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님 (요한복음 14:1-31)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2. 5. 23. 05:08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님

 

* 본 설교의 내용을 시각화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비디오 클립들을 보았습니다.

 

Aladdin - "Do You Trust Me?" Clip - YouTube

An Eaglet's First Flight - YouTube

The Eagle Mentality - Best Motivational Video - YouTube

 

요한복음 14:1-31

 

요한복음은 자주 독수리 복음이라고 불립니다. 이는 높은 하늘을 날고 있는 독수리의 시각으로 쓰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읽고 있으면, 마치 우리 자신이 독수리처럼 날개를 달고 하늘을 향해 높이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성경 말씀에도 자주 독수리의 이미지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9:4절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다 하십니다. 신명기 32:11-12절에는 마치 독수리가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다른 신이 없었도다합니다. 독수리의 보금자리 높은 나무 꼭대기나 가파른 절벽 위에 지어져 있어서 어린 새끼들에게는 더할 없이 안락하고 안전한 곳입니다. 어미 독수리가 시시때때로 먹을 것을 물어다 주니 배가 고플 일도 없습니다. 새끼 독수리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좋은 곳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영원히 보금자리에 머물 없습니다. 때가 되면 그들은 보금자리를 떠나서 어미 독수리처럼 하늘을 높이 날아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사냥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독수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되도록 태어난 것입니다. “보금자리 그들이 잠깐 머물도록 존재하는 것입니다. 만일 새끼 독수리가 보금자리를 떠나기를 싫어하면, 어미 독수리는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여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냅니다. 그러면 새끼는 자신에게 매우 훌륭한 날개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이와 같은 시각으로 이해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많은 시간을 예수님과 함께 보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그들에게 포근한 보금자리 같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매일 보호해주시고, 인도해주시고, 생명의 양식을 먹여 주셨습니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을 떠나서는 시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을 떠나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13:36절에 베드로는 근심스럽게 여쭈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근심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고아와 같이세상에 남겨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실상은 이제 그들이 날개로 하늘을 나는 독수리 때가 것입니다. 그들 스스로 하나님을 향하여 높이 날아오를 때가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세상으로, 땅으로 끌어내립니다. 예수님과 함께 그곳에 보금자리 만들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하늘로, 하나님께로 끌어올리십니다. 그곳에 그들의 아버지께서 계시며, 그곳에 참되고 영원한 보금자리 있으며, 그곳에서 그들은 주님 되신 예수님과 영원히 거하게 됩니다. 이제 제자들은 영원한 보금자리를 향해 날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땅의 보금자리를 박차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날개를 펄럭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하십니다. 원문의 말을 그대로 번역하면 너희의 마음이 근심에 싸이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 말씀입니다. 여러 염려들로부터 마음을 지키라 말씀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마치 (wall)” 같습니다. 잠언 4:23 말씀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16:32b에서는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합니다. 우리 신앙의 측면은 우리의 마음을 여러가지 염려들과 두려움들로부터 지켜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에 매우 서투릅니다. 오히려 우리 사람들은 아주 작은 일에도 낙심하고 걱정을 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염려와 두려운 생각들이 쉽게 마음 속에 틈타고 듭니다. 거의 항상 어떤 염려들과 두려운 생각들이 우리 마음 속에 점령군처럼 자리를 잡고 있어서, 우리를 근심하게 하며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대신에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을 주장해야 하는 것은 걱정과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삶을 다스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Mentality”라는 영어 단어가 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하기 쉽지 않지만 쉽게 말하면 사람이 생각을 하는 방식과 태도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의 방식과 태도는 사람의 삶에 그대로 반영되고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Mentality 삶의 방식과 태도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마가복음 6장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 없이 자기들끼리 늦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가 거센 바람을 만났습니다. 힘겹게 노를 저어가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위로 걸어 저희에게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는 유령이닷!” 하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컴컴한 늦은 , 풍랑이 이는 바다 가운데서, 유령을 만났으니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기록하기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이는 저희가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합니다. 성경은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당연하다 말하지 않습니다. “ 마음이 둔하여졌기 때문이라고 하며 그들의 마음을 탓합니다. 그리고 근본적인 이유로 그들이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 합니다. 앞서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5000명의 사람들을 먹이시는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경험을 통해 제자들의 마음 속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보는 새로운 Mentality 생겨야 했습니다. 성경은 이들의 두려움을 당연하게 여기는 대신 이를 매우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들은 당연히이런 상황에서도 절대로 놀라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치 두려움이나 근심따위는 이제 그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말이라는 투입니다. 그럴까요?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예수님의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이기 때문입니다. 독수리의 Mentality 가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하십니다. 우리는 언제 믿음을 필요로 할까요? 사실 보금자리에 누워서 엄마 독수리가 물어다 주는 먹이로 살아가는 새끼 독수리에게는 믿음 필요가 없습니다. 독수리의 mentality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둥지를 떠날 ,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세계로 몸을 던질 그에게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이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보금자리 떠나 하나님을 향하여 날개 짓을 시작한 독수리와 같습니다. 우리 속에 일깨워야 하는 것은 바로 안에 계신 하나님이시며, 안에 계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것은 우리 믿음의 대상이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 이시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홀로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우시며, 오직 홀로 우리의 믿음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독수리 새끼가 절벽 꼭대기의 둥지를 떠나면 바로 하늘입니다. 