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예수님 (히브리서 1:1-14)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9. 3. 18. 01:08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예수님

 

 

 

히브리서 1:1-14

 

 

 

 

 

 

왼쪽 그림은 미국항공우주국 (NASA)이 제공한 Hubble Ultra-Deep Field(HUDF)라는 이미지입니다. 이 이미지는 2004년에 허블 우주 망원경(Hubble Space Telescope)을 이용하여 얻은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이 우주 망원경의 초점이 주로 관측이 가능한 천체들 곧 행성들, 별들 및 운하들에 맞추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득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깊은 곳을 탐구하고 싶어졌으며, 그래서 이 우주 망원경의 초점을 아무런 천체들도 관측되지 않는 아주 어둡고 깊은 빈 공간의 아주 작은 틈에 맞추었습니다. 수 개월 동안의 관측과 데이터 수집을 통해서 마침내 천문학자들은 이 깊은 어둠 속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이 얻은 이 이미지에는 약 10,000여 개의 운하들이 잡혔습니다. 이것은 이 방대한 하늘 중에서 새끼 손톱보다도 작은 매우 좁은 창을 통해서 얻은 것입니다. 이 작은 창을 통해서 천문학자들은 그렇게 많은 새로운 운하들을 관측했으며, 이후 더 좋은 성능의 장비를 이용했을 때는 심지어 더 많은 운하들을 찾아냈습니다. 과학자들은 우주 공간에 약 2조 개의 운하들이 존재할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다만 추정일뿐 우리는 사람이 갖고 있는 가장 최상의 관측 기술을 이용하더라도 이 우주의 한계를 알 수 없습니다. NASA이미지는 우주의 방대함에 대한 사람들의 경탄을 불러일으켰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은 이 어마어마하게 큰 우주에 비해 한없이 작고 보잘것없는 자신을 보면서 깊은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 이미지를 보면서 우리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며 나의 최후의 목적지가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는 이 거대한 운하의 강력하고 깊은 블랙홀(Black Hole)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우주의 무지막지한 소용돌이 속에 먼지처럼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자요 구속자이시며, 우리의 맏형(Eldest Brother)이 되십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성경 본문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뛰어나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의 뛰어나심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구성하며, 우리 믿음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없이는, 우리는 공허한 어둠 속을 떠돌며, 블랙홀 주위를 맴돌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먼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실 종교란 무엇이 옳고 그른가, 또는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관한 가르침이 먼저가 아닙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누가 궁극적인 권세(power)를 갖고 있으며 누가 나와 이 우주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할 최종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를 인식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주님의 무게(gravity)를 느끼게 되며 그에게 이끌리게 되는 것입니다. 위성이 그것보다 훨씬 더 크고 무거운 지구 주위를 맴도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 주위를 맴돌며, 주님으로부터 배우며, 결국은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예수님께서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권세를 가지셨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권세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역사를 통해서, 그리고 오늘날에도 권력을 남용하는 끔찍한 사례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권력이라는 말은 아무 힘도 없는 것처럼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우리의 겸손하신 주님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갖고 계시며 우리에게 보여주신 능력은 우리가 세상에서 목격하는 파괴적이고 타락한 권력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얼마나 능력이 많으신 분이신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온 세상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또 이것들을 주관하시고 운행하시는 분이십니다. 2절은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하며, 3절은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라고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정결하게 하시는 구속자(Redeemer)이십니다. 3절은 또 “(그가)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말씀합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하늘의 천사들을 호령하시는 대장이십니다. 6절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말씀하며, 7절은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말씀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 자신이 영원한 하나님이시며, 또 그의 보좌는 영영히 계속됩니다. 이에 대해 8절은,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합니다. 11,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것들(땅과 하늘)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거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이렇게 짧은 본문에 그려진 것만으로도, 예수님의 뛰어나심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중심이 있을 때, 모든 것들이 질서 있게 유지가 됩니다. 반대로 중심이 없으면 혼돈에 빠지며 무너지게 됩니다. 하늘의 별들은 은하의 중심을 회전하며 소용돌이칩니다. 태양계에 있는 행성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그 둘레에 정해진 각각의 경로를 따라 운행을 합니다. 