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거듭남과 하나님 나라와 영적인 삶 (요한복음 3:1-8)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6. 5. 10. 08:11

거듭남과 하나님 나라와 영적인 삶

 

요한복음 3:1-8

 

오늘 말씀은 예수님과 니고데모라는 사람 사이에 있었던 대화입니다. 본문 말씀에 따르면,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 10절에서 예수님은 그를 유대인의 선생이라고 부르십니다. 요한복음 19장에서 그는 예수님의 시신에 쓰기 위해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을 가지고 왔습니다. 부자였던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그리고 학문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더구나 다른 외식하는 바리새인들과 달리, 갈릴리 시골 사람인 예수님께 무엇인가를 듣고 배우기 위해 찾아온 겸손하고 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아마도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되고 싶어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그의 이름 니고데모사람들의 승리자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공한 니고데모라면 당연히 행복하고 문제 없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밤에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말 못할 절박한 문제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실 것으로 생각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3). 이 말씀은 니고데모의 문제가 무엇이며, 또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함께 설명합니다. 니고데모의 문제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전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니고데모에게 있어서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행복의 조건들을 모두 갖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병이 들었거나 가난한 사람들은 그 병이나 가난 때문에 자신이 불행하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자신의 행복하지 못함을 설명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이라고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니고데모가 승리자가 아니었습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무것도 모르는, 참으로 미약한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듣자,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하고 반문했습니다. 그는 학식이 높은 선생이었지만, 그의 이해력은 육적인 세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그에게 예수님께서 재차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해 여기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육적인 세계에 머물러 있는 니고데모에게 영적인 세계를 소개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영적인 세계이며, 오직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들어갈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또한 우리가 영적인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역사를 바람에 비유하여 설명하십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우리는 바람 소리를 들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성령님께서도 이렇게 일하십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예측하거나 설명하지 못합니다. 다만 믿음으로 그 역사하심에 우리를 맡길 뿐입니다. 이것은 사실 우리가 영적인 사람이 되기 어려운 이유들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예측 가능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 예견하고, 또 이에 대비하고 싶어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그래서 보험도 들고, 점도 치고, 통계치로 앞날을 예측하기도 하고, 전문가들의 의견도 청취하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도 예의 주시합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내 삶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상태로 통제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우리의 삶을 지켜줄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두렵고, 불안하고, 혼란하게 만들 뿐입니다. “영적인 삶이란 바람처럼 예측이 불가능하지만 늘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성령님께 자신을 맡기는 삶입니다. 세상의 잡을만한 것들을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손과 마음에 잡은 것들을 놓음으로써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인도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육적인 삶의 정상에 오른 니고데모가 그 꼭대기에서 발견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육적인 성취들이 거듭나 하나님 나라에 영적인 삶을 사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말해줍니다. 거듭남은 오직 물과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이는 회개하는 자에게 임하는 예수님의 보혈의 씻김과 성령의 역사하심을 말씀합니다. 세상에 어느 것도 이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또 육적인 것은 이 물과 성령의 역사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거듭나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적인 삶을 사는 것은 오직 예수님과 성령님의 공로입니다. 우리가 가진 육적인 자산들은 오히려 내려놓고 죽여야 하는 것들입니다.

 

꽃들에게 희망을”(Trina Paulus)이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줄무늬 애벌레입니다. 보다 의미 있고 흥분되는 삶을 찾아 길을 나선 줄무늬 애벌레는 멀리 꼭대기가 구름 위로 솟은 높은 기둥을 보았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그 기둥은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며 정상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수많은 애벌레들이었습니다. 줄무늬 애벌레는 이들이 무엇을 향해 이렇게 오르려고 하는지 알고 싶어했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바쁘게 움직일 뿐이었습니다. 막연한 기대를 갖고 줄무늬 애벌레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중간에 노랑 애벌레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오르기를 중단했지만, 구름에 가려진 기둥 꼭대기에 대한 줄무늬 애벌레의 호기심과 열망은 노랑 애벌레와의 사랑으로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다시 길을 나선 줄무늬 애벌레는 악전 고투 끝에 그 기둥의 꼭대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자리를 지키려는 무서운 긴장만이 가득했습니다. 그 사이에 노랑 애벌레는 나비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노랑 나비는 줄무늬 애벌레에게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의 속에 나비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비가 되기 위해 어두운 고치 속에 갇히는 것은 마치 죽는 것과 같이 무서웠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줄무늬 애벌레도 아름다운 나비가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인 승리자 니고데모는 마치 기둥 꼭대기에 올라선 줄무늬 애벌레와 같습니다. 그는 매우 성공적인 삶을 살았지만, 그가 정상에서 발견한 것은 그가 이룬 성공이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그를 더욱 공허하고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줄무늬 애벌레와 니고데모는 육적인 삶의 한계를 깨닫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줄무늬 애벌레가 컴컴한 고치 속에 들어가듯이, 니고데모는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벌거벗은 한 영혼으로 한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 나라 행복한 삶의 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구름 너머에 가려진 무엇인가를 향해 몸부림을 치는 애벌레의 육적인 삶을 삽니다. 그리고 그 끝에 이르면 자신의 불행이 끝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사실은 견딜 수 없는 허무와 긴장과 두려움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이와 같이 설명합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2:28).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로마서 14:17). 이 말씀들은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다름 아니라 성령 안에서의 삶인 것을 말해줍니다. 곧 거듭남으로 우리 영이 살아나고 또 내 영으로 성령님의 다스리심과 인도하심을 받게 되면 그것이 참으로 행복하고 능력 있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입니다. 전혀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육적인 삶영적인 삶을 같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8:5-8절 말씀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모두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영적인 삶, 기쁘고 능력 있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