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5)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4. 5. 23. 20:26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5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전하신 8 번째 복에 해당하는 것으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하십니다. “온유함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될까요? 온유함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서, 저는 이것을 비유하고 싶습니다. 우리 속의 혈액은 신체의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많은 산소와 적정량의 영양소를 함유한 깨끗한 피가 혈관을 통해 원활하게 흐르게 되면 몸이 건강하게 유지될 것입니다. 반대로 피가 오염되어 혈관이 막히고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않다면 이는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특히 심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신체부위들이 쉽게 손상되고 뇌질환과 같은 심각한 질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서 지으신 피조물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온유함 하나님의 축복을 세상 곳곳에 전달하는 혈액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온유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 전체를 포괄하는 단어가 바로 입니다. 창세기 1:28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짧은 말씀에 이라는 단어가 번이나 나옵니다. 바다와 하늘 또한 땅의 일부로 있으며, 공간들을 채우고 있는 동식물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서 땅을 축복하시고 관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온유한 사람 통해 땅에 흘러나가며, 땅에 생명을 불어넣고, 땅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보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하십니다. “온유하다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praus(πραΰς)”라는 형용사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어떤 (horse) 가리켜 “praus” 혹은 온유하다 했다고 합니다. 조련을 통해서 말이 어떤 상황에서도 주인의 말에 완전히 순종하게 되면, 말은 심지어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전쟁터에서도 놀라거나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고 오직 주인의 뜻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는 신뢰를 얻게 됩니다. 일단 말을 신뢰할 있으며 말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지시를 따를 것임을 주인이 알게 되면, 주인은 말을 온유하다 일컫습니다. 심지어 말이 좋은 혈통의 순종으로, 전쟁에 나가면 적들을 짓밟으며 두려움 없이 달려나가는 그런 용감하고 강력하고 위엄 있는 말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온유하다 함은 주인에게 완전히 순복하여 주인과 뜻으로 움직이는 그런 말을 수식할 쓰이는 단어라고 합니다. 다른 설명에서는 단어의 뜻을 하나님과 관련시켜 이해합니다. 온유함이란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갖는 마음가짐(disposition)입니다. 어떤 마음가짐이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영접하고 이에 대해 불평하거나 저항하지 않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온유함이란 불의함을 당할 자신의 힘으로 그것들과 싸우는 대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악한 사람들에 대한 온유함이란 하나님께서 때로 악한 자들을 통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며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단련하시며 하나님의 때에 그들을 구원하실 것임을 알고 믿는 마음입니다. 온유함은 하나님께서 선하시며 모든 상황을 완전히 지배하고 계심을 믿는 믿음으로부터 비롯됩니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은 절대로 자신 얽매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주 온유함 단순히 다른 사람들에 대한 친절함으로 생각할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설명과 같이 온유함 뿌리는 주인 혹은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신뢰와 복종입니다. 위에서 온유함을 주인에 대한 동물() 절대적인 순종으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예는 성경에서도 찾아볼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어린 되신 예수님이십니다. 이사야 53:6-7 말씀입니다. “우리는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깎는 앞에 잠잠한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말씀에서 예수님을 묘사하기를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깎는 앞에 잠잠한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유하신 예수님께 우리 무리의 죄악 담당시키셨습니다. 어린 되신 예수님께 무거운 죄의 지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시고도 예수님은 불평 마디 없이 잠잠히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이는 참으로 온유함의 극치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온유하심을 언급한 말씀들은 흥미롭게도 모두 짐을 지는 짐승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마태복음 21:5절로,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합니다. 여기서 겸손하다 말은 오늘 본문의 온유하다 같은 말입니다. 말씀은 예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대로 (스가랴 9:9)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오심을 말씀합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타시는 짐승을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타신 짐승이 짐승을 타시고 세상 죄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예수님의 모습과 오버랩이 됩니다. 다른 말씀으로 마태복음 11:28-30절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멍에는 쉽고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하십니다.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하십니다. 그리고 무거운 자들을 초대하시며, 그들에게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의 짐을 짐으로 무엇을 배우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의 온유함입니다. 이는 마치 말을 조련하여 주인의 말에 온전히 복종하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께 대하여 그렇게 온유하셨습니다. 