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마가복음 2:21-22)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1. 11. 1. 21:40

 포도주는  부대에

 

마가복음 2:21-22

 

오늘 설교의 제목이 되는  포도주는  부대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익숙한 말입니다. “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한한 가능성이  안에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  대한 우리의 느낌은 물론  반대겠죠? 지금은 하나님 나라에 계신 어머니는 생업으로 한복 짓는 일을 하셨습니다. 솜씨도 좋으시고 일에 대한 열정도 많으신지라 옷이나 옷감의 종류에 상관 없이  예쁘고 맵시 있는 옷들을 지어내셨습니다.  만든 옷을 손님에게 입혀 놓고 앞뒤를 둘러보시면서 흐뭇해 하셨습니다.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지만  어머니가 정말 맡기 싫어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손님이   가져와서 고쳐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미  만들어 놓은 옷을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바꾸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애써 고쳐 놓아도 별로 일을  표시가 나지 않고, 여전히  이었습니다. 심지어 멀쩡한 옷을 망쳐 놓았어요!” 하는 불평을 들을 수도있습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쏟아 부은 정성과 재능이  옷의 남루함으로 덮여 버리는 것처럼 속이 상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정말 싫어할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도 같은 마음이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지어 입히십니다. 이사야 61:10 말씀입니다.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구원의 , 의의 겉옷은 너무나 아름답고 영광스러워서 마치 신랑이 사모를  , 신부가 보물로 단장한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옷감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솜씨로만  옷을 지으시며, 이를 통해 오직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인  포도주는  부대에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있습니다. “ 포도주  부대 있습니다. 이것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하나님의 축복  축복을 담는 그릇이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축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상급이니라” (창세기 15:1). 그리고는 17:1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말씀은 오늘의주제인  포도주와  부대 전형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바로 아브람의 방패요 지극히  상급이 되십니다.  하나님 자신이 바로 아브람이 받을 축복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아브람의  속에 자신을 부으시고,  삶에 담기시고, 그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기 위해서 먼저 아브람을 자신의 축복을 담을 만한 그릇으로 준비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의 관계에서   있듯이, “ 포도주와 부대 성경 전체를 관통하여 흐르는 중심 주제들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 속에 거하시고그들의 삶을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사람은 죄로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담는다는 것은 마치 벌겋게 타고있는 숯불을 종이 봉지에 담는 것과 같습니다. 숯불이 종이 봉지에 닿기도 전에 봉지를 태워버릴 것입니다. 자연 상태의 사람에게  숯불 같으신 하나님은 결코 축복의 하나님 되실  없습니다. 오히려 가까이   없는 두려운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예에서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시기에 앞서 먼저 축복의 그릇을 준비하십니다.  일의 가장 역사적인 사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바로의 압제에서 구원하시고,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사건입니다. 민수기 15:40-41절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렇게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나는 너희의하나님 되려 하여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말씀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말씀과 같은 의미로 이해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자신을 가리켜 반복해서 너희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의  속에 임하시고, 다스리시며,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서필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 잊지 않고 믿고 순종함으로써  앞에 거룩한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람에게 하나님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 하신 것과 같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 하나님 되시기 위해서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담을 그릇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민수기의 기록에서   있듯이,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담을 거룩한 그릇으로 준비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약하고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고자 준비하신 가나안 땅에거인들이 살고 있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낙담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이곳으로 인도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대하여,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민수기14:2-3) 하며 하나님께 등을 돌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서 가나안   심히 아름다운 이요 젖과 꿀이 흐르는 ”(민수기 14:7-8) 준비하시고,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너희의하나님 되셔서 다스리시는 천국을 기대하셨습니다. 그런데 매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축복을 담을 만한 그릇으로 준비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릇을 완전히 새롭게 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믿은 여호수와와 갈렙 이외에 다른 사람은 결코  땅에 들어갈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나의 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세계에 충만할 것으로 맹세하노니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사람들은 내가  조상들에게 맹세한땅을 결코 보지 못할 것이요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민수기 14:21-23). 과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진중에 있던 모든 군인들(fighting men)” 죽고 새로운 세대로 바뀌기까지 38년동안이나  광야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신명기 2:14). 말하자면,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그릇 준비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헤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느니라.  포도주는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은 크게  가지로 요약될  있습니다. 첫째는,  가죽 부대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부대에  포도주를 부으신 것입니다. 가죽 부대는 포도주를 담는 용기입니다. 옛날 중동 지방에서는 포도주를 담기 위해서 항아리나 가죽 부대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특히 양을 키우며 자주 이동을 해야 하는 유목민들은 무거운 항아리 대신,  가죽으로 만든 부대에 포도주를 넣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새로 담은 포도주는 활발한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가스로 인해 부대가 팽창하고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신축성이 좋은  가죽 부대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낡은 가죽 부대는 탄력성도 없고 부식된 냄새가 나서  포도주를 담으면 부대가 터지거나 부식된 가죽의 불쾌한냄새가 포도주에 배여서 결국 포도주를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포도주는  부대에 넣어야 합니다.  앞서 말씀하신 생베 조각 낡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있습니다. “ 포도주 낡은 가죽부대 함께   없듯이, 생베 조각과 낡은 옷이 함께   없습니다. 낡은 옷에 생베 조각을 덧댄다고해서  옷을 만들  없습니다. 심지어 그렇게 하는 것이 옷을 망치게 됩니다. “온전한   얻으려면, 낡은 옷은 아예 버리고  옷감을 사용해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만일 새로 지은 옷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옷감 사용한다면 그것은  이라고   없습니다. 보기에도 흉하고, 쉽게 손상될 것입니다. 오직  옷감을 사용해서만, 온전한  옷을 만들  있습니다.