달은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을 하며, 심지어 지구 또한 그것의 자전축을 중심으로 24시간 주기의 자전을 합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영적인 삶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가 단일한 중심을 따라 움직일 때 (그것이 좋고 나쁜 여부를 떠나서), 우리는 질서 있는 삶을 살며 모든 것이 원만하게 진행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 중심이 없을 때, 우리는 방향을 잃게 되고, 무엇을 해야 할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게 됩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살며 고통을 당하고 있는 그의 백성들을 구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명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출애굽기 3:10) 이를 들은 모세는 어이가 없어서 하나님께 대답했습니다.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3:11) 그 당시 애굽왕 바로는 하늘의 태양과 같이, 세상에서 유일한 권력이었습니다. 그는 온 땅을 지배하며 모든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권세를 가졌습니다. 이에 비해, 모세는 미디안 광야의 외진 곳에서 장인의 양떼들을 돌보는 일개 목자에 불과했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아무도 여호와라는 신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바로의 손아귀에서 이끌어내기 위해 모세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히브리 노예들이 바로와 그의 왕국과 그 왕국의 비옥한 땅이 갖고 있는 엄청난 중력(gravity)을 저항하며,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그들이 아직 잘 모르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 본문의 1-3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허블 우주 망원경이 우주의 숨겨진 이미지를 드러냈을 때, 사람들은 모두 그것의 광대함에 놀라면서 동시에 자신들이 알 수 없는 곳을 떠돌아다니는 먼지만도 못한 존재인 것처럼 느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우주는 창조자가 아니라 피조물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는, 우주는 아무리 방대하더라도 먼지를 모아놓은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우주는 생명도 없고 의미도 없는 공허에 불과합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대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며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허블 우주 망원경이 우주의 감추어진 것들을 드러낸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감추어진 영광을 드러내시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누구신가를 매우 분명하고 정확하게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하나인 빌립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한복음 14:8,9).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시이시며, 예수님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면에서 예수님은 온전하신 하나님이시며, 이것은 특히 주님의 거룩하심과, 그의 능력과, 또 그 백성들을 향하신 구원의 은혜에 있어서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옛적에 그의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을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완전한 계시이며 더 이상의 계시가 없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들이 예수님을 통해 모두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는 죽은 영혼을 살리시며 그에게 참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말씀이십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에베소서 3:14-19절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의 인생 문제는 공허함이었습니다. 저는 좋은 부모님들과 착한 형제들 속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꽤 영리하고 잘생긴 소년으로 늘 좋은 친구들이 주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책 읽기를 좋아해서 동화나 탐험 이야기나 신화들을 읽으며 상상력을 넓혀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삶은 별로 재미가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깨닫게 된 것은 사람이 사는 것이 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년이 커서 어른이 되고, 어른이 더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고, 때가 되면 죽고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허무하고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생명의 말씀이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그 때까지 읽었던 많은 이야기들과는 달리, 예수님의 이야기는 내 속에 등불을 켜고 내 영혼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인가로 가득 채웠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의 능력과 사랑으로 내 안에 살아계시며, 그의 영광의 풍요로움으로 내게 모든 것들을 주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나는 참으로 충만하고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주위의 사람들이나 사물들로부터 크고 작은 영향을 받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중력(gravity)을 갖고 있으며, 우리를 끊임없이 밀고 당기며 흔들어댑니다. 이런 와중에 우리는 자주 길을 잃고 어디로 갈지를 몰라 방황하게 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시는 진정한 중심이 되십니다. 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과 능력으로 채우시며, 우리를 하나님과 그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모든 것들 위에 뛰어나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로 돌아가며, 오직 예수님의 뛰어나심 위에 우리의 신앙을 세울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