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3)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4. 4. 16. 23:14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3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여덟 가지 복들 첫번째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말씀하신 복인만큼 모든 축복들 으뜸이 되며, 다른 축복들의 기초가 되며, 복이 없이는 다른 축복들이 복으로 성립될 없는 그런 필수불가결한 복임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임이요.” 말씀은 우리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개의 단어들을 포함합니다. 하나는 심령이며, 다른 하나는 가난하다 말이며, 마지막으로 천국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인용하고 싶은 성경 말씀이 있는데 하나는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그리고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하신 말씀입니다. 다른 말씀은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전하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입니다. 부자가 자기를 위해 여러 물건을 창고에 쌓아 놓고 스스로에게 말하기를 영혼아 여러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하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예비한 것이 것이 되겠느냐?” 하십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부자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하십니다. 말씀들과 함께 심령이 가난한 누리는 복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심령이란 영어 성경에 “in spirit”으로 번역되며, 원문에는 프뉴마(Pneuma -  πνεμα)”라는 단어가 사용되는데, 이것은 바람,” “호흡,” “,”  마음 여러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단어는 우리 인간 존재의 본질을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사람은 입니다. 앞에 인용한 창세기 2:7절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지으셨는가를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지 재료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는 이며, 다른 하나는 생기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코에 생기 불어넣으시자 비로소 사람이 생령 되었습니다. 여기서 생기 풀어 쓰면 생명의 호흡또는 생명의 이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코에 불어넣으신 생기가 바로 생명의 근원이 됩니다. 그리고 생명으로 인해 사람은 생령 살아있는 존재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살아있다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다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살아 있다 것입니다. 이는 살아계신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의 기운이 사람 안에도 동일하게 운행하며, 이로 인해 하나님과 같은 , 같은 마음을 품게 되며, 하나님과 교통하고 교제하며 함께 일하는 존재가 된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몸을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피조물(creatures)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의 코에 불어넣으신 생기 피조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생기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이신 것처럼 (요한복음 4:24) 사람이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처럼 (히브리서 9:14)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생명을 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 안에 생명을 지키시고 풍성하게 하시기 위해 다른 것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으신 사람을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에게 계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세기 2:16-17).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의 한가운데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시고,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주 오해하기를 계명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범죄하고 낙원을 잃게 되었으며, 따라서 계명을 주신 하나님이야말로 사람에게 임한 불행의 원인을 제공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것은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될 우리의 생명도 끝이 나게 됩니다. 마치 공기를 호흡하지 못할 육체의 생명이 끝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에덴 동산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낙원입니다. 그곳은 아름답고, 풍요롭고, 안전하고, 평화롭습니다. 하지만 정작 에덴 동산을 천국으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막도록 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금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것을 먹으면 어떻게 것이라는 것을,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을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오직 하나님께 속한 임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에덴 동산의 모든 실과를 주시고 그것을 마음대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사람이 가질 없는 선악과를 두시고 사람에게는 그것을 먹지 말라 하시는 계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선악과의 계명을 통해 에덴 동산 전체의 주권이 하나님 손에 있게 됩니다. 말하자면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에덴 동산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임을 매일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써 에덴 동산이 하나님의 천국이 되며, 사람의 영혼 속에도 하나님의 천국이 임하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은 풍요로운 곳이며, 이곳에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소유할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그에게 가난,” “부족함,” “결핍이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난이야말로 천국을 천국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왜냐하면, 가난이 바로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를 비워 두어야 합니다. 그것을 가지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자리를 비움으로 하나님께서 자리에 임하셔서 동산 중앙에, 그리고 마음의 중심에 계시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그것을 금하신 계명의 말씀의 의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난이나 결핍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많이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금지된 것을 갖고자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본능적인 욕망입니다. 심지어 욕망은 하나님 대해서도 동일하게 작용합니다. 