 

 이나  가죽 부대 예수님께서 친히 만드셔서 우리에게 입히신 새로운 의의  (new robe of righteousness)”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사람이 범죄한  두려움과 수치심으로 인해  몸을 가리기 위해서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서 치마를 만들었습니다 (창세기 3:7). 나뭇잎으로 엮은 치마가 얼마나초라하고 볼품이 없었겠습니까? 몸을 가리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의 부끄러움을 더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담과 하와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위해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3:21). 이들에게 입힐 가죽옷을 지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필시 어떤 짐승을 희생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가죽옷은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만든 치마와는 비교할  없이 튼튼하고 따뜻했습니다. 틈새가 없이 몸을 감싸며,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리고 그들의 생명을 보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위해짐승을 희생하여 가죽옷을 지으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의의 (robe of righteousness)” 지으신 것입니다.  옷은 전혀 새로운 재료로 만든  이며,  아주 튼튼한 가죽 입니다.  옷을 우리에게 입히심으로써, 우리를 하나님의 축복을 담을 만한 그릇으로 준비하시는것입니다.   가죽 옷에 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입으라.” 그렇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우리의  옷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낮추시고 겸손히 비우셔서, 이제우리가 예수님을 마치 나의 겉옷인 것처럼 입을  있게  것입니다.  예수님을 입을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자기 아들의 형상을 보시며, 우리를 기뻐하시며, 우리에게 아버지의 인자하심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이며 가죽  되십니다. 사실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축복을 담는 온전한그릇이 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입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온전히  몸에담으셨는가를 깊이 이해하고, 이를 배우며,  순종하여 따르는 것입니다. 어떤 그릇이 새지 않는 튼튼한그릇 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담을  있을까요? 그것은  마디로 말해서 믿음의 그릇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마음껏  그릇에 하나님의 복을쏟아 부으시고 채우시는 것입니다.  가죽 부대는 탄력성이 있어서  안에 담긴 포도주의 활발한 팽창을 견뎌냅니다. 만약 가죽 부대의 어느  부분이 탄력성을 잃고 딱딱해진다면 포도주는  부분을 터뜨리고 쏟아져 내릴 것입니다. “탄력성을 읽은 딱딱함 우리 마음의 믿음 없음, 완고함, 두려움 등으로 이해할  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에게도 이런 딱딱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거의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가고, 하나님께서 멈추라 하시면 멈췄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몸도 늙고 아내 사라도  이상아이를 가질  없는 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로 인한 절망감은 마치 그의 마음 속에  뚫린 구멍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고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리라 하시지만, 축복의 말씀들은 아브라함의 마음 속에 있는   뚫린 구멍으로   나가버렸습니다. 그는 속으로 주님  좋은 말씀인데요 저는 아들이 없네요 헛헛 하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하인들 중에서상속자를 하나 고를까 생각하기도 하고, 애굽 사람인 여종 하갈과 동침하여 아들을 얻기도 했습니다. 두렵고 다급한 마음에, 자신의 인간적인 궁리로 마음에 뚫린 구멍을 막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 없음, 완고함, 두려움의 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셨습니다.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앞으로 나아가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최후의 통첩을 하신 것입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말씀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가죽 부대 완성하라는말씀입니다. 그가 아들이 없든, 나이 들어 몸이 죽은 자와 같이 되었건, 아내가 단산하여 아기를 가질 없게 되었건 상관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냥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라 것입니다. 그의 마음 전체를물샐 틈이 없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새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딱딱함, 두려움, 완악함, 믿음 없음도 절대로 남겨두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하시고자 계획하신 일들을 앞으로 진행시키실  있다는 말씀입니다.

