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번제단 (출애굽기 27:1-8)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4. 7. 1. 04:08

번제단

 

출애굽기 27:1-8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짓도록 명하신 성소의 여러 부분들 번제단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설계하신 성소의 구성 요소들은 출애굽기 31:7-1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회막과 증거궤와 위의 속죄소와 회막의 모든 기구와 상과 기구와 정금 등대와 모든 기구와 분향단과 번제단과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받침과  제사직을 행할 때에 입는 공교히 의복 제사장 아론의 성의와 아들들의 옷과 관유와 성소의 향기로운 향이라 무릇 내가 네게 명한대로 그들이 만들지니라.” 이들 번제단은 성막의 바깥뜰에 위치해 있으며, 성막을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성소의 기구입니다.

 

성막에는 개의 단이 있습니다. 하나는 번제단이고 다른 하나는 분향단입니다. (altar)이란 하나님께 바치는 헌물 또는 희생물을 올려놓는 상을 말합니다. 번제단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희생 제물을 태워 하나님께 드리고, 분향단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향을 태워 하나님께 드립니다. 번제단에 관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지니라하십니다. 조각목으로 만들되, 길이와 넓이가 각각 다섯 규빗인 정사각형 모양을 하며, 높이는 규빗으로 합니다. 모퉁이에는 모서리와 연하여 뿔을 달고, 전체를 놋으로 쌉니다. 그물을 만들고 모퉁이에 고리 넷을 달아서, 그물을 번제단의 중간 높이에 답니다. 번제단에 도구로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옮기는 그릇을 놋으로 만듭니다. 단을 들어 운반할 있도록 채를 조각목으로 만들고 놋으로 쌉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소를 세우고 운영하는데 필요한 모든 사람들과 물건들과 그것을 운영하는 방법들에 대해서 하나도 빠짐 없이 세밀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가운데 어떤 세속의 것들이나 인간적인 방법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여러 말로 경고하십니다. 가운데 하나가 (fire)”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번제단에 불을 친히 하늘로부터 보내십니다. 레위기 9:24 말씀입니다. “불이 여호와 앞에 나와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더라.” 레위기 6:12-13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위에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위에 태우고 번제물을 위에 벌여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위에 사를지며 불은 끊이지 않고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하십니다. 레위기 10:1-2절에 따르면,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향로에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했다가,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킴으로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 자신 또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상징합니다. 신명기 4:24 말씀입니다. “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 사람들이 죄가 그치지 않는 , 하나님의 질투 또한 멈추지 않을 것이며 항상 우리 가운데 소멸하는 불로 계실 것입니다. 제사의 근본적인 의미는 소멸하는 되시는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투의 마음으로 죄를 보고 애통해하며, 죄를 하나님 앞에 드러내고 주님의 소멸하는 불로 태우심과, 깨끗하게 하심과, 거룩하게 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불이 제물을 태우지만, 실상은 태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열정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받아 죄를 태우고 앞에서 나와 열정을 잠잠케 하며, 대신 하나님의 불을 영혼의 등불로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번제단을 통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일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지침은 레위기 1장에서 찾아볼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누가 하나님께서 소나 양을 예물로 드릴 경우, 제사장은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조각을 짐승의 머리와 기름, 내장 정갱이(다리) 위에 불사릅니다 (한글 개역성경은 레위기 1:6절을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뜬다 번역하고 있지만, 원문 영어 번역들은 모두 가죽을 벗기고 부위별로 나눈다 되어 있습니다). 내장은 사람의 마음을, 머리는 사람의 생각을, 정갱이(다리) 사람의 행실을, 그리고 기름은 삶의 열매를 상징한다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들을 생각하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것은 단순히 짐승의 몸을 불태우는 의식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행실과 삶의 열매를 포함하는 자신 영혼을 하나님께 드러내고 하나님의 불로 정결함을 입는 지극히 영적인 의식입니다. 시편 51:16-17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나은 제사를 위해 우리가 가져야 것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은 제사 드리기 위해 번제단을 더욱 크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이신 번제단의 크기는 가로, 세로가 각각 5 규빗이고 높이가 3 규빗이었습니다 (5 x 5 x 3). 이에 비해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설치된 번제단은 가로, 세로가 각각 20 규빗이고, 높이가 10 규빗이었습니다 (20 x 20 x 10) (역대하 4:1). 체적으로 비교하면 성막의 번제단에 비해 50배나 큽니다. 그런데 유다왕 아하스는 이보다 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다메섹의 신전에 있는 단을 보고는 이와 똑같은 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전에 있던 놋단을 옆으로 치우고 자신이 만든 단을 자리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에게 명하기를 앞으로 모든 번제와 소제를 위에드리라고 했습니다 (열왕기하 16:10-16). 헤롯 성전에 있던 번제단에 대해서는 성경에 언급되지 않았지만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성전 앞에 제단이 있는데 높이가 15규빗, 그리고 가로, 세로가 각각 50규빗이었다 (50 x 50 x 15) (Before this temple stood the altar, fifteen cubits high, and equal both in length and breadth; each of which dimensions was fifty cubits)” 합니다 (The Jewish War 5.5.6). 