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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의 문둥병자를 치료하신 예수님 - 은혜 위에 은혜 (누가복음 17:11-19)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4. 6. 26. 12:31

https://youtu.be/OBuyBDR9FTw

 

안녕하세요? 오늘 공부할 성경말씀은 누가복음 17:11-19절입니다.  말씀에서 예수님은 10명의 문둥병자들을 치료하십니다.  말씀을 기초로 은혜 위에 은혜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명의 문둥병자들이 예수님께 긍휼을 구하자 예수님께서 저들의 문둥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  오직  명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돌아와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축복하시며 말씀하시기를 가라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문둥병으로부터 깨끗함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모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오직 돌아온  사마리아인 문둥병자에게만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십니다.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 위에 은혜가 임한다 사실입니다.

 

히브리서 6:7-8 말씀입니다. “땅이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땅의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땅을 적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는 차별이 없이 모든 사람에게 임합니다. 하지만 은혜를 우리가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서  은혜가 복이 되기도 하고 저주가 되기도 합니다. 땅이 비를 흡수하여 농부들이 원하는 좋은 채소를 내면  땅이 복을 받고,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땅이 버림을 당하고 저주를 받게 됩니다. 같은 은혜를 받았지만 결과는 전혀 반대입니다. 우리가  아는 성경 말씀인 요한복음 3:16절도 같은 진리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주신 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은혜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이 되지 않습니다. 오직 저를 믿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차별이 없지만  은혜를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서 혹은 영생을 얻으며 혹은 멸망을 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분수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물을 나누는 산마루 또는 산맥이라는 말입니다. 분수령을 사이에 두고산마루의 왼편으로 떨어진 빗물은 서쪽으로 흘러 서해 바다로, 오른편으로 떨어진 빗물은 동쪽으로 흘러 동해바다로 들어갑니다. 시작은 거의 비슷했지만  도착지는 전혀 다른 곳이 됩니다.  명의 문둥병자들은 모두 예수님께로부터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같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오직  사람만  은혜가 하나님께 대한 찬양, 그리고 예수님께 대한 감사와 믿음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결국 구원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나머지 아홉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경 말씀에는 그들이 이상 언급되지 않습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랬을까요? 이는 그들이 문둥병으로부터 나음은 입었지만, 이를통해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나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은혜의 근본이 되십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비록 그들이 문둥병으로부터 나음을 입었더라도, 그들의 삶이 그냥 문둥병자로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옛날 어떤 임금에게 그가 매우 소중히 여기는 충성스러운 신하가 있었습니다.  신하는 원래 길에서 구걸을 하던 걸인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임금이 불러 자신의 신하로 삼았던

것입니다. 신하는 임금에게 유익한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신하들  가장 높은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하는  겸손히 임금에게 충성을 다했습니다. 임금은 이런 신하를 몹시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다른 신하들 중에는 이를 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충성된 신하가 매일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궁궐 내의 한적한 곳에있는 방에 혼자 들어가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안에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그가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마침내  신하가 이를 임금에게 고했습니다.  그리고 저가 무슨 나쁜 일을 꾸미고 있는 같다고 했습니다. 왕은 신하를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문제가  이상 확인하지 않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에 대해 그에게 물으니 신하는 왕을 모시고   문을 열어 보였습니다.  안에는 낡고 헤어진 옷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가 옛날길에서 구걸을   입고 있던 옷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방에 들어와  넝마옷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구해주신 왕의 은혜를 기억했던 것입니다.

 