그에게는 하늘을 나는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실 , 그들을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는 광야 가운데로, 그리고 장대한 거인들과 견고한 성들이 지키고 있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마치 새끼 독수리가 아무런 보호 장치도 없이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 꼴입니다. 그렇게 하셨을까요? 이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 밖에 다른 이가 없음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이 오직 하나님을 향해서만 믿음의 날개 짓을 하도록 훈련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들을 구원하실 있음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땅에 발을 디디고 있어야 마음에 평안을 갖습니다. 이들의 눈으로 보기에, 하나님만을 믿는 삶은 매우 위험하고 불안정해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반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삶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고, 가장 자유롭고, 가장 흥분되며, 가장 고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으라 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점에 대해서 예수님을 믿어야 할까요? 물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또한 하나님 자신이 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일 있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만을 놓고 보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야말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되심을, 그리고 하나님을 우리에게 드러내는 유일한 진리 되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관한 , 제자들은 마치 어린 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여전히 모르는 두려운 이셨습니다. 제자 빌립은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에게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얼마나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하나님께서 그들의 장래를 위해 무엇을 예비하셨는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등등.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뜻과 사랑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자신을 철저히 비우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으로 채우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7절에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하십니다. 9절에는 나를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하시고, 10절에는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하십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드러내십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우리의 신앙의 목표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며, 하나님을 알아가며,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라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없이 많은 하나님들 있습니다. 하지만, 오직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증거하시고 드러내신 하나님이 바로 하나님이 되십니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구원의 , 천국의 , 행복의 , 생명의 길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직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하시는 길만이 참된 구원의 , 천국의 , 행복의 , 생명의 길이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믿음의 대상(Object)”이시라고 한다면, 예수님은 우리 믿음의 내용 (Contents)”이라고 있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세상에 남는 제자들을 위해 여러가지 약속들을 하십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집을 약속하십니다. 2-3 말씀입니다. “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제자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대로 시행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12-14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것이요 또한 이보다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예수님께서는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16-17a). “보혜사 아버지께서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26).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예수님의 평안 주십니다. 27 말씀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하나하나 음미해보면, 참으로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엄청난 축복이 됨을 있습니다. 28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잠깐 다녀오시는 입니다. 심지어 계속 제자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이를 행하시며, 성령으로 제자들과 교통하십니다. 영적으로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여전히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안에 계시며, 제자들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 편에서 예수님의 함께 하심 현재적으로 누리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보이지 않으시는 예수님께서 보이시는 것처럼 그와 함께 있을까요? 오늘 말씀에 반복해서 나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입니다. 15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21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3절에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리니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사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의 삶이었습니다. 31a 말씀입니다.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려 함이로라.” 새끼 독수리는 시간이 되면 어미 독수리가 됩니다. 이는 새끼 독수리의 속에 이미 어미 독수리의 형상이 심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그들에게 행하신 것은 그들 속에 예수님의 형상을 심으신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 속에 예수님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계명을 기억하고 계명을 순종하여 지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 주님을 닮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끊임없이 주님을 바라고, 찾고, 따라서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시고 순종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사랑하고 계명에 순종합니다. 이를 통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땅에 계실 때보다 강한 연합을 주님과의 사이에 이루어 갑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신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날개를 주셨습니다. 하나는 말씀 (Word)”이시며 다른 하나는 성령님(Spirit)”이십니다. 날개는 우리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광대한 세상에 눈을 뜨게 하며 안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날개는 우리를 높이 들어 높은 곳에서 하나님을 세상을 관조하며 영광을 즐기게 합니다. 날개는 우리를 더욱 높은 하나님의 보좌로 인도하며 그곳에 예비되어 있는 우리의 영원한 처소를 소망하게 합니다. 날개는 오직 예수님께서 땅에 오심으로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로 가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날개를 주심은 우리를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드러내신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 깊이 묵상해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얼굴을 마주하여 보는 날을 우리의 가장 소망으로 바라며, 매일 소망을 향해 가까이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