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메시지

여호와를 기뻐하라 (시편 37:1-7)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4. 8. 28. 20:26

여호와를 기뻐하라

 

시편 37:1-7

 

신자들은 일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시험들을 겪게 됩니다. 이러한 시험들 중에 참기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악한 자들로 인한 시험입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들로 인한 시험입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행악자들로 인하여 불평하지 말고,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합니다. 우리는 불의한 사람들을 볼 때 그들로 인해 마음이 상하고 불평을 하게 됩니다. 특히 그들의 불의로 인해 내가 손해를 보고, 또 약하고 착한 이들이 피해를 입을 때 그 불평은 더욱 거세집니다. 더욱 참기 어려운 것은 불의한 자들이 성공하고 형통할 때입니다. 시편 73편에서는 악인의 형통함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또 이렇게 말합니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하도다.” 이런 악인의 형통함을 보면서, 시편 기자는 참 기가 막혔습니다. 그리고 한탄했습니다.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은 이렇게 바른 삶 깨끗한 삶을 살려고 나의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악인의 형통함과는 달리 자신은 매일, 종일토록 어려움을 겪으며 징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시편 기자는 고백하기를 나는 거의 실족할 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 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합니다. 악인이 온갖 나쁜 짓들을 하는데도 늘 평안하고 형통합니다. 나는 바른 삶을 살고자 애를 씀에도 오히려 많은 어려움과 재앙을 당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면서까지 올바로 살려고 애를 써야 하는가 회의가 듭니다. 이것이 신자들이 겪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시험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불평하거나 시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악인은 풀과 같고 또 푸른 채소와 같습니다. 이런 푸른 식물들은 한 때는 무성하지만 곧 시들고 쇠잔하게 됩니다. 이들이 아무리 평안하고 부유하다 할지라도, 이것은 여름날의 꿈에 불과합니다. 그들의 끝은 속히 오며, 그 끝은 두려울 정도로 허망합니다. 그들이 세상에 있었는지조차 아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게 됩니다.

 

그러면 신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악한 자들을 바라보고 불평하는 대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선하시며 신실하신 성품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신실하십니다. 우리가 악인들의 형통함을 보고 마음에 드는 의문 중 하나는 왜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을 이렇게 형통하도록 내버려 두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질문을 더 나아가면 하나님도 이런 자들과 한 패인가?” 또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긴 한 건가?” 하는 의문으로 발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선하시고 신실하십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삶을 선하게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완전하십니다. 심지어는 악인의 형통함과 의인의 시련까지도 다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은, 우리 앞에 벌어지는 일들이 참 이해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을 때,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매일의 삶을 살며 계속해서 선을 행할 힘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곧 우리의 일용할 양식입니다.

 

또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믿는 자는 단순히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행악자의 형통을 인하여 불평하는 마음보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이 훨씬 크고 강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쁨의 대상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해주신 무엇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자신이 나의 기쁨입니다. 시편 기자는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이니 여호와를 기뻐하라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러면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올바른 삶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그분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잘 됩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더 이상 불평할 일도 없습니다. 내 삶의 고난들을 인하여 슬퍼할 일도 없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로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기쁨이시며, 그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는 같은 분으로, 늘 우리 앞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기쁨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가난한 자로 오셨습니다. 아무런 선물도 준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준비하신 선물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죄인들을 섬기시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시고, 고통 받는 자들을 위로하시고, 억눌린 자들을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섬김을 받은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기뻐하며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자신들의 모든 소유를 다 버리는 것이더라도 이를 마다하지 않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그 마음 속에 영접하고, 또 주님을 기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쁨이십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기뻐할 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참 어린 아이와 같은 투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쁨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쁨이시면 어느 누구도 그 기쁨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또 주님께서 우리의 기쁨이 되실 때,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이 전혀 달라지게 됩니다. 모든 것이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내 마음에 참 평안이 임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힘이 솟아납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능히 설 수 있는 담대함이 생깁니다. 이는 풀과 같이 시들어버릴 악인의 형통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축복입니다.

 

악인들은 자신들의 악한 뜻을 이루기 위해 온갖 수작을 부리며 악을 도모합니다. 이들이 믿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 소원을 이루어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이를 이루시고, 그의 의를 해 같이 드러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가장 높은 이름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왕이 되신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은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선한 일을 하신 것입니다. 가장 낮아지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죄인으로 죽으시고 어두운 무덤에 갇혀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무덤에서 일으키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히사, 그 의가 해 같이 온 세상에 빛나게 하셨습니다.

 

신자의 삶은 다 이와 같습니다.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악한 자들로 인하여, 그들의 형통함으로 인하여 불평하지 말라!” 행악자들은 오늘을 살지만, 믿는 자들은 영원을 삽니다. 행악자들이 기뻐하는 것은 세상에서의 형통이지만, 믿는 자들이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행악자들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꾀를 부리지만,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선을 행합니다. 행악자들은 풀과 같이 속히 시들지만, 믿는 자들은 해 같이 영원히 빛납니다. 그러니 우리가 불평할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소원을 갖게 하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마음과 입에 찬양과 감사가 넘쳐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참된 형통함을 넘치게 허락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