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그가 살아나셨다! (마가복음 16:1-20)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4. 4. 2. 21:39

 

그가 살아나셨다!

 

마가복음 16:1-20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사건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복음의 완성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앞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셨던 모든 가르침들과 이적들과 십자가 죽으심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17절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가운데 있을 것이요 ……”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이라고 전제를 합니다. 이는 바꾸어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을 믿지 않으면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의 다른 믿음들은 헛되며 우리는 여전히 죄인으로 남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복음의 완성이지만 동시에 믿음의 완성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물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지만, 저자는 어떻게 부활이 목격되고 부활의 소식이 전파되고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던 사람들에게 주님의 부활은 참으로 기쁘고 복된 소식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사람들의 기쁨 표현하는 문구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들의 반응은 놀라움, 두려움, 무서움 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제자들은 거듭된 증인들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았다 여러 언급되어 있습니다 (11, 13, 14). 이는 참으로 문제가 아닐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야 아니라 부활을 세상에 증거하는 증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들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남기신 가장 중요한 숙제입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로마서 1: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power)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우리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님께서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습니다.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지만 능력은 우리에게 매우 낯설어서, 마치 신화 신비로운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반면에 우리는 죽음의 권세가 얼마나 강한 것인지를 압니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죽음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우리의 삶은 죽음과  동행하며, 죽음을 생각하며,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죽음은 이렇게 친숙하게 느껴지며, 부활과 생명은 멀고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럴까요? 이는 우리가 오랫동안 하나님을 떠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을 전기(electric power)” 비유하여 설명하고 싶습니다. 전기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존재했지만 사람들이 전기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878년에 에디슨이 사용 가능한 전구(lightbulb) 발명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전기의 존재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하나인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752년에 전선에 연결된 연을 띄우는 실험을 통해서 번개가 전기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는 실험을 기초로 피뢰침(lightning rod) 발명했습니다. 피뢰침은 높은 건물이나 구조물에 금속성 막대나 선을 고정시켜서 번개를 유도하고 이것을 땅속으로 안전하게 흘려보내는 장치입니다. 프랭클린이 처음 피뢰침을 발명했을 , 많은 사람들이 번개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것에 대해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몇몇 기독교 성직자들은 이것이 번개를 이용하여 죄인을 벌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훼방한다면서 발명을 악마화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국에 전기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87 경복궁에 전기등소(電氣燈所)”라는 전기 발전소가 세워지면서라고 합니다. 여기서 발전된 전력으로 경복궁에 전등을 켰을 , 사람들은 정체 모를 빛을 도깨비불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물론 요즘 사람들에게 전기는 삶의 일부가 되었으며, 전기 없는 세상은 생각할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전기의 원리(原理) 충분히 이해하고, 원리를 기초로 다양하게 전기를 이용할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전기(electric power)에는 그것이 발생하고, 흐르고, 저장되고, 이용되는 원리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에도 능력의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1:3-4a절에서   원리를 발견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말씀은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빛을 창조하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 실현되는 원리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말씀을 다음과 같이 이해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말씀으로 드러내십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말씀으로 드러내시면,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말씀을 그대로 이루십니다. 그리고 이루어진 결과물은 하나님의 영광 드러냅니다. 원리는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서 매일 반복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셋째 풀과 채소와 나무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맺는 채소와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11-12). 말씀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짐을 거듭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복음서의 기록들도 점을 많이 강조합니다. 마태복음 28:6절에 무덤을 지키던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합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누가복음 24:6절에서도, 입은 사람이 말하기를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누가복음 24:25-27절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성경 말씀을 자세히 설명하심으로 자신의 부활이 당연이 있어야 임을 상기시키십니다.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자기에 관한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다른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이루어져야 하리라 말이 이것이라하시고 저희의 마음을 열어 성경 깨닫게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4:44-45). 사도 바울 또한 자신이 전한 복음을 소개하기를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5:3-4). 이와 같이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이로써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사실은 예수님 자신이 말씀 되십니다. 히브리서 1:1-2a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모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 말씀은 예수님께서 완전하게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 되심을 의미합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셔서 이루었다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9:30).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몸에 하나님의 모든 거룩한 뜻들, 공의와 사랑과 용서와 겸손과 믿음과 승리를 포함하여 주님의 모든 아름다운 덕을 담고 계십니다. 따라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 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은 마치 높이 세워진 피뢰침 같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땅에 임하며 생명의 역사를 행하시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3: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여기서 이상이라 함은 모세가 행한 여러 기적들과 같이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역사하심이 눈으로 있도록 환히 드러난 모습이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그런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유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해서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현실화(actualization)되는 것이 바로 이상이며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말씀이 되시는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말씀 되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진 이상은 헤아릴 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은 그것들의 절정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말씀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 되시는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최고의, 그리고 최후의 이상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마음껏세상 가운데 구원의 능력을 행하실 있는 거대한 발전소(power station)” 세워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천하에 다니면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할 것을 명하시며 더하여 말씀하십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앞서 인용한 바와 같이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의 내용에 대하여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증거합니다. 복음이 완성된 완전한 복음이며 영원한 복음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우리의 불신을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며 나아가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은 쉽지 않은 숙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또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우리 각자의 영혼 속에서 구현되는 원리 따라야 합니다. “말씀 되시는 십자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에게 예수님의 부활 마치 도깨비불 보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불신과 두려움 가운데 있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귀신(ghost)”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누가복음 24:37). 예수님께서 피뢰침처럼 십자가에 높이 들리심으로, 하나님의 영이 번개처럼 위에 내리시고 예수님을 죽은 가운데서 일으키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말씀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계실 ,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강력으로 임하시고 구원의 능력을 베푸십니다. 로마서 8:10-11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렇습니다. 피뢰침이 번개를 끌어내리듯이, 실이 바늘을 따라가듯이, 말씀 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당연히능력 되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의 죽을 몸을 살리십니다. 우리가 매일 전기를 의지하여 사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는 매일 복음을 의지하여 삽니다. 복음은 우리 안에서 끊임 없이 구원의 능력을 발전하는 거대한 발전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완전히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 되시는 십자가 예수님을 품게 하시며 이로 인해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임하시고 역사하심으로 그의 영광스러운 부활에 함께 참여하는 축복을 허락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