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하나님을 믿으라 (마가복음 11:11-25)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3. 2. 27. 06:44

하나님을 믿으라

 

마가복음 11:11-25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이렇게 말합니다. “ 녀석은 어릴 적부터 번도 나를 배신한 적이 없었어!” 여기서 주인공이 말한 녀석 바로 돈입니다. 그는 돈을 믿었으며, 돈은 그의 믿음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을 믿지 않고, 대신 돈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때문에 원수를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때문에 원수와 손을 잡기도 했습니다. 돈이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돈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모두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가치관일 것입니다. 돈이 아주 많다면 여러 불가능한 일들 가능하게 됩니다. 돈이 아주 많다면 원하는 것들 쉽게 손에 넣을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돈이 갖고 있는 권세는 거의 신적인 권세 (divine power)”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하나님처럼 숭배하는지를 이해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 믿음의 대상이 돈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심을 가르치십니다. 22-24절에 쓰인 예수님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말하는 것이 이룰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말씀에서 예수님은 그대로 되리라 반복하십니다. 하나는 불가능한 입니다. 그리고 하나는 원하는 입니다. 어떻게 불가능한 일이 말한 그대로 이루어지며, 어떻게 원하는 것을 구하고 기도한 그대로 받게 됩니까? 이는 하나님을 믿을 그렇게 됩니다. 점에서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세상 사람들의 돈에 대한 신앙과 비슷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신실하심은 돈의 그것과 비교할 없이 크고 높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기록된 천국 비유들에서 예수님은 천국을 가리켜 밭에 감추인 보화 같고, “극히 값진 진주 같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밭을, 그리고 진주를 삽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보배는 감추인 보배이며, 극히 값진 보배이며, 영원히 변치 않는 보배이며, 우리를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는 보배입니다. 진리를 아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간절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오늘 본문 말씀에는 여러 내용들이 함께 얽혀져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가셔서 이곳을 깨끗케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오가는 길에 있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자 나무가 뿌리 말라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를 보고 놀란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르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용서하라 가르치십니다. 사건들과 가르침들은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그림 구성하는 부분들임을 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성전(Temple) 있었습니다. 성전(Temple)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이사야서 말씀을 인용하여 성전의 의미 이렇게 정의하십니다. “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집이며, 동시에 세상 만민이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제사에 관한 규례들 주셨습니다. 제사는 죄인 사람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기 위해서 필요한 절차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가리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셨을 그곳에는 매매하는 자들과 바꾸는 자들 가득했습니다. 이들은 희생 제물로 사용할 동물들을 팔거나 성전세로 돈을 환전해 주는 거짓 성직자들 장사꾼들이었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렇게 희생 제물을 드리거나 성전세를 냄으로써 자신들의 죄가 속해졌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점에서 성전 매우 훌륭한 비즈니스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아니라, 돈을 내고 죄를 세탁하는 곳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성전 갖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성전은 죄를 속하는데 있어서 특별한 효능을 갖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이 되면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방문하고 이곳에서 희생 제물을 바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때가 유월절을 며칠 앞둔 때라서 아마도 성전은 제사를 드리려는 수많은 방문객들을 맞아 대목 누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성전을 헤롯 성전이라고 합니다. 이는 헤롯 대왕이 이전에 있던 성전을 헐고 자리에 새로 지은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예루살렘에는 솔로몬 왕이 기원전 957년에 세운 최초의 성전인 솔로몬 성전이 있었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 제국의 침략으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다가 돌아와 유다 총독이 스룹바벨의 지도 하에 성전이 재건축되었습니다. 기원전 516년에 완공된 2 성전을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하는데, 성전은 솔로몬 성전에 비해 작고 초라했다고 합니다. 학개 2:3절에 따르면, 성전이 완성되었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 그리고 유다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남아 있는 (Temple) 이전 영광 (솔로몬 성전)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 없지 아니하냐?” 하나님께서 성전을 가리켜 너희 눈에 보잘 없지 아니하냐?” 하십니다. 아마도 스룹바벨이 재건한 성전은 솔로몬 성전에 비해 작고 초라하고 볼품이 없었던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음과 같이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약속하십니다. 학개 2:4-9 말씀입니다. 조금 길지만 제가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것이요 금도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것은 크고 화려한 성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 하나님의 말씀과 (Spirit) 그들 중에 머무실 , 하나님의 영광으로 성전을 채우실 , 그리고 성전에 평강을 주실 등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이루시는 것은 만국의 보배 (The Desire of All Nations)” 땅에 보내시고 그를 통해 세상을 진동시킴으로써입니다. 그리고 만국의 보배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성전의 의미를 다시금 기억하게 합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입니다. 그리고 만국 백성이 앞에 나아와 하나님께 기도하고, 영광을 찬양하고 누리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하나님을 외면했습니다. 헤롯은 보잘것 없는 스룹바벨 성전 헐고 자리에 대리석과 금으로 치장한 크고 화려한 건물을 지었습니다. 요한복음 2:19-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하시자, 유대인들이 반문하기를 성전은 46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합니다. 말에 따르면, 헤롯 대왕이 시작한 성전 건축은46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었으며, 예수님께서 활동하실 당시에도 여전히 공사 이었습니다. 얼마나 대규모 프로젝트인지를 짐작할 있습니다. 마가복음 13:1절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전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선생님 보소서 돌들이 어떠하며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건물들을 보느냐? 하나도 위에 남지 않고 무너뜨려지리라!”

