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성경 공부의 본문은 창세기 1:1-4a절입니다. 창세기 1:1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성경 공부를 통해서 제가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물론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도 있지만,그보다는 먼저 이 말씀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말씀드린다면 그것은 “믿음으로……” 입니다. 히브리서 11:3절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압니다.
창세기를 영어로는 Genesis라고 하는데 이 말은 기원, 시작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곧 창세기는 “시작”과 “기원”에 관한여러 가지 진리들을 담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하늘과 땅, 땅과 하늘과 바다를 채우고 있는 동식물들, 그리고 사람의 기원을밝힙니다. 또 태초라는 말과 함께, 낮과 밤, 주, 월, 년, 계절과 같은 때와 시간들의 기원도 나와 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발견되는 여러 제도들 곧 안식일, 결혼, 가족, 국가, 법률, 계약 등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창세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는 또한 죄, 죽음, 심판, 구원, 복음, 믿음과 같은 영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창세기는 우리가 우주 만물, 인간세계,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인간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책입니다. 우리가 성경 안에 있는다른 책들에 대해서는 혹시 조금 소홀히 할 수 있으나 창세기에 대해서는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이는 창세기 말씀이 우리존재의 뿌리이며, 우리 신앙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사람들은 세상의 기원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어떤 것의 기원에 대해서궁금해하며 그 답을 찾으려고 애를 쓸까요? 이는 그것이 그들의 눈에 매우 귀하고, 신기하고, 놀랍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우리가 길에 굴러다니는 검은 비닐 봉지를 봤다면 어떻게 할까요? 대부분 무심코 지나치거나 주워서 쓰레기통에 넣을 것입니다. 아무도 그 비닐 봉지가 어떻게 길에서 굴러다니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이 비닐 봉지가 매우 하찮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길에 떨어져 있는 에르메스 가방을 발견했다면, 그리고 그 가방 안에 값비싼 보석들과 귀금속들이 가득 들어 있다면 우리는 매우 궁금해할 것입니다. 이 가방의 주인은 누구이며, 또 어떻게 이 가방이 여기떨어져있게 되었는지를 말입니다. 만일 어떤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이 와서 자신이 그 가방의 주인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사람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비싼 물건이라면 그 주인 또한 그에 걸맞게 부유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세상의 기원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은 그 안에 신기하고 놀라운 것들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을 간단하게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빛(에너지), 생명, 그리고 질서입니다. 이 세 가지는하나님께서 창조 역사를 시작하기 전의 세상의 상태와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창세기 1:2a절에 따르면, 그 때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고 합니다. 질서가 없이 혼돈 가운데 있었으며, 생명이 없이 공허한 상태였으며, 빛이없이 어두움에 덮여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비록 “땅”이라는 존재를 언급하고는 있지만, 사실상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가운데 빛을 만드셔서 어둠을 밝히시고, 생명을 창조하셔서 빈 공간들을 가득 채우시고, 또 질서를 세우셔서 만물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붙드시고 운행하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신기하고 놀라운 것들이 가득한 세상을 “자연”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자연”이 아니고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자연이란 말은 “스스로 자”자와 “그럴연”자로 된 단어로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길에 굴러다니는 검은 비닐 봉지는 “자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격히 말하자면 이것도 “인공물”이기는 하지만, 더럽고, 속이 비고, 구겨진 상태로 바람에 날려 이곳 저곳으로 굴러다니는 비닐 봉지를 보고 사람들은 “누가 이 봉지를 이런 상태로 만들었을까?” 생각하면서 고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그냥 어쩌다 그렇게 된 것임을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입니다. 하지만 금은보화가 가득한 에르메스 가방은 “자연”이 아닙니다. 분명히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창조물”이며, 또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이것이 바로 어느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자연의 상태”입니다. 하지만빛과 생명과 질서는 스스로 생긴 “자연물”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연”은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의 상태 곧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뜻과 지혜와 능력이 역사함으로 빛이 만들어지고, 생명이 창조되고, 질서가 세워진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있으면 보여봐라! 증명해보라!” 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음으로 “하나님은 없다” 혹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로마서 1:18-2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과 창조에 관한 여러가지 진리들을 담고 있습니다. 먼저 “그의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자신과 그 분의 능력과 신성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우리의 “관찰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신성이그가 지으신 만물에 분명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빛과 생명과 질서”를 보면서 우리는 그것을 만드신 분의 존재를 결코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하나님을 알만한 것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심과 창조주 되심을 부인할까요? 이는 사람들의 “경건치 않음과 불의” 때문입니다. 그들이하나님을 싫어하고 또 악함으로 고의로 하나님의 진리를 막는 것입니다.
