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혈루증 걸린 여인을 치료하시고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예수님 - 죽음의 두려움으로 살 것인가 부활의 소망으로 살 것인가? (마가복음 5:21-43)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8. 7. 23. 01:27

혈루증 걸린 여인을 치료하시고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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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두려움으로 살 것인가 부활의 소망으로 살 것인가? -

 

마가복음 5:21-43

 

오늘 설교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질문은 죽음의 두려움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부활의 소망으로 살 것인가?” 입니다. 사실 오늘 설교의 요지는 이 질문으로 이미 다 전달된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많은 토론이나 생각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적인 시각에서 우리는 사람들의 삶을 크게 두 가지 모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죽음의 두려움에 쫓겨 도망가는삶이며, 다른 하나는부활의 소망을 좇아 달려가는삶입니다. 둘 다 열심히 달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반대의 삶입니다. 전자는 뒤를 돌아보는 삶이며, 후자는 앞을 바라보는 삶입니다. 전자는 땅에 매인 삶이며, 후자는 하늘에 매인 삶입니다. 전자는 육적인 삶이며, 후자는 영적인 삶입니다. 전자는 반드시 실패하는 삶이며, 후자는 반드시 성공하는 삶입니다. 전자의 끝은 죽음이며, 후자의 끝은 부활과 영생입니다. 당연히 바람직한 삶의 모드는 후자입니다. 소망을 좇아 달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죽음의 두려움에 쫓겨사는 것이 아니라부활의 소망을 좇아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할 말씀에서는 예수님께 나아온 두 사람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야이로라 하는 회당장이며, 다른 한 사람은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는 한 여자입니다. 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문제를 안고 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방식도 다릅니다. 하지만 이 두 이야기는 모두 예수님 안에 있는믿음과 구원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이 두 이야기들을 잘 비교해 봄으로써 우리는 “믿음과 구원에 관한 중요한 교훈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훈들 중 하나는 우리의 믿음의 뿌리가죽음의 두려움에 있지 않고, “부활의 소망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부활의 소망을 좇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나님 나라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는 믿음의 경주를 할 수 있습니다.

 

12년 동안 혈루증(bleeding)을 앓고 있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혈루증은 레위기(Leviticus)에는유출병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병은 여자의 신체 내부의 이상으로 인해 불규칙적으로 하혈을 하는 만성 질환입니다. 이 병 자체가 말할 수 없이 큰 고통인데, 게다가 레위기 15장 말씀에 따르면, 혈루증은 부정한 병으로 여겨졌으며 이 병을 가진 자와 접촉한 사람들이나 물건들도 모두 부정한 것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이 여자는 12년이나 되는 오랜 세월 동안 이 병에 시달렸습니다. 이 뿐 아니라 이 병 때문에 많은 의원들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으며, 있는 재산도 모두 허비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이 낫기는커녕 도리어 더 악화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 여자의 영혼은 병이 악화된 것보다 더 심하게 손상되었을 것입니다. 유출병은 이 여자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완전히 망가뜨렸습니다. 그녀는 숨을 쉬고는 있었지만 거의 죽은 자와 같았습니다. 이 불쌍한 여인은 한 줄기의 소망의 빛도 비추지 않는 깊은 어둠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에게 빛이 임했습니다. 예수님께 대해서 들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들을 내어쫓으시고, 문둥병자들을 깨끗하게 하시며, 중풍병자를 일으키시고, 손 마른 자를 고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치료의 능력을 들은 여자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12년 동안 병을 앓아온 이 여자는 혈루증이 얼마나 치료하기 어려운 병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서 그녀는 수 없이 많은 의사들을 만났으며, 또 많은 재산을 날렸습니다. 이런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이 병은 여전히 그녀의 몸을 떠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심해질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의 치료의 능력을 생각할 때, 자신의 병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이 12년 묵은 지독한 질병을 치료하는데 충분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우리는 그녀가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졌는지 잘 모릅니다. 성경에는 그냥 그녀가 예수님에 대해 들었다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들음이 그녀의 마음 속에 믿음으로 뿌리를 내린 것 같습니다. 여자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예수님의 뒤로 접근하여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댔습니다. 그러자 곧 그녀의 몸 속에 있던 혈루 근원이 말라버렸습니다. 병이 나은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병이 나았다는 것을 몸으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믿음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녀에게 새로운 생명이 임했습니다.

