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복음 2:1-11절 말씀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한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일에 대해 공부하고자 합니다. 이 강의의 부제는 “예수님은 주님이시다”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주님이 되시는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갈릴리 가나라는 곳에 혼인 잔치가 열렸습니다. 가나는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의 고향 마을인 나사렛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이 혼인 잔치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초대를 받아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혼인잔치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의 혼인 잔치는 짧아도 1주, 길면 2주 이상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이 기간 동안 혼인 잔치의 손님들은 잔치를 즐기며 신랑 신부를 축복했습니다. 이 잔치의 기쁘고 즐거운 분위기를유지하는데 있어서 포도주의 역할은 절대적이었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잔치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매우긴급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이 문제를 들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이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마리아의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때”에 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주님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때에 그 기도를 이루십니다. 우리의 시간은 “지금 (Right now)” 혹은 “가능한 빨리(As soon as possible)”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시간에 쫓겨 초조해 하며 서두르거나, 반대로 너무 늦었다고 포기하기를 잘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시간이 없다고 서두르시거나 너무 늦었다고 포기하시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심지어 “죽음”조차도 예수님의 발걸음을 빠르게 하지 못하고, 또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도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시간을 정하시고, 그 시간을 따라 일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하인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마리아는 여전히 예수님을 믿고 하인들을 준비시켰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how) 이 문제를 해결하실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대신에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올바른 자세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있을때, 대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자신이 정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가 정한 방식대로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말하자면, 방법은 내가 정하고, 하나님께서 내 방법에 순종해 주시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의방식과는 정 반대죠. 방법은 예수님께서 정하시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정하신 방식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물 위를 걸어오기도 하시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기도 하시고,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 소경의 눈을 띄우기도 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어떻게 하시려고?”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주님을 쳐다보는 대신, “무슨 말씀을 하시든 그대로 순종할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어떻게?”는 예수님께서 정하십니다.이는 예수님께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인들에게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도록 하시고, 또 그 물을 연회장에게 갖다주도록 하셨습니다. 연회장은 물로된 포도주를 맛보고 그것이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했지만 하인들은 알았습니다. 이 포도주는 어디에서 왔나요? 물이 포도주가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 포도주는 “예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르지 않는 축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우리는포도주를 구할 수 있도록 예수님께 도움을 구하지만, 정작 예수님 자신을 포도주의 근원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자신들이 생각하는 축복의 근원들을 따로 갖고 있습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같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축복을 얻을 수있도록 예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는 예수님께 하지만, 마음은 이런 세상의 복들을 찾아 기웃거립니다. 우리가예수님께 기도할 때는, 예수님 자신이 공급자이시며, 예수님 자신이 구원자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또 만물을 주관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좋은 것이 다 예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계신 곳이 곧 우리가 머무를 곳이며,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이 곧 우리가 따라가야 하는 곳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1절에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표적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 이 문제를 들고 나온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한 것도 아니고, 또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물을 떠온 하인들이 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들,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들을사용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이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 눈으로 보기에 주님께서 아무 일도 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일이란, 다만 그 말씀을 믿고 기도하며 순종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여 많은 수고를 하고 나서도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하며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오직 말씀으로, 영으로 일하시는 그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일은 주님께서 행하신 “처음 표적”입니다. 여기서 “표적 (sign)”이란 말은 성경에서 자주 “기적”이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표적들이 자주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처럼 초자연적인 현상을수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들은 단지 그것들이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는 증거로써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기적”보다는 “표적”이 더 맞는 표현이겠습니다. 사도행전 2:22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은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권세들로부터 구별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시며, 주님이 되심을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일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배워야 합니다.우리가 많은 축복을 받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예수님을 아는 지식으로 인도하지 못한다면, 큰 유익이 없습니다. 마치 오늘 혼인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이 주님이 만드신 맛있는 포도주는 즐길 수 있지만 여전히 예수님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반대로 고난이라도 그것을 통해 예수님을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온전한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삶 자체가 기적입니다. 그리고 이 기적은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심을 증거하는 표적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이 표적을 행하심으로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는 표적을 행하신 것은 단순히 혼인 잔치의 신랑 신부를 축복하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는 신랑, 신부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진짜 주인공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영광”이란 말은 매우 위험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오직 하나님께만 사용될 수 있는 금기어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8:11b절에 하나님께서 “내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십니다. 사도행전 12:23절에서는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합니다. 이 말씀들을 볼 때, “예수님께서 …… 그 영광을 나타내셨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바로 하나님이심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표적을 행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 되신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이를통해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자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문제가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어려움들은 모두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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