 

 점에서 예수님은 온전한  가죽 부대 되십니다. 히브리서 5:7-9 말씀입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을 믿으시되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믿으셨습니다.  말씀은 참으로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육체를 가진자에게 죽음이란 절대적인 어둠입니다. 죽음은 절망이며, 끝입니다. 죽음은 마치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구덩이와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음 앞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예수님께 죽음은절망의 구덩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 죽음은 하나님께 믿음을 드리는 시간이며,  마침내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대신 아버지를 경외함으로 순종하여 십자가 죽음의 고난을 감당하셨습니다. 저자는 예수님께서 이를 통해 온전하게 되었다말씀합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신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 온전히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믿음의 완성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구원의 완성이라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몸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담을 온전한  가죽 부대 완성하셨기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을 뿐만 아니라 하늘 보좌로 높이시고, 영원한 나라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의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과 순종에 쏟아부은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을 희생하여 만드신   가죽 부대를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에게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영원한 구원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것과  것이 함께   없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포도주는  부대에 넣느니라 말씀을 하신 이유는 앞에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하고 따져 물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문제를 삼으신 것은 금식 자체가 아닙니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들의 낡은 마음입니다. “ 마음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낡아졌을까요? 이는 그들이 세상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렸기때문입니다.  이상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믿지도, 사랑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낡은것처럼, 하나님의 이름 또한 그들 마음 속에서 잊혀져가는  옛날의 낡고 희미한 기억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가복음 7:6). 물론 이들은 금식도 하고, 모세의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고, 십일조를 드리고, 구제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신앙 생활은 영혼이 없는 로봇 같았습니다. 마치프로그램에 의해 작동되는 로봇처럼 때가 되면 금식하고,  때가 되면 교회에 나와 앉아있고,  때가 되면 자리를 깔고 엎드려 중언부언 기도문을 외웠습니다. 이들의 낡은 마음은 사실 어떤 죄보다도  고치기힘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보시며 이렇게 탄식하셨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도다” (마태복음 11:17). 세례 요한이 와서 회개하라 외쳐도 울며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사함의 복음을 전파하셔도기뻐하며 춤을 추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으시는  포도주  죄사함과 성령 충만을 싫어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낡은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주신  구원의 축복은 이스라엘을 떠나 세리들과 죄인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부어졌습니다. 우리가 불신앙과 함께 참으로 경계해야  것은 낡은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마음을 날로 새롭게 함으로써,  깨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어지는 매일의 삶을 살아갈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