 

오늘 말씀의 또 다른 주인공인 회당장 야이로는 이 여자와는 사뭇 다르게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들과 함께 바닷가에 계실 때, 야이로는 예수님께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려 간청했습니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야이로에게는 열두 살 난 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하는 딸이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야이로는 예수님께 딸을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죽기 전에, 아직 숨이 붙어있을 동안에 속히 가서 그 위에 손을 얹어달라고 간절히 구했습니다. 본문 23절에는많이 간구하였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죽어가는 딸을 생각하는 아버지의절박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뒤로 몰래 와서 옷을 만진 여자와 대조가 됩니다. 이 아버지 야이로는 비록 몸은 예수님 앞에 엎드려 있지만, 마음은 벌써 딸에게로 달려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 딸이 죽기 전에 도착하도록 발걸음을 재촉했을 것입니다. 순간순간이 입술이 타고, 피가 마르고, 손에 땀이 나는 초조함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야이로의 간청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와 함께 그의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그런데 야이로의 다급한 마음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길 가는 도중에 이 혈루증 걸린 여인을 만나 시간을 허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딸이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딸의 죽음과 함께 야이로가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가는 일도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악화된 것이 아니고, 상황이 아예 끝나버린 것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야이로는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딸이 죽었는데 도대체 무엇을 믿으라는 것일까? 이 분은 이 끝나버린 상황에서도 무엇인가를 하실 수 있단 말인가? 딸이 죽은 이 마당에 무슨 소망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여러 질문들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세가 있었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딸의 죽음으로 인해 야이로에게 임한 깊은 절망과 어두움을 비집고 예수님의 말씀이 밝은 빛으로 강하게 파고들었습니다. 딸의 숨이 붙어있을 때는 오로지 딸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뿐이었는데, 딸이 죽은 지금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딸이 살아 있을 때는 그 약하게 뛰는 맥박에 애간장을 태우며 그 가느다란 숨소리에 매달렸었는데, 이제는 오직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이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뜻밖에 야이로는 딸의 죽음 앞에서두려움 없는 참 믿음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혈루증 걸린 여인의 12년 된 고질병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시고즉시치료하셨습니다. 또 죽은 소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지신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만물을 지으시고 붙드시는 창조의 말씀이십니다. 예수님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믿음에 한계가 있을 뿐입니다. 무엇이 우리의 믿음을 제한하는 것입니까? 왜 우리의 믿음이 예수님의 무한하신 능력에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는 “죽음의 두려움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만, 자주 그 믿음은죽음을 피하기 위한믿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가죽기 전에오셔서 구원해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가 어찌하든 죽음을 모면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자주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이고 구원입니다. 하지만 이 믿음은 실상 두려움에서 나온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죽음 앞에서는 예수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십니다. 그리고죽음의 두려움으로 나아오는 자들의 기도도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죽음의 두려움에서 생긴 약한 믿음에 머물지 않고, 더욱 강하고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때로죽음이 우리를 삼키도록 허락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더 크신 능력, 곧 부활의 능력을 보이시며, 이를 통해 우리가부활의 소망을 갖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사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통해서 우리에게 증거하신 복음입니다. 고린도후서 13:4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세상에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약함을 입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드러났습니다. 이 능력은 또한 예수님을 통해서 믿는 자들 가운데 역사하는 능력입니다. “부활의 능력입니다.

 

크리스천이란 엄격히 말하면이미 죽은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약함을 입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다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는부활의 소망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 소망을 좇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기본 모드가 되어야 합니다. “부활의 소망으로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성경은 자주 크리스천의 삶을 달리기또는 경주(race)’에 비유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인생 여정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디모데후서 4:7b). 또 갈라디아서 5:7절에서도 바울은 믿음을 저버린 갈라디아 성도들을 책망하며 말합니다.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부활의 소망으로 사는 삶이란 부활이라는 결승점을 향해 인생 전체를 하나의 레이스로 달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식탁에 자주 오르는 고등어(mackerel)라는 생선이 있습니다. 브리mackerel.jpg태니커 사전에 따르면 이 물고기는 헤엄치는 것을 멈출 수 없다고 합니다. 고등어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번도 멈추지 않고 매우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수영을 한다고 합니다. 따로 호흡기나 부레가 없어서 이렇게 빨리 움직이지 않고는 물에 떠 있을 수도 호흡을 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보통 6-7년을 사는 고등어의 생애 전체가 한 단일 레이스(a single race)”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또한 우리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크리스천에게는 세상에서 머물면서 세상을 호흡할 수 있는 생명 장치들이 다 제거되었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편안함을 위해서 달리기를 멈추면 오히려 숨을 쉴 수 없게 되고 몸이 무거워져 밑으로 가라앉아버리고 결국 죽게 됩니다. 크리스천의 살 길은 오직 전력 질주를 통해 예수님의 물을 마시며 이를 통해 성령을 호흡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묵상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주의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내가 이미 죽은 자인 것을 인정하고 이제 더 이상 썩을 육체를 위해 심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평생을 그렇게 달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큰 선물 곧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주셨습니다. 이 두 선물의 의미는 참으로 깊고 깊어서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비추어 말하자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죽음의 두려움에 쫓겨 살지 말고, “부활의 소망을 좇아 살아라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소망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믿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이 능력이 혈루증 걸린 여인의 불치병을 먼지를 털 듯 털어냈으며, 야이로의 죽은 딸을 잠을 깨우듯 일으켰습니다. 또 이 능력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으며,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의 약속이 됩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이 얼마나 놀라운 능력의 말씀입니까? 이 주님의 말씀들이 우리 영혼 깊이 스며들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죽음의 두려움을 몰아내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의 생명의 능력이 역사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세포와 신경과 골수와 뼈마디가 예수님 안에 있는부활의 소망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