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요나의 표적 (마태복음 12:38-41)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6. 9. 7. 04:06

요나의 표적

 

마태복음 12:38-41

 

오늘 말씀은 표적에 관한 것입니다. “표적은 성경에서 이적, 기적, 징조, 이상 등 여러 다른 말들로 표현되기도 하며, 의미 또한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포괄해서 말하자면 표적은 초자연적인 사건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또 성경에 나타나는 표적들의 대부분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또는 하나님의 간섭하심입니다. 즉 모든 표적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시며 우리의 삶에 간섭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어떤 표적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명백히 말하고 있지 않더라도, 우리는 당연히 그 표적을 행하신 하나님을 보아야 하며, 왜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셔야 했는지 그 뜻을 묻고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은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표적을 행하시는 목적입니다. 표적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대해 말씀하시는 하나의 소통 수단(a means of communicatio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표적 뒤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면 그 표적은 아무런 쓸모도 의미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표적을 구하는 이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악하고 음란하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상태를 말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사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표적이란 매우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보아서는 안 될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사기 13장에서 삼손의 부모인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자 여호와의 사자가 그들 앞에서 이적을 행하였습니다. 불꽃이 제단으로부터 올라가고 여호와의 사자가 이 불꽃과 함께 하늘로 올라간 것입니다. 이에 이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며 두려워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 또한 예수님께서 그로 배가 잠기도록 많은 물고기들을 잡게 하셨을 때, “와 신기하네요!” 하고 탄성을 지르는 대신, 예수님 앞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말하는 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전혀없었습니다. 참으로 악하고 음란한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십니다. 요나는 구약의 선지자들 중 한 사람으로 니느웨라는 큰 도시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이 요나의 메시지에 대한 니느웨 백성들의 반응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요나 3:5). 왕까지도 왕복을 벗고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았습니다. 또 모든 악한 일들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의 뜻을 돌이키기 위해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니느웨성은 가로질러가는데도 3일이 걸리는 큰 성이었습니다. 그런 성읍이 40일 후에 무너질 것이라는 요나의 메시지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을 보호해주실 것을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믿음은 다 잘 될 거야!” 하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아니라,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철저한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이란, 구약에 선지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사흘 밤낮을 갇혀있다가 살아나온 사건을 통해 암시된 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사건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그들의 악독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이 하나님의 명령을 싫어하여 도망갔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요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요나 4:2).  요나는 악한 나라 니느웨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전한 메시지를 듣고 혹시 이들이 회개하고 그 악에서 돌이키기라도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실 것이 틀림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싫어한 요나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반대 방향으로 도망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요나를 바닷물에 빠뜨리시고 또 큰 물고기가 삼키도록 하셨습니다.

 

요나서 2장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나의 기도를 꼼꼼히 읽고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기도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시간이 그가 하나님을 만나는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그 기도는 고난으로 인해 여호와께 부르짖음으로 시작하여 구원의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으로 끝이 납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죽음과 부활을 함께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고집스런 요나를 돌이키시기 위한 하나님의 간섭하심이었습니다. 이 역사를 통해서 요나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말을 듣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나 3:3a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다시 만난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물고기 뱃속에 들어갈 때, 곧 십자가 죽음을 경험할 때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는 아주 특별한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곳은 오직 하나님께만 부르짖으며, 간절히 주님의 음성만을 기다리며 듣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죽음의 깊이만큼이나 높고, 그 어둠만큼이나 밝고, 그 고통만큼이나 기쁘고 감사한 하나님의 구원 곧 부활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거듭 우리에게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장차 예수님께서 오실 것을 예언하여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어다" (신명기 18:15).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그 위에 성령께서 임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구름 가운데 임하사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마가복음 9:7).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 올라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셨을 때에도 똑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구름 속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마태복음 17:5).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전하신 말씀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태복음 4:17). 예수님께서는 여러 말로 천국에 대해 설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천국이란 행복한 낙원을 아닙니다. 천국을 설명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비유들은 거의 모두 장차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임하신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시작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점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는 요나의 메시지와 같은 것입니다.

 

요나의 메시지나 예수님의 메시지나 모두 매우 두렵고 급박한 것입니다. 주의하여 듣고 즉시 반응해야 하는 말씀들입니다. 요나의 메시지를 들었을 때, 니느웨 성 사람들은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서 회개하며 부르짖어 주님의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이들은 마치 하나님의 심판이 벌써 그들에게 임한 것처럼, 마치 하늘에서 유황불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오직 경고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이들은 사색이 되었습니다. 이미 죽은 자들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살 길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신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또한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천국 메시지를 듣는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반응입니다. 예수님의 천국 메시지를 들을 때,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얼굴 빛이 변하고, 심장이 떨리고, 다리에 힘이 빠져 그만 땅에 주저앉아야 합니다. “죽은 자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그 말씀을 자세히 살펴 헤아려 순종함으로써 살 길을 찾아야 합니다.

 

결과를 놓고 볼 때, 하나님께서 요나를 니느웨 성에 보내신 것은 그들을 멸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죄를 깨닫고 돌이키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이들이 요나를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 것은 다름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진리의 말씀이 되심은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로 증명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순종하여 죽으셨을 때 하나님께서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이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항상 그 아들과 함께 하시며, 간섭하시며, 보호하심을 보여주는 표적입니다. 또한 이 표적은 네가 회개하라! 세상에 대해서 완전히 죽어라! 네 마음을 내게로 완전히 돌이켜라! 그러면 내가 너를 살리겠다!”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에 대한 보장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신앙은 다분히 축복은 구하지만 듣지는 않는 신앙입니다. “표적을 구하지만 믿지는 않는 신앙입니다. “은혜는 구하지만 순종은 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신앙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외치십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왔느니라!” 매우 다급하고 절박한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남은 시간이 40일이든 40년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바로 오늘, 바로 지금 돌이켜야 합니다. 오늘 지금 회개하지 않는 때 내일 우리가 보게 될 것은 오직 더 완악해진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천국 복음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미 충분히 증거되었습니다. 이 표적으로 증거된 복음을 믿지 않을 때, 우리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다른 표적은 없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왔느니라!” 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 마음을 철저히 하나님께로 돌이킴으로, 우리에게 임하는 천국을 예비하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