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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자 하나님 - 절대자 하나님과 나 (창세기 1:1-31)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4. 7. 28. 00:49

https://youtu.be/RHQVQb56z10

 

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1 말씀을 기초로 절대자 하나님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절대자이시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대해서 절대자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공부는 라는 존재에 대해서, 그리고 나와 절대자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을 절대자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the Absolute”이라고 합니다. “절대적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Absolute” 어원적인 의미는 “free from imperfection or qualification”입니다. 우리 말로 하면 불완전함이 없고 조건에 매이지 않는으로 번역할 있겠습니다. 하나님은 존재하심을 위해서 어떤 조건에도 매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며, 영원히 계십니다. 사람은 태어난 날과 죽는 날이 있습니다. 생명의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계속해서 공기를 호흡하고, 음식을 섭취해야 합니다. 생물학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안전하고 평안한 환경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존재하심의 시작과 끝이 없이 영원히 계십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시되 그것들 위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시되, 존재하심을 위해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스스로 계신 이십니다.

 

하나님은 또한 완전하십니다. 하나님은 특히 능력과 선하심에 있어서 완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말씀하시자 빛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시고 말씀하시면 그것이 현실 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인 엘로힘(Elohim)” 자체로 전능한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능력은 끝이 없습니다. 어떤 존재도, 어떤 불가능도, 어떤 어려움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뜻을 거스르거나, 하시는 일을 막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말씀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선하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거룩하시며, 영광스러우십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거룩하심과, 영광스러우심은 어떤 결함도 없이 완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것들을 판단하시지만,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나를 맡길 있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있고, 영광 보기를 소망할 있습니다.

 

절대적이란 말의 다른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Not relative to” 상대적이 아니며 비교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의미에 따른 다른 절대자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입니다. “라는 존재는 존재의 가치와 의미에 있어서 절대적입니다. 나는 삼라만상의 중심에 있습니다. 주인공입니다. “라는 존재는 말할 없이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심지어 하나님보다도 신비로운 존재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라는 존재가 없다면 하나님 존재하실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내가 있음으로 다른 모든 것들이 존재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것이 가치있거나 의미있다고 하는 것은 나에게 그렇다는 것입니다. 내가 존재하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무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라는 존재의 가치와 의미는 절대적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만일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목숨을 바꾸겠느냐?” 하십니다. 여기서 목숨 단순히 생물학적인 생명 아닙니다. 영어 성경에는 “life” 또는 “soul” (KJV, NKJV, NLT, ESV) 번역되어 있습니다. 영혼혹은 자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치를 천하 비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주고도 바꿀 없을 만큼 소중하다고 강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에 관한 성경 말씀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 자기 아들 아끼지 않고 주셨습니다. 만일 제가 자신과 아이들의 생명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아마도 저는 자신을 희생하고 아이들의 생명을 선택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자기 아들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심지어 가장 소중한 자기 아들보다도 나를 소중히 여기신다는 말입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지만 이것이 바로 성경이 증거하는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가리켜 너희는 (god)이라하십니다. 말씀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장에서 인용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하시자 (요한복음 10:30), 이를 들은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한다면서 주님을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시편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시편 82:6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지존자의 아들들이라하십니다.  사람은 본래 신과 같은 존재이며 지존자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심지어 천사보다 귀합니다. 고린도전서 6:3절에 사도 바울이 말씀하기를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합니다. 히브리서 1:14절은 모든 천사들이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았다 합니다. 이는 내가 심지어 천사보다 높고 고귀한 존재임을 말씀합니다. 흥미롭게도 여기 인용된 말씀들은 모두 설의법 쓰고 있습니다. “OO하지 아니하냐? 하고 묻는 것입니다. 이는 쉽게 판단할 있는 사실을 질문 형식으로 말함으로써 듣는 사람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맡기는 수사법입니다. 이는 말씀들이 얼마나 확고하며 분명한 진리인지를 강조합니다.

 

