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마가복음 7:1-23)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2. 6. 13. 01:01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마가복음 7:1-23

 

오늘 본문 말씀은 사람의 마음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말씀을 기초로 사람의 마음은 간단히 이렇게 설명할 있습니다. 첫째로, 사람의 마음은 악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사람의 마음은 거짓됩니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께서 특히 문제로 삼으시는 것은 거짓된 마음입니다. 거짓된 마음도 악한 마음의 일부이기는 하겠지만, 설명하자면, 거짓된 마음은 악한 마음을 더욱 악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있습니다. 비유로 말하자면, “악한 마음 몸에 병이 것과 같습니다. 병이 들었으면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보이고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야 것입니다. “거짓된 마음 병이 들었으면서도 건강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의 병은 치료받지 못하고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만일 병이 전염병이라면 더욱 위험합니다. 그가 건강하다고 믿고 그와 접촉한 사람들까지도 병에 걸리게 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악한 마음, 물론 그것 자체로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아주 치명적이지는 않습니다. 치료받고 나음을 입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거짓된 마음 치료의 소망까지도 없애버립니다. 그래서 매우 치명적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그리고 예수님께서 매우 힘들게 씨름을 하시는 사람들은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보다는 거짓된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죄악됨을 인정하지 않고 의롭다(건강하다)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21:31).

 

우리가 인정하듯이, 마음은 사람 근본입니다. 비록 우리는 자주 사람의 외모나 언변이나 다른 외적인 것들을 보고 잠깐 판단이 흐려지기는 하지만, 결국은 사람의 마음을 보고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보이지 않고 보여줄 수도 없으며,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어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것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 사는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물건을 만드는 회사에서는 제품의 품질을 관리하게 위해서 검사 합니다. 보통 자동차와 같이 크고 복잡한 물건은 전수 검사 합니다. 만들어지는 모든 제품을 일일이 검사를 하는 것입니다. 대량으로 생산되는 작은 물건들은 표본 검사 합니다. 무작위로 뽑아낸 샘플을 검사해서 생산되는 물건들 전체의 품질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회사의 사장이 자기 회사의 제품을 공급하는 계약을 하기 위해 중요한 바이어를 만났습니다. 사장은 자기 회사가 불량품을 없애기 위해서 제품들에 대해 얼마나 검사를 꼼꼼하게 하는지를 자랑스럽게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바이어는 사장에게 말했습니다. “검사를 하지 말아주십시오.” 사장은 매우 의아해하면서 아니 검사를 하지 말라니요? 그럼 품질 관리를 어떻게 합니까?” 바이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지막에 검사를 해서 불량품을 없애는 대신, 아예 처음부터 불량품이 생기지 않도록 생산 과정 전체를 바꾸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사실 어떤 물건이 불량인지를 마지막 검사를 통해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좋지 않은 재료가 사용되었을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내부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비로소 나타나는 결함일 수도 있고, 심지어 끝까지 발견되지 않는 하자가 숨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결함들을 피할 있는 유일한 길은 바이어가 요구한 대로, 생산 과정 전체를 완전히 바꾸어서 단계에서 모든 직원들이 최상의 재료와 최상의 기술과 최상의 성실함을 가지고, 최상의 작업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사장이 자랑했던 철저한 검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어는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완벽한 제품을 얻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완전히 바뀌어야 함을 알았던 것입니다.

 

마음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하나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전에 한국에서 청년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는 중국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에 취업을 하기 위해서 중국어 자격증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중국어 자격증이라는 말에 갑자기 숨이 막혔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자격증 따는 대신, 그냥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 친구를 사귀고, 중국 문화를 경험하고, 중국 역사를 공부하고, 중국 책을 읽어보고, 중국 드라마를 보고, 중국 노래를 부르고, 중국 여행을 해보라고 권했습니다. 혹시 회사 면접에서 면접관이 당신은 중국어 자격증이 없나요?” 하고 물어보면, 중국어 자격증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중국말로 설명해주라고 했습니다. 친구는 얼마 그가 원하는 대로 중국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에 취직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의 사람까지도 중국 관련 전문가로 변신하였습니다. “중국어 자격증" 용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중국말을 못하는 사람이 자신이 중국말을 안다고 거짓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 사람 전혀 한국인인데, 중국인처럼 보이기 위해 겉을 치장하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 , 대부분의 자격증 용도가 이러합니다.

 

