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Tube 성경 공부

사울을 살려준 다윗 - 불리한 싸움 (사무엘상 24:1-7)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4. 8. 31. 16:26

https://youtu.be/BbxC124qSMg

 

안녕하세요. 오늘 성경 공부의 본문은 사무엘상 24:1-7 말씀입니다. “불리한 싸움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말씀에서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사울왕을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살려주고 심지어 사람들이 사울을 해치려   그를 보호합니다. 사울왕은 시기심으로 인해 충성된 다윗을 미워하고 그를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다윗이어디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사울은 3000명의 빼어난 용사들을 데리고 다윗을 잡으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사울왕이 위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에게 사울왕을 죽일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다윗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원수를 갚으라고 주신 기회라고 말하며 사울을 죽이라고 부추겼습니다. 다윗은 칼을 들고 사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차마 그를 죽이지는 못하고 다만 사울의 겉옷자락을 살짝 잘랐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도 다윗의 마음이찔려서 그는 사울 죽이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사울을 해치는 것도 엄격히 금하였습니다.

 

사실 다윗에게는 사울을 죽여도 되는, 혹은 죽여야 하는 여러가지 정당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다윗이 사울을 죽이는것은 결코 부당한 일이 아니며, 따라서 그가  일로 인해 그렇게 마음에 고통을 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사울이 무죄한 다윗을 죽이려고 악행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사울은 악인입니다.  악의 피해자로서 다윗이 사울을 죽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정당합니다.

 

 다윗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사울 죽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회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이런 주위 사람들의 뜻을 하나님의 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다윗이 못이기는  하면서 가만이 있기만해도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알아서 사울은 죽일 것이 뻔했습니다. 다윗은 얼마든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서 사울을 제거할  있었습니다.

 

사실 다윗은 이미 여러  전에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사울이 여전히 이스라엘 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그를 버리셨습니다. 이제 다윗이야말로 하나님과 선지자 사무엘이 인정하는 명실상부한 왕이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왕을 죽이는 것은 반역 아니라 오히려 이런 하나님의 뜻을이행하는 것으로  수도 있습니다.  다윗에게는 이미 민심을 돌릴만한 전국적인 영향력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 앞세워서 사울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를 충분한 명분을 갖고 있었습니다.

 

 현실적인 상황을   사울을 죽이지 않으면 다윗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도망자의 생활을 계속해야 합니다. 이러다가 결국사울의 칼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다윗에게는 그를 따르며 다윗 때문에 함께 고생하는 여러 사람들이 있으며, 사울의 통치하에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사정들을 고려해서라도, 사울을 죽이는 것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여도 좋은, 혹은 죽여야 하는 이유들이 이렇게 많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말하면 죽이지 못했다 해야  것입니다. 본문의 4절에 다윗이 일어나 사울의 겉옷자락을 베었다  것을 보면 다윗도처음에는 사울을 죽일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같습니다. 하지만 겨우 겉옷자락을  것으로도 그의 마음이 찔렸습니다. 여기서 마음이 찔렸다 말의 원문 표현은 그의 중심이 그를 세게 때렸다 (His heart smote him)”입니다. 어떤 성경들은 그의 양심(conscience) 그를 때렸다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다윗의 주위 사람들과 상황들은 모두 사울을 죽여도 좋다, 죽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마음의 중심은 사울 왕의 겉옷자락을 살짝 베기만  다윗을 심하게 혼내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람들의 말을 듣는 대신 그의 마음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다윗의 마음이 그에게 말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다윗은  속담을 인용하여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습니다.  자신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누가 뭐라고 해도 사울 왕을해치는 악을 범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악을 행하고 죄를 지으면서도 책임을 면하고 죄책감을 덜기 위해 여러 가지이유를 찾으며, 많은 변명들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이런 변명들은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악을 행하고 죄를 짓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본질이 악인이며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악을 행해도 되는 100가지 정당한이유들이 있더라도 그것들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합니다.  죽어도  짓은 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합니다. 다윗은 사울을 자신을 괴롭히는 원수 보지 않고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그리고   보았습니다. 그에게 사울을 해치는 일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하나님께서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자들을 같은 마음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40절에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너희가 여기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하나에게  것이  내게  것이니라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함으로써 많은 죄의 유혹에서 벗어날  있습니다.

 

다윗은  원수 갚으시는 하나님, 그리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위해 많은 선한 일들을 했지만, 그에 대해 사울은 오히려 악으로 응답했습니다. 우리는 이럴  실망하고 낙담합니다. 심지어 악을 행하는  악인은 평안하고번성하는데, 선을 행하는 나는 오히려 고난을 당할 , 우리는 매우 어려운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시편 73:1-3절에서도 말씀하기를,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실족할  하였고  걸음이 미끄러질 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합니다. 하지만 다윗을 이럴  의로우신 재판장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많은 부조리들을 봅니다.  애매하게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럴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은 이런 부당한 일들을 방관하시는가?” “ 나를 이런 곤경에 빠뜨리시는가?” 하며 불평합니다. 그리고 이럴  자신의 선한 노력들이 쓸데없다고 생각되어 힘이 빠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의를 행하십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소망 중에 선을 행하며 주님을기다릴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며 구원하십니다.