 신하는 왕을 위해 유익한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제 왕에게 갚을 만큼 갚았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심지어 속으로 이제 왕도 내가 없으면 어려울껄?” 하면서 교만한 마음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매일 길에서 구걸하던 걸인이었던 옛날의 나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신을 구해준 왕의 은혜를 되새겼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  없었고, 대신에  왕이 있었으며  왕에 대한 감사함만 있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왕에게 좋은 일을  있는 것조차 전적으로 왕의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감사함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깊어져 갔습니다. 이렇게 처음 은혜를기억하고 왕께 감사함으로써 그의 인생은 은혜 위에 견고히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입게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문둥병자들을 치료해주시면서 그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문둥병으로부터 나음을 입은 사람들이 해야  최소한의 요구 사항이었습니다. “지켜야  이었습니다. 이것은 선과 , 옳고 그름의경계를 정하는 울타리와 같습니다. 아마도 아홉 명의 문둥병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사장들에게 가서 자신들의깨끗해진 몸을 보임으로써 예수님께서 명하신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후에  사마리아인 문둥병자가 돌아와 주님 앞에엎드려 감사하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방인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십니다.  말씀은 의아하게 들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만 하셨습니다. “돌아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마도 다른 아홉 명의 문둥병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그들은 이렇게 반문했을 것입니다. “아니 주님, 가서 제사장들에게  저희 몸을 보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는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그렇습니다. 이들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율법 지키는 신앙생활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신앙생활은  삶을 울타리로 둘러싸고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마음으로 감사하는 대신, 법을 지킵니다. 주일 예배도 빠지지 않고, 십일조도 꼬박꼬박 하고, 금요 기도 모임도 참석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울타리밖에 세워두고 삯을 치르듯  푼의 헌금과 기도문 혹은 주문서를 건넵니다. 이렇게 정해진 최소한의 법들을 지키고, “예수님, 이만하면 됐죠?” 하고 문을 닫습니다. 그리고  울타리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추구합니다. 끝없는 욕심을 따라 삽니다. 끝없는 욕심은 마치 바닥이 없는 깊은 구덩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조차도  구덩이를 채울  없습니다.  욕심은 만족함 없습니다. 그래서  부족함과 불평만 가득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이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 유일한 기도제목은  주세요,  주세요 입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문둥병자이며 사마리아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를 가리켜  이방인이라고 하십니다. 그는  내려갈 곳이 없을 만큼 낮은 자였습니다. 그는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다른 아홉명의 문둥병 친구들과 함께 길을 나셨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자신의 몸이 나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몸이 나은 것을 보게 그가 보인 첫번째 반응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 앞에 엎드려 감사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줄까요?이는 그의 영혼 속이 하나님으로 가득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일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은혜로 인해 일어났습니다. 문둥병자는 그의 더럽고 흉한  때문에  얼굴을 가리고 사람을 피해서 살았습니다. 물론 그를 보는 사람들도 그를 외면하고 멀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인자한 얼굴을비추셨습니다. 저주 받은 인생이 은혜 받은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안에서 천국을 발견했습니다.  안에는 하나님께서 인자하게 웃는 얼굴로  팔을 벌려 그를 맞이하고 계셨습니다. 이제 그에게 깨끗해진 몸을 제사장에게 보임으로써 문둥병자의 꼬리표 떼는 것은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온전히 사로잡혔습니다. 만사를 제쳐두고 예수님께로 돌아갈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예수님으로 인해 지금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를, 그리고  기쁨과 행복을 주신 예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를 주님께 고백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십니다. 그는 몸이 깨끗해진 것에 더하여  영혼이 구원을 받는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임했습니다.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은혜(grace) 하나님께서 오직 자신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자격 없는 죄인들에게 무조건적으로 베푸시는 호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가장  은혜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8:32 말씀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먼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 아끼지 아니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가장 귀한 아들 아끼지 않으셨는데, 다른  귀한 것들 아끼시겠느냐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 받음으로 이미 가장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은혜는 우리를 은혜의 바다로 덮을 만큼 깊고 넓고 높아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 완전히 잠기게 합니다. 이제는 사는 것이 은혜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우리가 부족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실제로 뭔가 부족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고, 가장 귀한 은혜의 선물이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귀한 아들을 모든 사람을 위해 내어주셨다 합니다. 이것도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나라의왕이  나라의 모든 백성들에게 골고루 은혜를 베푼다면 그리 비싸지 않은, 기껏해야  만원 짜리 선물 세트를 나눠줄 것입니다. 그리고 좀더 특별한 사람들에게는   비싼 , 그리고 아주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귀중한 것으로 은혜를베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반대로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가장 귀한 아들 내어주셨습니다.  아들의 가치에 비하면 다른 선물들은 거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정도입니다. 그냥   가지 은혜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심지어  은혜만 받을  있다면 일평생 그것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다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귀한 은혜를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개 모든 사람들이 받는 은혜 대해서는  소중함을 모릅니다.  명의 문둥병자들도 처음에는 몸이 깨끗해진 것에 대해 몹시 기뻤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만 깨끗함을 받은 것도 아닌데!” 하면서 받은 은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주셨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주신 은혜의 가치가 조금도훼손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물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주셨지만,  선물을 받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특별한 선물이 있을  없습니다.  은혜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연결시켜주는 사다리입니다. 하늘의 천사들이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우리에게 온갖 진기한 하늘의 선물들을 전달합니다.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우리가  일은  은혜의 기초 위에 든든한 믿음으로 굳게 서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충성스러운 신하처럼, 우리가 죄인 되었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매일 바라보아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가 벗어놓은 더러운 죄의 옷들이 걸려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더러운 옷들을 벗기시고, 예수님께서 친히  살과피로 만드신 하얀 의의 옷으로 우리를 입히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매일  처음 은혜, 가장 귀한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돌아가 주님께 감사함으로 은혜의  위에 견고하게 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