 

헤롯 대왕은 대리석과 황금으로 장식한 크고 화려한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희생 제물을 드리고 헌금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성전과 안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상거래들 보시면서 탄식하셨습니다. “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오가시는 길에 만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분노를 비유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멀리서 무화과 나무를 보셨을 그것은  잎사귀 있는 무화과 나무였습니다. 아마도 푸른 잎사귀가 무성했던 같습니다. 시장하셨던 예수님께서는 혹시 나무에 무엇인가 먹을 있는 것이 있을까 해서 가까이 가셨습니다. 그런데 나무에는 잎사귀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성경 저자는 이에 대해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설명합니다. 아직 먹을만한 열매가 열릴 철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나무의 열매 없음 인하여 그것을 저주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그리고 과연 예수님의 말씀대로 무화과 나무는 이튿날 아침에 뿌리까지 마른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철이 아닌 때에 무화과 나무의 열매 없음을 인해서 나무를 저주했을까요? 이는 그것의 무성한 잎사귀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눈을 속였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이 바로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이방 땅에서 포로 생활을 하다가 돌아와 가장 먼저 성전을 재건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보잘것 없는 성전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전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채우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머무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통해 거둘 열매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매대신 잎사귀 택했습니다. 그들은 보잘것 없는 성전에서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영광을 사모하며, 하신 약속을 믿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렇게 하는 대신, 보잘것 없는 성전을 허물고 자리에 대리석과 황금으로 치장한 크고 화려한 성전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의 이용하여 제사용 동물들을 팔고 금과 모으는 장사를 했습니다. 성전은 모든 것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나라에서 예루살렘을 찾아온 사람들도 에는 화려한 성전에 마음을 빼앗기고 감탄을 하지만, 결코 이곳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제사장들의 안내에 따라 비싼 값을 치르고 희생 제물을 드린 거짓 제사장들이 주는 가짜 면죄부 받고 헛헛한 심정으로 돌아갈 뿐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은 참으로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 같았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곳에는 사람이 먹을만한 열매가 하나도 열리지 않았으며, 열릴 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 하십니다. 위에 인용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하신 말씀들 중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은도 것이요 금도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세상이 자랑하는 가장 귀한 보배라도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진 자는 모든 것을 가진 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야 것은 가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 안에 있으며,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제사 대해서 가르치신 적이 번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대해서 가르치신 적이 번도 없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없이 은혜로우리 죄인들을 위한 대속의 제물로 드리셨으며, 친히 몸으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직 제사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가 되셨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성전의 (Foundation)”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성전에 항상 성령님께서 거하시며,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영접해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며 (로마서 8:16), 우리를 위해 친히 기도해 주십니다 (로마서 8:26-27).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으신 새로운 아버지의 에서 아무런 제약이나 장애물이 없이 자유롭고 담대하게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며, 기도할 있게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업을 이을 상속자 것입니다. 이것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가 해결해야 혹은 우리가 지불해야 없습니다. 전혀 없습니다. 오직 가지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 어떤 믿음인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23-24절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말하는 것이 이룰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믿음의 능력 참으로 놀랍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심지어 우리 눈으로 보기에 전혀 불가능한 일이라도 그것을 입으로 말하고 말하는 것이 이룰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십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십니다.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선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없는 능력과 사랑을 있는 그대로인정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의 믿음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마음의 소원으로, 말로, 그리고 기도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이라면, 기도는 돈을 꺼내어 사용하는 이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믿음의 거래가 매일 매우 활발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지 조건을 덧붙이십니다. 25 말씀입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리리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할 먼저 형제의 죄를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유명한 돌아온 탕자의 비유 있습니다. 비유에 나오는 아들은 아버지의 돈을 창기와 함께 허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동생을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사랑했으며, 귀한 돈을 허비한 동생의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들의 가치관은 그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여러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었습니다. 정말 서운합니다. 흑흑!!!” (누가복음 15:29). 아들이 아버지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은, 그가 동생을 바라보는 눈과 같습니다. 그에게 아버지는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엄격한 사람이며, 염소 새끼도 주지 않는 구두쇠 영감이었습니다. 여전히 그는 매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아들이지만 노예처럼 비참하고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이런 아들에게 아버지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것이 것이니라!” 아버지의 눈으로 보기에는 아들과 자신 사이에 아무런 없었습니다. 둘은 항상 함께 있었으며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자신과 아버지 사이에 넘을 없는 높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이런 벽이 생긴 것일까요? 이는 그에게 아버지께 대한 믿음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돈을 사랑하고, 죄를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전의 제사장들은 성전 장사를 통해 스스로 부자가 되었으며, 소소한 규례들을 지킴으로 스스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부를 쌓고 의를 세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부와 의는 무성한 잎사귀 불과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 하십니다. 제자들은 가난한 죄인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몸으로 세우시고 성령께서 항상 거하시는 성전이 있습니다. 성전 안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소원을 들으시고 항상 가장 좋은 것으로 이들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사실 그들은 부족함이 전혀 없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말씀의 영광스러움을 짧은 설교에 담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성령으로 놀라운 환상을 보여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