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함이 없는 삶
먼저 OO이의 첫 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또 지난 1년 동안 헌신적으로 아이를 키우시는 OOO님과 OOO님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이 분들의 자녀에 대한 사랑과 배려에 많은 감동을 받습니다. 시편 23:1편 말씀에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부족함이 없는 삶” 아마도 이것이야말로 모든 부모들이 그 자녀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엇인가가 부족하다”는 것은 궁핍한 것이며, 불행한 것입니다. 부모님들의 소원은 자녀들이 이런 “부족함” 또는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미리미리 살펴 필요한 것들을 잘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님의 마음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그의 삶을 통해 이런 여호와 하나님을 “그의 목자”로 만나고 그 감동을 시로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은 베들레헴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위로 7명의 형을 둔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형들이 많으니 먹을 것 입을 것도 넉넉하지 않았을 것이고, 더군다나 자질구레한 집안일들은 모두 막내 차지였을 것입니다. 사무엘상 16장에 보면 선지자 사무엘이 새 왕을 찾아 기름을 붓기 위해 베들레헴에 왔을 때, 그의 형들이 근사한 옷을 입고 사무엘을 만나고 있는 동안 다윗은 여전히 들판에 혼자 남아 양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16장 18절에 한 소년이 다윗을 가리켜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 즉 수금을 탈 줄을 알고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다윗은 이미 어렸을 때부터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허름한 옷을 입고 있어도 왕처럼 영광스러웠고, 들판에서 혼자 양을 치고 있어도 왕처럼 위엄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보면 “참 불쌍하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고 오히려 그와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며 그를 존경했습니다. 이렇게 여호와께서 그의 목자가 되실 때, 다윗은 부족한 것들이 많아도 전혀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온 세상이 마치 자기를 위해 존재하는 양 행복했습니다. 이는 세상의 주인 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을 친밀하게 인도하시는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많은 것들을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다윗에게서 부족함이 없는 삶이란 목자 되신 여호와 하나님의 양이 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삶”은 “내가 무엇을 소유하는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의 소유인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세상 사람들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차이입니다. 곧 세상 사람들은 “부족함이 없는 삶”을 위해 더 많은 것들을 소유하려 애쓰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을 “부족함이 없는 삶”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거하며 목자 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심지어 나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실지라도 두려움 없이 주님을 따라갑니다. 오직 주님 안에서만 만족합니다. “부족함이 없는 삶”은 내가 많은 것을 소유할 때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온전히 하나님의 소유가 될 때 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자녀를 키우는 일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가리켜 하는 말입니다. 내리사랑의 반대말을 “올리사랑” 또는 “치사랑”이라고 한답니다. 한국 속담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곧 아랫사람 사랑하기는 쉬어도 윗사람을 사랑하기는 어렵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자식 사랑과 하나님 사랑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하나님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불평을 했는데, 이들의 불평을 들어보면 이들의 자녀 사랑이 얼마나 각별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 17:3절에 보면, 마실 물이 없자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이들은 목이 말라 고통하는 자녀들을 보면서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자녀의 부족함이 없는 삶”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보다 먼저였습니다. 이들은 자녀들을 너무 걱정한 나머지 눈이 멀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자녀들의 행복의 근원이시며 그들의 목자이시며 그들의 아버지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고생을 사서 했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의 “부족함이 없는 삶”을 위해 자녀들에게 물려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많은 소유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들의 “부족함이 없는 삶”을 위해 우리가 물려줄 것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하되 그의 독생자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기까지 경외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사랑은 “내리사랑”보다 더 강한 “올리사랑”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외하는 믿음”으로 인해 그의 자손인 이삭과 야곱과 또 12지파와 심지어 우리 각자에게 말할 수 없이 큰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시편 34편 9,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며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제가 기도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OO이의 부모 되시는 OOO님, OOO님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하시고, 또 OO이의 “부족함이 없는 삶”을 위해 무엇보다도 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 OO이의 일생이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부족함이 없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빌며 주님의 이름으로 이를 축원합니다. 또 이곳에 참석한 우리 각자에게도 같은 축복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다 같이 시편 23:1절 말씀을 암송해 보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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