성경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하셨습니다. 그가 다시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이에 청년은 다시 물었습니다. “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청년은 말씀에 순종할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주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청년은 매우 성실하게 계명들을 지키며 선한 일을 해왔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만큼 완벽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한 가지가 부족하다 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마음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의 재물임을 보셨습니다. 그의 경건하고 종교적인 삶은 흠잡을 없이 완벽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의 완벽한 겉모습 안에 깊이 감추어져 있는 속마음에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마음을 검사하시고 진단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마음 중심이 잘못되어 있음을 보시고, 부족함 치료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의 마음이 예수님 앞에 드러났을 , 그가 이제까지 살아왔던 선한 자격증들 거짓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거짓된 자격증들을 찢어버리고, 재물이 차지하고 있는 마음의 중심을 회개하고, 돌이켜 예수님을 따라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회개하는 대신, 그의 거짓된 삶을 고집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1절에는 이들이 예루살렘에서 왔다 말합니다. 종교에 관한 이스라엘 최고의 권위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내려와 위엄스러운 의관을 갖춘 ,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제자들과 갈릴리 시골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이들은 매의 으로 주위를 감시하다가 예수님의 제자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떡을 먹는 것을 포착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 따져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장로들의 유전(the tradition of elders)”이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들을 보다 지키기 위해서 생겨난 세부 규정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법들은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이라고 있습니다. 법들의 중심에는 항상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 사랑 모든 법들의 기본 정신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중심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세부 규정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자체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바로 그를 다스리는 되기 때문입니다. 법이 많아지고 규정들이 미세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이 법의 기본 정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따르지 않으니, 일거수일투족을 문자로 규정해서 마치 로봇을 조종하듯 사람들의 삶을 일일이 간섭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영혼 없는 로봇처럼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이런 규정들을 지킴으로써, 구원에 필요한 종교적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할 있습니다. 나아가 이런 거룩한겉모습이 견고해질수록 속에 감추어진 더럽고 죄악된속사람을 드러내고 치료받을 소망은 더욱 멀어지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이스라엘 최고의 신학자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떡을 먹음 보고 얼굴을 붉히며 예수님께 따지는 모습은 정말 편의 코미디가 아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들의 거짓됨을 책망하십니다.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하십니다. 8,9 말씀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는도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법으로 하나님의 법을 대신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아예 폐지해 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로 고르반 드십니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유대인들 중에는 부모님께 드릴만한 것에 고르반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그것을 부모님께 드리기를 회피하였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자신만 그것을 즐겼습니다. 저도 돌이켜보면 주일을 하나님께 드린다 명목으로 부모님을 자주 찾아 뵙지 않고 오히려 자기 시간을 많이 즐겼던 같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빙자하여, “ 부모를 공경하라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행태는 마음이 얼마나 악하며, 동시에 얼마나 거짓된 지를 보여줍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으면서 동시에 하나님과 매우 가까운 것처럼 행하며, 심지어 자신이 정말 그렇다고 믿을 만큼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열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이 근본적으로 악하며 더럽다고 하십니다. 20 말씀에 따르면,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더러우며, 그것이 사람을 진짜로 더럽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 속에 숨겨져 있는 악하고 더러운 것들을 펼쳐보이십니다. 그것은 여러가지 악한 생각들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몰상식하고 도의에 어긋난 말이나 행동)입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의 모습입니다. 예레미야 17:9 말씀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 그렇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가장 거짓되고 부패합니다. 그리고 문제는 우리가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거짓된 자격증들 위선으로 우리의 사람을 도배해서, 우리 속사람의 부패함을 잊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와중에 죄의 병은 치료의 소망도 없이 더욱 깊어져 가며, 영혼은 두려움 속에서 다가오는 심판의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회복할 있을까요? 사실 이것이야말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가르침들이 우리에게 알려주기를 원하는 하나의 주제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도 다름이 아니고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마음 갖게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 36:26절에,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날에 영을 너희 속에 두고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 마음,” “부드러운 마음 없다면,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돼지가 진주 목걸이를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돼지에게 진주 목걸이는 그냥 먹을 없는 돌멩이일 뿐입니다. 진주를 소유하기에 가장 합당한 사람은 아마도 진주의 가치를 가장 아는 사람일 것입니다 (마태복음 13:45-46). 예수님께서는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느니라하십니다 (마태복음 6:21). 참으로 진리의 말씀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사람이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에 머물러 있습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우리 마음이 머물러 있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보물 사랑하며, 그것을 잃었을 슬퍼하며, 그것을 많이 얻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다른 일들은 마음이 없이 형식적으로 하더라도, “보물 관한 일만은 매우 진지하고 성실하게 진심을 다해서 것입니다. “보물 대해서만큼은 거짓 없이 속과 겉이 일치하는 삶을 것입니다. 이는 그의 마음이 그의 보물이 있는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마음은 그런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가장 귀한 보물로 담고 있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그런 보물 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물 되심을 우리가 알아주기를 하나님은 간절히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상급이니라.”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대를 이을 자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가리켜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상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별로 기뻐하거나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따지듯이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렵니까? 아직도 아들이 없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보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보물 대를 이을 아들이었습니다. 이런 그의 시큰둥한 반응에도 아랑곳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상급이니라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대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구애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보물이 되셔서 그의 마음 가운데를 차지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시간이 흘러 아브라함은 소원대로 아들 이삭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장소에 번제단을 쌓고 이삭을 잡으려고 칼을 들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네가 아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께서 이제 아브라함이 그의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는 보물이 무엇인지 확인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 속에는 그가 사랑하는 독자 이삭 아니라 그가 경외하는 여호와 하나님 계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마음을 살피시고 시험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시편 26:2) “합격통지서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이외에도 사랑해야 대상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할 있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께서 예로 드신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부모님도 진심으로 사랑할 있고 형제들과 이웃들도 진심으로 사랑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심지어 소돔과 고모라의 죄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나아가 그들의 용서를 비는 끈질긴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 그는 외아들 이삭의 아빠가 아니라 인류를 사랑하는 열국의 아버지가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면, 그와 동시에 우리가 가졌던 모든 사랑의 관계들이 깨어지고 심지어 자기 자신도 사랑할 없는 비참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우리는 여전히 내가 무엇을 보물처럼 사랑할 것인지는 내가 결정한다고 생각할 있습니다. 또한 매우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전부이며 하나님을 떠난 나는 잘린 가지처럼 밖에 버려지고, 말라지고, 결국 타는 불에 던져질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 중심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보물로 좌정하실 , 이제 마음은 악하고 더러운 것들을 뿜어내는 것이 아니라, 맑은 생명의 물이 솟아나는 샘이 됩니다. 잠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잠언 14:27). 우리 각자가 숨은 죄를 자복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서 죄와 죽음을 이기고 생명의 샘물이 넘쳐흐르는 축복된 삶으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