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에스더에게

뒤에 있는 것, 앞에 있는 것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2. 11. 29. 14:48

마리아, 에스더야!

마리아가 대학 생활을 시작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네가 대학생이 된다니
아빠가 더 흥분이 된다.

하지만
마리아에게는
마냥 흥분되는 일도 아닐 것이다.

이제 정든 알링턴 고등학교와
친구들을 떠나서
낯선 대학교 캠퍼스에서
처음 보는 교수님들, 학생들과 함께
어려운 공부들을 해야 할테니까 말이다.

성경 말씀 중
빌립보서 3:13,14절에
이런 말씀이 있단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이 말씀에
"뒤에 있는 것"과
"앞에 있는 것"이 나온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한가지 일"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앞에 있는 것이란
바울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다.

오늘 아빠가
마리아, 에스더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바로
"뒤에 있는 것"과 "앞에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 또는
두려워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뒤에 있는 것"을 버리는 것과
"앞에 있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잘 이해가 되지 않지?

예를 들어 보자.

창세기 12: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그 당시 이름은 아브람)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께서
두 가지 명령을 하시는데
하나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과
다른 하나는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는 것"이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이란
아브라함의 고향 땅을 말할 것이다.

그가 태어나서 자란 곳,
가족들, 친척들, 친구들이 있는 곳,
그에게 익숙하고, 편하고, 정겨운 곳, ...

이런 고향 땅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신다.
"지시한 땅"도 아니고 "지시할 땅"이다.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곳인지,
누가 살고 있는지
아브라함은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령하실 때
"뒤에 있는 것"을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대신
여생을 고향 땅에서 편안하게 지내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단다.
그의 나이가 75세나 되었는데도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잘 배우지 못한 것 같다.

너희도 잘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의 노예의 삶으로부터 구해내셨단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목적은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고
또 그들을 통해 "제사장 나라"를 세우시고자 하심이지.

아브라함과 같이
이들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향해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야 했단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그게 쉽지 않았어.

자꾸 옛날 애굽에서 살 때가 생각이 나는 거야.
민수기 11:5절에 보면 그들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 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또 11:18절에서는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재미 있었다..."라는 말도 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는
무서운 거인족들이 살고 있었어.
민수기 13:31절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한 이스라엘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울면서 지도자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리고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한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틈만 나면
"뒤에 있는 것" 곧 애굽 땅에서의 삶을 그리워하며
그곳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리고
"앞에 있는 것"
곧 가나안 땅에서의 새 삶을 두려워하며
그곳에 들어가기를 주저한단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애굽에서의 삶은
사실 그렇게 그리워할 만한 것이 아니었단다.

그들의 말처럼 생선과 고기와 신선한 채소를
싼 값에 먹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애굽 땅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바로의 노예"로 힘겹게 살아야 했단다.
심지어 아들을 낳으면 나일강에 던져 죽여야 했단다.

출애굽기 2:23절에는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라고 쓰여 있다.

그들은 애굽에 있을 때 전혀 재미있지 않았단다.
오히려 그들은 매우 고통스러웠었고
이들을 불쌍히 여기사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것이다.
그리고 새 땅인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어려운 일들을 만날 때마다
옛날 일을 추억하면서
"그 때가 좋았어" 하고 불평했단다.

하나님께서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앞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시는데 많이 어려우셨겠지?
틈만 나면 "뒤에 있는 것"으로 돌아가려 하니 말이야.

아브라함은 어땠을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가나안 땅에 왔지만
그 땅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어.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외국인"이었단다.
나그네처럼 텐트를 치고 살았단다.

본토 친척 아비집에서 안정된 삶을 살다가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집도 없이 "텐트"에서 사는 아브라함을 생각해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겠지?

하지만 아브라함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단다!!!

창세기 2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늙은 종을 자기의 고향 땅에 보낸다.

하지만 종에게 의문이 있었다.
"여자가 나를 좇아 이 땅으로 오고자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의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24:5)

그러자 6절에서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답한다.
"삼가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

또 8절에서 반복해서 강조한다.
"만일 여자가 너를 좇아 오고자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이런 아브라함에 대해서
히브리서 11:15,16a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워하지도 않았단다.
생각도 안했다.

앞만 보고 똑바로 나아갔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본향을 사모했다.
그 본향은 "하늘"에 있는 것이다.

성경에는 "뒤에 있는 것"을 돌아보지 말도록
경계하는 말씀들이 많이 있단다.

예를 들면
창세기 19장에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

열왕기상 13장에
"오던 길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오던 길로 돌아가 먹고 마시다가
길에서 사자를 만나 죽은 "하나님의 사람"

누가복음 9:61절에서는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라고 한다.

이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9:62).

마리아, 에스더야!

그러면 구체적으로
"뒤에 있는 것"은 무엇이고
"앞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냥 "과거 일"이고 "장래 일"일까?

우리가 시작했던 빌립보서 3:13,14절 말씀으로 돌아가 보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이 말씀에서 "앞에 있는 것"은
"푯대"라고 하고 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앞에 있는 것"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 나라에 준비해 놓으신
모든 좋은 것들"이다.

쉽게 말하자면
"뒤에 있는 것"은 "땅에 있는 것"이고
"앞에 있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이다.

"뒤에 있는 것"은
너희들의 마음을 "세상"에 잡아두는 것들이다.

아브라함의 본토 친척 아비집,
롯의 아내가 아쉽게 돌아보던 기름진 요단 들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리워하던 고기, 생선, 싱싱한 채소들,
...
...
이런 것들은
땅에 있는 것들이고
"우리의 마음"을 땅에 매이게 하는 것들이란다.

"앞에 있는 것"은
너희들의 마음을 "하늘"에 붙들어 매는 것들이다.
아브라함이 사모한 "하늘에 있는 본향"이다.
생명과 의의 면류관, 영원한 안식,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 주 예수님,
하나님 나라,
...
...

마리아, 에스더야!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로 산 것처럼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지낸 것처럼
우리가 사는 삶도 "나그네의 삶"이다.

몸은 "땅"에 있지만
마음은 늘 "하늘"을 사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하늘"을 향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나그네의 삶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세상에 "정착(settle down)"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잊어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더
골로새서 3:1-3절 말씀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하나님의 메시지가 분명하지!

마리아, 에스더야!

아빠는
공부도 운동도 열심히 하고
일도 열심히 하고
춤도 잘 추고
옷도 예쁘게 입는
너희들이 너무나 이쁘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상의 어느 것도
너희들을 땅에 매이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모든 좋은 것들은
"하늘에" 있단다.
그리고 "너희들 안에" 있단다.
그러니 너희들이 세상에서 잃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단다.
오히려 많은 것들을 버려야 할 것이다.

마음을 늘 자유롭게 가볍게 하거라!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힘차게 앞을 보고 나아가거라!

사랑한다 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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