 

사울과 다윗의 싸움은 우리가 보기에 매우 불공평합니다. 사울은 무죄한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백주대낮에 자유롭게 3000명의 빼어난 용사들을 데리고 다윗을 쫓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쫓겨다니는 처지에 있으면서도 이렇게 악한 사울의 옷자락을 살짝  것만으로 심히 마음이 찔려서 스스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다윗은 사물의 몸에 손가락 하나  수가 없었습니다.다윗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매우 불리한 싸움입니다. 마치 손발이  묶인  레슬링 경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요? 이는 사울과 다윗이 서로 전혀 다른 싸움을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울의 싸움은  없는 싸움입니다.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뜻을 이루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려고 합니다. 그의 싸움에는 규칙이 없습니다. 자신이  왕이며 자신의 욕심이 법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법을 지키는 싸움을 싸웁니다.  싸움에서 다윗의 목표는이기는  아닙니다.  싸움에서 다윗의 목표는 하나님의   사랑과 믿음의 법을 온전히 지키는 것입니다. 그의 관심은 원수를 물리치거나, 싸움에서 이기거나, 승리의 상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관심은 하나님의  지키는 것입니다.안타깝게도 다윗의 마음은  하나님의 법에 꽁꽁 묶여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법을 어기는 것이 도망자의 삶을 사는 것보다훨씬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무리 사울을 죽일 이유가 많더라도 그를 죽일  없습니다. 다윗에게는 사울을 해치는것이 오히려 지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과의 싸움에서 지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싸우는 싸움입니다.

 

우리 보기에, 다윗은 불리한 싸움을 싸우고 있는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법대로 싸우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2:5절에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모든 경기에는 경기하는 선수들이 지켜야  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대로 경기하지 않으면  선수는 승패와 상관이 없이 바로 실격을 당합니다. 반칙을 해서 앞서 나간다고 하더라도 그는 이미  경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의옷자락을  , 그는 아슬아슬하게 법을 어길  했습니다. 다행히도 다윗은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습니다. 비슷한 광경을신약 성경에서도 찾아볼  있습니다. 검과 몽치로 무장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을 , 베드로는 칼을 빼어들고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그의 귀를 잘랐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말리시며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하십니다 (요한복음 18:10-11). 예수님의 싸움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싸움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일이지만 실상 그는 예수님의 싸움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싸움은법을 지키는 싸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가장 중요한 법은 바로 믿음과 사랑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믿으며, 모든이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오른 뺨을 치거든 편도 돌려대며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며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하십니다 (마태복음 5:39-41). 사도 바울은 말씀하기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싸움의 도구 오직 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싸움을 이기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사용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오직 믿음과 사랑으로 싸우라고 하십니다. 사랑과 믿음은 믿는 자의  다리와 같습니다. 믿는 자는 오직   다리로 서고, 달리고, 싸울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사울의 목숨을 살려준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결정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다윗이 사울을 죽일 정당한 이유는100가지도 넘었습니다. 아무도 그가 사울을 죽인 것을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울을 죽일만한 어떤 이유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택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울을 살려주었으며심지어 자기 사람들이 사울을 해치지 못하도록 그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다윗은 여전히 피해자요 도망자로 살아야했습니다.  결정으로 다윗은 스스로를 죽인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그의 길을 달렸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람들  하나님의 양무리를 돌보는 삶을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윗을 가리켜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뜻을  이루게 하리라” (사도행전 13:22)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결정의 순간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의 시기심으로 인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30 팔았습니다. 베드로는 두려움으로 인해 예수님을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사람들은 무지함으로 예수님 대신 바라바를 풀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빌라도는 그의 무책임함과 무능함 때문에 무죄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어주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두려움과 욕심을 따라 잘못된 결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결국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사람들의 죄악된 본성과 이로 인한 잘못된 결정들이 쌓이고 쌓여서 생긴 것이라고  있습니다. 당연히 예수님께는  부당한 십자가의 고난을 거절해도 되는  없이 많은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마음 속에는 오직 그가 경외하는 하나님 아버지만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만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영혼들에 대한 사랑만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납고, 비겁하고, 무지하고, 두려워하는 죄인들에게 둘러싸여 계셨지만,  마음은가을 하늘처럼 맑고 투명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시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순결한 마음으로, 오직 믿음과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서로 싸우고 경쟁하며, 속고 속이며, 죽고 죽입니다. 그들이 십자가를   그것은 실패이며 패배일 뿐입니다.어떻게 해서든 남을 죽이고 나를 살리는 것이 세상의 법입니다. 끝까지 십자가를 피하는 자가  이기는 자이며 성공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셨으며,  제자들에게도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하십니다 (누가복음 9:23). 이는 불리한 싸움입니다. 하지만 이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싸움입니다. 우리는 매일 십자가 앞에서 서야 합니다. 그리고 결정을 해야 합니다. 세상의 법을 따를 것인가 하나님의 법을 따를 것인가? 나의 뜻을 따라 예수님을 죽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님과 함께 죽을 것인가?  싸움은 사실나와,  안에 계신 하나님 사이의 싸움입니다.  속에 계신 하나님의 영이, 그리고 주님의 피로 인해 살아난 나의 양심이 나를 때리고 경계함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씨름하는 싸움입니다. 오직 믿음과 사랑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싸우라고 주신무기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능력만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거룩한 능력입니다. 오직 십자가만 세상을 이기는 능력입니다.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믿음과 사랑으로만, 오직 십자가로만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것임이요 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할  우리는 나를 내려다보시며 응원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뒤엉켜 육체의 싸움을 싸우는 대신, 하나님의 법으로, 십자가로싸우는 영적 싸움을 싸울  있습니다. 그리고  싸움의 끝에는 예수님이 계시고,  영원한 상이 있습니다. 우리를  불리한싸움, 거룩한 싸움, 이기는 싸움으로 초대하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