뱀은 여자의 이런 본능을 이용하여 그녀로 하여금 계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리 차지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 손에 넣으라고 부추겼습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천국 복음을 전파하실 때에도 사람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보고 주님을 소유하고자 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 임금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요한복음 6:15). 이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신들을 위해 매일 만드는 일을 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제자들 또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붙들어 길을 가지 못하시도록 했습니다 (마가복음 8:32). 또한 주님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세상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특히 그것이 탐스럽게보일 소유욕은 더욱 강해집니다. 그것을 손에 넣음으로써 자신을 위해 세우고 있는 천국의 자리를 채워 그것을 완벽하게 만들고자 합니다. 여자는 이를 위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녀는 이를 통해 모든 것을 손에 넣음으로써 에덴 동산이 완전한 천국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여자의 기대와는 달리 그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을 , 그녀는 모든 것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것을 금하신 계명의 말씀을 통해 동산에 거하시며 그녀의 마음 속에 거하시던 하나님께서 자리를 잃으시고 쫓겨나셨기 때문입니다. 이를 생각할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이를 금하신 하나님의 계명이야말로 에덴 동산을 천국으로 지키고 보전하는 수호자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 사람은 무엇인가를 소유하려고 노력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안에서 그는 모든 것을 가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육적인 사람 하나님을 통해 천국을 지키고 누리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많은 소유를 통해 천국을 세우고 누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께서 거하실 자리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의 길을 막는 훼방자에 불과합니다. 그의 안에서 소유또는 소유욕 마치 속에서 은밀하게 크는 암덩어리처럼 한계를 모르고 자라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안에 몰래 나만의 왕국 건설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신앙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 아니라 나의 소유물 불과합니다.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기보다는, “신앙 통해 마음의 부유함, 평안함, 자유함을 얻고자 부단히 노력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말씀에 순종하여 살기보다, 주위에 여러 선생들을 많이 두고 그들로부터 듣기에 좋은 말들, 마음에 위로가 되는 말들, 자랑할 만한 지혜의 말들을 수집하여 지식의 창고에 쌓아둡니다. 그리고 이런 지식들을 많이 모으면 그것으로 천국을 누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영적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안에 하나님께서 거하실 자리가 없으며,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하나님과 예수님은 겨우 푼의 헌금을 품삯으로 받으며 밖에 서서 추위에 떨면서 그가 세운 나만의 천국 지키는 문지기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시고 이에 관한 계명을 사람에게 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땅에 보내시고 주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는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7:5). 하나님께서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하심은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가르치신 말씀들 전체를 마디로 요약하면 나를 따르라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하십니다 (마태복음 16:24). 여기서 부인한다 말은 자신과 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는다 말입니다. 사람들의 마음 속은 항상 대한 생각으로 시장 바닥처럼 바쁘고 혼잡합니다. 자신을 위해 많이 소유함으로써 자신만을 위한 천국을 만들고자 열심히 노력합니다. 하지만 천국은 이렇게 해서 얻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바쁜 삶을 그는 지옥 고통을 겪게 됩니다. 많은 것을 소유한 같으나 실상은 아무것도 소유할 없게 됩니다. 어리석은 부자가 자신을 위해 여러 물건을 쌓아 두고 스스로에게 말하기를 영혼아 여러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날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예비한 것이 것이 되겠느냐?” 하십니다. 부자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다 하십니다. 많은 것을 소유한 부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거하실 자리 가난한 마음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결국 가진 재물과 생명을 모두 잃게 되었습니다. 천국은 많은 소유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천국은 속을 비우고 깨끗이 하여 자리에 끊임없이 하나님을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전에 여러가지 자랑할만한 것들을 소유한 사람이었지만 결국 고백하기를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합니다 (빌립보서 3:7-9). 그리고 말하기를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합니다 (3:12). 사도 바울은 자신을 완전히 비웠습니다. 그는 평생 가난한 심령으로 살았습니다. 그의 가난한 심령을 채우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는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그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무엇을 소유하는 대신 이제 예수님께 붙들려서 예수님의 소유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쇠사슬에 매인 되었다 합니다 (사도행전 28:20). 이스라엘의 소망은 천국입니다. 그리고 그가 아는 천국은 예수님께서 왕이 되셔서 다스리시는 땅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포로가 되어서,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을 잡기 위한 경주를 하는 것입니다. 아직 예수님을 얻지 못하여 마음이 가난하며, 예수님을 얻을 소망에 마음이 풍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누리는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선악과를 금하시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며 그의 말을 들으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말씀들은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고 무거운 짐을 지우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계명과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며 안에서 모든 좋은 것들을 누리도록 하시기 위해 밝히 놓으신 등불과 같습니다. 오직 빛이 우리 안에 환하게 빛날 우리는 가난한 심령으로 천국의 소망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갈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욕심과 정욕으로 바쁘고 혼잡한 우리의 마음을 회개하게 하시고, 깨끗하고 정돈된 마음에 예수님의 말씀이 살아계셔서 그의 거룩한 영으로 우리를 다스리시며 인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붙들고 소유하는 육적인 에서 돌이켜 오직 예수님의 말씀이 붙들리며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영적인 살기를 사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