유명한 “형사 콜롬보”라는 탐정 드라마가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LA 경찰서 강력계 수사반장인 콜롬보와 살인범 사이에치열한 두뇌 싸움이 펼쳐집니다. 콜롬보는 어리숙해 보이는 외모, 산발한 머리, 천진난만한 미소, 허름한 레인코트, 엔진 소리가 요란한 고물 자동차 등으로 특징지어집니다. 반면 살인범은 부자이거나, 전문가이거나, 권력자이거나, 유명인입니다. 머리도 좋고, 세련되고, 심지어 “인품”까지 훌륭합니다. 그래서 에피소드의 시작 부분에서 이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콜롬보에게 별로 승산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어리숙해 보이는 콜롬보에게 언제나 “강력한 무기”가 있습니다. 그것은진실과 그 진실을 가리키고 있는 여러 증거들입니다. 진실은 아직 감추어져 있지만, 증거들은 명백합니다. 콜롬보는 이 증거들을 하나씩 들이밀면서 범인을 압박합니다. 범인도 물론 “진실” 곧 자신이 살인자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범인이 이 싸움에서사용하는 무기는 바로 “거짓”입니다. 곧 진실을 덮는 거짓입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것”입니다. 범인은 진실을 가리기 위해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합니다. 콜롬보가 새로운 증거를 내놓을 때마다 그는 그것에 대한 “왜곡된 설명”을 시도합니다. 그의유일한 목적은 “자신이 범인임을 감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진실을 감추는 것이라면 어떤 이상한 이론이나 가설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다른 무죄한 사람이 의심을 받게 되는 것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라면어떤 설명도 다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곧 자신이 살인범으로 확인되는 순간 그의 인생이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의 끝은 언제나 진실이 드러나고 정의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범인은 매우 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약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인생이 죄와 거짓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국 초라한 모습으로 콜롬보 앞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창조주 되심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 또한 이와 같습니다. 곧 거짓으로 진리를 막는 것입니다. 이들이이렇게 하는 것은 그냥 하나님을 인정하기 싫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아름다운 세상 만물을 “자연”이라고 부릅니다.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수없이 많은 “우연들”이 모여서 하늘의 별들도생기고, 해와 달도 생기고, 이 땅과, 땅에 있는 물과 공기, 그곳에 사는 동식물들과 사람들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세상을 만든 신은 아주 긴 시간과 우연입니다. 이들은 우리가 보는 수 많은 창조의 증거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많은 가설들과 거짓된 이론들을 만듭니다. 드라마 콜롬보의 범인이 자신의 범죄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어떤 거짓말이라도 꾸며내는 것처럼, 이들또한 하나님을 부인하기 위해서 어떤 괴이한 이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조금 길거나 짧다고 생각되면 4-50억년 쯤은쉽게 줄였다 늘였다 할 수 있습니다. 너무 기이해서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는 매우 극적인 우연들도 참 많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덮을 수만 있다면 어떤 이상한 이론이나 논리도 대환영입니다. 이는 매우 어리석고, 악하고, 완고한 짓입니다. 이는 마치살인자가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서 모든 증거를 부인하고 억지 논리를 펴는 것과 같습니다.이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진리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이제까지 세워놓은 거짓된 세계관이 다 무너지고 이로 인해 자신의인생도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삶과 생각에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시간과 우연으로 설명할 수 없는 창조의 증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길에 굴러다니는 검은비닐 봉지가 우연히 금은 보화가 가득 담긴 에르메스 가방이 될 수 있을까요? 100억년 혹은 1000억년의 시간이 주어지면 가능할까요? “글쎄올시다” 입니다. 혼돈하고 공허하고 어둠이 깊었던 땅이 저절로 우리가 보는 이 빛과 생명으로 가득한 경이로운 세상이 될 수 있을까요? 100억년 혹은 1000억년의 시간이 주어지면 가능할까요? 이것 역시 “글쎄올시다” 입니다. 로마서 기자는 말합니다.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우리는 길가에 버려진 작은 질그릇 조각을 보고도 이것이 그냥 돌이 아니라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그냥 우연히 생긴 돌이라고 누가 주장한다면 우리는 그를 어리석다고 조롱할 것입니다. 하물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늘 길을 달리는 해와 달과 별과 수 없이 많은 천체들, 수백만 종의 생명체들이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는 이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 그 신비로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나”라는 존재를 보면서 하나님의 계심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심과 창조주 되심을 부인한다면 그것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죄악”입니다.
