, 성경은 이를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일컬었습니다 (출애굽기 4:20).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하셨기 때문입니다 (4:17). 모세의 지팡이는 하나님의 능력이 땅에 임하게 하는 매개체(medium)”라고 있습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지팡이를 손에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런 지팡이를 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24).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희가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나으리리하십니다 (마가복음 16:17-18). 애굽의 박사들이 가진 지팡이들에 비해 모세와 아론의 지팡이가 얼마나 초라하고 투박했을 것인지를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아마도 애굽 술사들의 지팡이는 금과 보석으로 장식이 되어있고, 그것들의 머리는 이미 황금으로 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능력과 권세에서, 이것들은 하나님의 지팡이를 이길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과 기술이 전례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만큼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안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에 대해 무지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지팡이를 통해, 그리고 오직 모세의 지팡이를 통해 많은 이적을 행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통해, 그리고 오직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통해 그의 능력과 지혜를 보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세상의 아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은 어리석고 무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되십니다. 그리고 능력과 지혜는 너무나 영광스러워서 세상의 모든 능력들과 지혜들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우리는 지팡이의 능력을 오직 하나님의 그늘 아래서 경험하고 즐길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붙듦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자신과 세상에 임하도록 해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셨던 것처럼, 세상에 대해 우리를 하나님과 같이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팡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주시고, 예수님을 통해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시며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림자 아래 살든지 아니면 세상의 그림자 아래 살든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실패했지만, 하나님의 종으로 살면서 성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그렇게 위대한 지도자가 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그림자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번창케 하는 생명의 문화입니다. 우리가 매일 하나님 아버지 곁에 앉아,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비전을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예수님 안에 있는 능력과 지혜로 우리를 무장시키시고 구원의 열차를 끌며 영혼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일을 감당케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