번제단의 폭이 모세의 성막의 바깥뜰의 폭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부침을 거듭하면서 쇠락하고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불신자 헤롯이 세운 헤롯 성전의 제단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처음 번제단에 비해 비교도 없이 커졌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지극히 육적인 의식으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애통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 앞에 제단과 많은 희생 재물을 자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거기에는 제사 드리는 자의 마음과 생각과 행실과 삶의 열매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누가 제단 위에 많은 짐승들을 태우는가가 신앙의 척도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여 만드신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는 곳이며 (출애굽기 25: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만나시며 교제하시는 곳입니다. 번제단은 성막 안으로 들어가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일은 죄를 속하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일이 없이는 이상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은 성막 안에 있든지 밖에 있든지 피할 없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의식하며, 이로 인해 고민하고 고통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밖에 없습니다. 그가 구하는 도움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에서 벗어나 평안히 살게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구하는 도움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살피시고, 드러내시고, 거기 무슨 악함이 있는지 보시고, 자신을 영원한 길로 인도해달라는 것입니다. 시편 139:1-4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다윗은 자신의 오장육부와 머리 속의 모든 생각과 앉고 일어서는 모든 행위들이 하나도 빠짐 없이 하나님 앞에 펼쳐져 있음을 봅니다. 그는 7-12절에서 노래합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찌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자리를 펼찌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다윗에게는 세상이 성소이며, 세상이 하나님의 처소이며, 세상이 하나님의 밝은 아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피하는 대신,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 앞에 드러내고, 주님의 사하심과 인도하심을 바라며, 담대히 그리고 자세히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 (시편 139:17-18). 다윗은 자신의 죄의 생각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생각을 보고 아름다움을 기뻐하고 찬양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대면합니다. 번제단 위에 자신을 올려놓고, 하나님의 보배로운 뜻이 불처럼 내려와 그의 몸에, 그의 삶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이 불에 타는 고통과 죽음을 경험하더라도 주님과 함께 하기를 사모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제사입니다. 제사는 하나님께로 침투해 들어가는 싸움입니다. 제사의 진정한 목적은 하나님과 동거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2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제사란 나의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행사 아닙니다. 제사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보배로운 뜻을 분별하고 뜻을 안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세대를 본받지 말라 합니다. 세상에는 세상의 길이 있습니다. 길은 우리 또한 주님을 믿기 전에 걷던 길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길을 따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신자의 삶은 마치 죽음의 걷는 제사의 희생양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신자의 삶에서 죽음의 냄새 맡습니다. 하지만, 냄새는 하나님께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고린도후서 2:14-16). 하나님께서는 번제단과 제사를 포함한 성막의 모든 양식들을 친히 계획하시고, 모세로 하여금 치의 어긋남도 없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양식을 따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어린 양이시며 또한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이십니다. 히브리서 9장에,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9:11), 영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려 (9:14),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셔서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9:12). 자신의 몸을 제사로 드림에 있어서, 예수님은 우리가 따라야 하나님의 완전한 본이 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씀하기를 성령의 불을 소멸하지 말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9). 불은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변화시켜 줍니다. 안에서 우리는 항상 번제단 위에 놓여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죽는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거룩함과 부활과 영원하 하나님과 함께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드림은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희생함은 희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 번제단 위에서 모든 것이 변합니다. 세상이 변하여 천국이 되고, 죄가 변하여 의가 되고, 통곡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저주가 변하여 축복이 됩니다. 이는 번제단 너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모든 발걸음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손을 잡아주시며,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열정을 부어주십니다. 비록 우리가 악할지라도, 우리에게는 하나님 외에 달리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받으사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평안한 가운데 주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복을 누릴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