명의 절대자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나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세상 마음을 빼앗깁니다. 결과 주인공 자리를 잃고 세상의 언저리에서 주변인으로 살아갑니다. 과정에서 절대자 하나님은 내게서 멀어지고 잊혀집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내가 세상에서 성공하면 스스로 주인이 되고, 주인공이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귀하고 화려한 것이 가득 쌓여 있는 세상을 바라보고 주위를 서성거립니다. 세상을 올려다보고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어느 누구도 주인이나 주인공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냥 그런 거짓된 소망으로 사람들을 속일 뿐입니다. 세상은 사람을 욕심의 , 죄의 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주인공이기는 커녕 평생  욕심에 이끌려서 세상을 방황하며 공허함과 허무함에 시달려야 합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도 피할 없는 운명입니다. 내가 세상을 부러워하며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는 동안, 하나님은 멀어지고 잊혀집니다. 진정한 절대자이시며 나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삶에 있으나마나 희미한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방황하는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하십니다. 그것은 모든 것들을 용광로 안에 던져 넣고 거센 불로 끓이고 태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요하지 않은 것들, 상대적인 것들, 일시적인 것들, 거짓된 것들은 타거나 증발해서 없어지고 오직 절대적인 , 영원한 , 실재하는 것만 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세상을 부러워하고 동경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면, 그가 원하는 모든 것들을 손에 넣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베드로의 꿈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주님과 베드로가 함께 용광로의 뜨거운 시련을 당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사람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여기서 사람들 “these” 이것들이라고 번역할 있습니다. 이것들은 베드로가 이제까지 사랑하던 모든 것들을 말합니다. “세상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베드로 사이에 이것들 제거하시고, 이제 오직 예수님과 베드로 나와 남아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대답해야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가 대답해야 질문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내가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이에 있는 모든 불순물들을 제거하시고 깨끗케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내가 주인과 주인공이 되어 새로운 시작을 하십니다. 매일 일을 반복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어린 양을 먹이라하십니다. 베드로가 세상을 사는 이유는 곳에 예수님의 양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광야와 같습니다. 그곳에는 내가 부러워하거나 동경할만한 것들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내가 섬겨야 하나님의 영혼들이 있을 뿐입니다. 가족, 친구들, 이웃들, 직장 동료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기도하고 섬기고 먹일 예수님의 양들입니다. 그들을 위해 내가 세상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그리고 사이의 관계는 절대적인 관계입니다. 사이의 관계가 절대적인 이유는 둘이 결코 서로 떨어질 없기 때문입니다. 관계는 태양과 지구의 관계로 비유될 있습니다. 태양과 지구는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구는 태양에 붙들려서 주위를 돌면서 빛과 열을 받아 생태계를 유지합니다. 만일 지구가 태양에 붙들려있는 관계를 싫어하고 궤도를 벗어난다면 즉시로 지구상의 생태계는 파괴되고 지구는 우주의 어둠 속을 떠도는 흙덩이에 불과할 것입니다. 지구가 아름다운 생태계를 유지하면서 안에 없이 많은 생명들을 품을 있는 것은 그것이 태양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태양과 지구는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기에 떨어져 있을 사실은 하나입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 존재입니다. 하지만 가치는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유효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가치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떠날 나는 나의 절대적인 가치를 잃고 한낱 흙덩이로 전락하게 됩니다. 태양이 지구를 붙들고 빛과 열을 선물하듯이, 하나님께서도 나에게 온갖 좋은 것들을 쏟아부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의로우심,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평안 나의 절대적인 가치에 걸맞는 온갖 좋은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내게 임하고 나를 입힙니다. 하나님과 나는 입니다. 나의 됨은 오직 하나님께서 안에 계시며 내가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이의 관계는 다른 의미에서 절대적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여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사람은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이며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하고 묻던 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들 하나인 요한입니다. 베드로는 요한을 가리키며 예수님께 주여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질문에, “내가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요한이 어떻게 것인지를 궁금해 했을까요? 여러가지 감정이 섞여 있을 것입니다. 경쟁심, 시기심도 있을 것이고, 혹시 나만 고생하는게 아닌가 하는 피해 의식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하십니다. 베드로가 관심을 가져야 유일한 것은 그와 예수님 사이의 관계입니다. 예수님과 요한의 관계가 어떠하든 그가 상관할 일이 전혀 아닙니다. 그가 일은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과 사이의 관계는 절대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만, 자주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축복하시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궁금해하며, 이를 자신과 비교합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요한은 베드로의 가장 가까운 동료이기도 하지만,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버릴 것이라고 예언하셨을 베드로는 장담하기를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6:33). 베드로는 그냥 제가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이렇게 말하지 않고, 앞에 주를 버릴지라도하면서 자신의 충성심이 어느 누구보다 뛰어남을 과시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끓는 열정에 찬물을 끼얹듯이, “오늘밤 울기 전에 네가 나를 부인하리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경쟁적인 믿음은 받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절대적인 믿음을 받으십니다. 절대적인 믿음은 남과 비교하지 않는믿음입니다. 우리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남과 비교하거나, 또는 이것으로 다른 사람과 경쟁해서는 안됩니다. 혹시 관계에 잘못이나 부족함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사이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이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과 사이의 관계가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태양을 도는 행성들은 지구 말고도 여럿 있습니다. 어떤 행성은 지구보다 가까이 태양을 돌며, 어떤 행성은 지구보다 크며, 어떤 행성은 지구보다 멋있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지구는 태양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지켜야 최적의 자리 있습니다. 우리 각자도 나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최적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곳이 내게는 세상의 중심입니다. 자리에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이의 관계는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없으며, 비교해서도 안되는 절대적인 관계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내가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우주와도 바꿀 없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절대적인 존재 지으셨습니다. 또한 절대자 하나님께서 친히 아버지가 되셔서 인생을 축복하시고 인도하십니다. 나로 주인공 삶을 살게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주 부족함을 느끼고, 여러 문제들로 인해 고민합니다. 우리는 하나를 선택할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감사하며 기도하거나, 혹은 욕심과 시기심에 이끌려 세상을 기웃거립니다.  감사와 기도는 영혼이 하나님을 향하여 날아가는 날개와 같습니다. 반대로 욕심과 시기심은 나를 세상에 묶어두는 족쇄와 같습니다. 영혼을 가두고 무겁게 짓누릅니다. 나는 오직 절대자 하나님 안에서만 진정한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기뻐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사람이 됩니다. 내가 매일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시기심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며, 기도와 감사로 하나님을 향해 날아가는 건강하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