히브리서 11:3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이 말씀에서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합니다. 나 자신과 저 광대한 우주를 포함해서, 우리가 보고, 만지고, 관찰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피조물”입니다. “나타난 것”도 같은 말로이것들 또한 피조물입니다. 이 피조물들은 또 다른 피조물로부터 생겨난 것도 아니고, 또 “피조물”은 스스로 자신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피조물들을 아무리 열심히 관찰하고 연구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피조물의 기원을알 수 없습니다. 피조물들이 증거하는 확실하고 유일한 진리는 그것들 뒤에 그것들을 만드신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이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알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시각,청각, 후각, 미각, 촉각과 같이 물리적인 세계를 지각할 수 있는 감각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세계와 하나님을 지각하는감각은 바로 “믿음”입니다. 성경의 이야기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현상들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물리적으로 경험할수 있도록 자신을 나타내실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불 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식하는 가장바람직한 방법은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도다”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29).
영적 감각으로서의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을 바다로 비유하여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여기 깊고 넓은 바다가 있습니다.이 바다를 경험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배를 타고 배 위에 앉아서 바다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하나는 바다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 위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기를 선호합니다. 왜냐하면 안전하고, 여차하면 육지로 대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배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넘실대는 물 밖에는 별로볼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를 보면서, 바다는 변덕스럽고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바다 속으로뛰어들어가 보는 바다는 전혀 다른 세상입니다. 그 안에는 아름다운 산호초, 신기한 물고기들, 이름 모를 온갖 생명체들이 가득합니다. 또 그 안에는 바람도 없고 파도도 없습니다. 한없이 조용하고 평화롭습니다. 같은 바다지만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믿음이란 이렇게 “하나님”이라는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가 그 속을 유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온갖 아름다운것들을 보고, 체험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 선하심은 바다가 온 세상을 덮은 것과 같이 차고 넘칩니다.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그 안에 뛰어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나의 “착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선하심의 바다에 뛰어들어 하나님을 숨쉬고,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경험하며,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더욱 깊어집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을 이렇게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지 않습니다. 그 마음 속에는 늘 불신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조각배처럼 내 생명을 지켜줄 무엇인가를 붙들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 조각배 위에 머물면서, 하나님과 거리를 두고 멀찌감치 서서 조심스럽게 살핍니다. 이렇게 불신과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보는 하나님은 그저 망망하고, 변덕스럽고, 위험한 바다에 불과합니다. 불신의 눈에는선하신 하나님과 그 안에 숨겨진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보배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바다 위에 떠 있지만 그 속을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손으로 빚으신 아름다운 창조물이며, 또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름다운 세계 속에 있습니다. 그안에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를 증거하는 수 없이 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을 때, 그 사람의 눈과 귀는 세상의 유혹에 쉽게 미혹되고, 두려운 말들에 쉽게 사로잡히며, 거짓된 이론들과 헛된가설들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그는 여전히 창조 이전의 공허함과 컴컴함과 혼돈 속에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착한 마음”입니다. 꼭 처음부터 하나님께 대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지 않아도 됩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내 마음을 하나님께 열면, 그 작은 틈새로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물밀듯이 내 영혼 속으로 흘러 들어옵니다. 그리고 내 인생의 창세기가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빛과 생명으로 채우시며 그 능력으로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이 은혜를 위해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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