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복 있는 사람은…… (시편 1:1-6)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6. 4. 20. 12:33

복 있는 사람은……

 

시편 1:1-6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1절은 복 있는 사람은……”이라고 시작합니다. 이 문장은 본래 감탄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어찌나 복이 있는지!” 또는 “~~한 사람은 어찌나 행복한지!”라는 뜻입니다. 시편 기자는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 기자만큼이나 우리 또한 복 있는그리고 행복한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매우 감사하고 다행스럽게도 오늘 본문을 통해서 그 길을 배울 수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의 삶을 가장 명료하고 표현한 말씀은 2절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나머지 말씀들은 이렇게 삶으로 또는 이렇게 살지 않음으로 인해서 생기는 당연한 결과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철을 따라서 과실을 맺고, 잎사귀가 무성하며, 그 행사가 다 형통합니다. 복 있는 삶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사랑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1절은 악인의 삶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여호와의 율법으로 시작하지 않고, “악인의 꾀로 시작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의인이든 악인이든 모두 어떤 지혜또는 지식을 따라서 살며, 그 지혜 또는 지식이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악인의 꾀세상의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지혜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삶에 적용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곧 죄인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이것이 계속되면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이것은 죄악된 삶에 매우 익숙해져서 마음이 둔해지고 심지어 부끄러움을 잊고 그것을 자랑하는 상태가 된 것을 말합니다. 죄는 이렇듯 자라고 장성합니다” (야고보1:15). 그리고 그 죄와 멸망의 시작은 악인의 꾀입니다. 우리의 나태한 마음 속에, 사단 마귀는 부지런히 이런 세상의 지혜, 악의 씨앗들을 심습니다. 무심코 받아들인 이런 악한 생각들이 우리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며, 우리의 삶을 지배하며,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천천히 끊어 오르는 물 속에서 개구리가 가만이 앉아 죽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 사람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물가에 심기운 나무는 그 물을 흡수하며 늘 푸르고 건강하게 자라며 열매를 맺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이것은 헌신(commitment)”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움직이거나 자리를 옮길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나무이니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헌신적인나무와 매우 상반되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3:7절에 세례 요한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곳에 나아오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세례 요한은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부릅니다. 뱀입니다. 뱀은 가늘고, 민첩하고, 미끄러운 몸으로 어려운 상황을 쉽게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눈에, 세례를 받기 위해 나아오는 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려고 나아오는 뱀들과 같았습니다. 교활한 기회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세례 요한에게 나아온 것은 그간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혹시 세례 요한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이면 어쩌나? 일단 가서 보고 메시아일 가능성이 있으면 세례라도 받아 두자!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참으로 지혜로운자들이었습니다. “악인의 꾀로 가득한, 그래서 자신들이 능히 뱀처럼 영리하게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의 눈가림에 결코 속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속 마음을 아십니다. 모든 나무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곧 땅 위에 보이는 줄기와 땅 아래 보이지 않는 뿌리입니다. 줄기의 어떠함은 뿌리의 어떠함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나무가 물이 충분하고 기름진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면, 그 줄기도 무성하게 자랍니다. 나무와 같이, 사람도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곧 보이는 겉 사람과, 보이지 않는 속 사람입니다. 보이지 않는 속 사람 곧 그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은, 마치 나무의 뿌리가 맑은 물과 영양분을 충분이 빨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겉 사람도 당연히 건강하고 아름답게 변합니다. 따로 화장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심지어 좋은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즐거워 함주야로 묵상함은 이 복 있는 자의 "속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깊이 흠뻑 빠져있는가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재의 삶을 보면 의인의 삶과 악인의 삶이 그리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뱀처럼 이익을 좇아서 약삭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심기운 나무처럼 자기 자리를 지키며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보다 더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둘이 장차 겪게 될 운명은 매우 다릅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이를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습니다.” 이는 때가 되면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열매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열매입니다. 뱀처럼 분주히 싸돌아 다니는 사람들도 나름 성공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지만 그 열매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열매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악인의 꾀를 좇아 이룬 최고의 성공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맺은 최악의 열매보다 훨씬 더 못합니다. 아니 전혀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며 악취가 나는 것입니다. 불로 소멸될 것들입니다.

 

의인과 악인의 삶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입니다. 4절에서는 악인을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말합니다. “악인의 꾀란 실상 세상에 부는 바람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뭔가 이익이 될 만한 것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이것은 거짓에 미혹되어 이리저리 흩날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9-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사랑을 받는 자들 곧 예수님의 사랑의 말씀을 받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시지만, 그 사랑을 받지 않는 자들에게는 유혹이 저들 가운데 역사하게 하셔서 그들로 심판을 받게 하십니다. 이는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고, 결국 의인의 회중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장차 부활할 것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을 말합니다. 5절에 심판을 견딘다고 되어 있는데, 이 말의 원어는 입니다. 마가복음 5:41절에 예수님께서 죽은 소녀에게 달리다쿰 (소녀야 일어나라)하시는데, 여기서 은 일어난다는 말씀입니다. 죽음을 견디고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의인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죽음을 경험하셨습니다. 하지만, 의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어내고 살아납니다. 죽음이 의인을 무덤 속에 가두어 둘 수 없습니다. 노아가 홍수를 이겨내고,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처럼, 의인 또한 하나님의 불시험을 견디고 살아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했기때문입니다.

 

농부가 농사를 짓는데 를 부릴 수 없습니다. 씨를 뿌림부터 곡식을 추수할 때까지 어느 한 과정도 소홀히 하거나 생략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고, 장차 하나님의 심판을 이기고,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결코 가벼운 일도, 쉬운 일도 아닙니다. “세상의 꾀로는 더더구나 절대로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진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복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진심으로그리고 전심으로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며, 이를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에 열매로 맺히기까지 인내하며 매우 꾸준히매일 매순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복이며, 심판을 이기는 복이며, 영원한 복입니다. 우리 모두가 복 있는 사람의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19-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