그리고 온유하심으로 제자들에 온유함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신 것처럼, 제자들 또한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도록, 그래서 하나님께서 메우시는 멍에를 메고 하나님께서 지게 하시는 짐을 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를 통해 마음의 얻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온유한 자만이 진정한 평화와 안식을 누릴 있습니다. 온유한 자만 낙원을 누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그를 위해 에덴 동산을 조성하셨습니다. 창세기 3:9절에 따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 나게 하셨습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땅이 사람에 대해 온유했다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고 사람의 입에 맛있는 과실을 맺는 그런 나무들이 땅에서 자란 것입니다. 이는 먼저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온유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계명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께 범죄했을 , 땅도 사람에 대한 온유함을 멈추었습니다. 창세기 3:18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것이라하시고, 17절에서는 땅이 너로 인해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소산을 먹으리라하십니다. 그의 범죄함으로 인해 사람은 복된 땅을 잃고 저주 받은 땅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형제 아벨을 죽인 가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땅이 입을 벌려 손으로부터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갈아도 땅이 다시는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창세기 4:11-12). 하나님께 대한 사람의 죄가 깊어질수록, 사람에 대한 땅의 거역함도 거세졌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땅에서 도망자 방랑자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과는 반대로, 예수님께서는 땅이 주님의 권세에 완전히 순복함을 보여주는 여러 이적들을 행하셨습니다. 베드로에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게 하시고 (누가복음 5:6),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잠잠하게 하시고 (마가복음 4:39), 다섯 개와 물고기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시고 (마태복음 14:13-21), 바다 위로 걸어오기도 하시며 (마태복음 14:25), 열매를 맺지 않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셔서 뿌리로부터 마르게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1:20).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신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하신 말씀이 예수님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께 대하여 온유하실 , 땅과 바다와 가운데 사는 모든 동식물들 또한 예수님께 대하여 온유함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하십니다. 우리는 말을 통해 온유함 땅을 기업으로 얻을 있는 수단으로 이해할 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것은 먼저 우리 자신 하나님께 대해 온유함으로써 하나님의 기업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34:12 말씀입니다.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백성은 복이 있도다.” 내가 여호와를 나의 하나님으로 삼는 것이 내가 하나님의 기업으로 택하심을 입는 것입니다. 민수기 13장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뽑은 12명의 족장들을 가나안 땅에 보내셔서 땅을 탐지하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자들 중에 10명은 땅에 대해 악평을 하면서 땅에서 거인들에 비해 자신들은 메뚜기와 같다면서 사람들을 두려움에 빠뜨렸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옷을 찢도록 분개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말씀은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말이 무슨 뜻인지를 매우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가나안 땅의 거민들에 비해 자신들을 메뚜기와 같다 말하는 10명의 정탐군들이 온유하고 겸손해 보일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불신과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비록 땅에 장대한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땅을 온유한 자에게 주십니다. 온유한 자는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는 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치도 망설이거나 뒷걸음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담대히 나아가는 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행한 가나안 정복 전쟁은 가나안 족속들을 굴복시켜 땅을 빼앗는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을 하나님께 순복시킴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땅을 받는 전쟁이었습니다. 온유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은 마치 정글과 같아서 생존을 위한 싸움이 매일 치열하게 벌어집니다. 이런 세상에서 온유함 거의 어리석음혹은 멍청함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온유하다가는 있던 땅도 빼앗길 판입니다. 사실 온유함 오직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서만 가질 있는 마음의 태도입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만 온전히 선하시며, 우리가 온전히 신뢰하고 자신을 맡길 있는 분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진심으로 온유할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이웃들에게 흐르게 됩니다. 마치 맑고 건강한 피가 막힘이 없이 몸을 흐르며 몸을 생명의 기운으로 채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온유함의 시작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유함이어야 합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라디아서 1:10).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도행전 5:29).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태복음 16:2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서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할 같으면 너는 같이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예레미야 15:1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