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메시지

십자가 예수님 (고린도전서 2:1-5)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4. 8. 22. 18:16

십자가 예수님

 

고린도전서 2:1-5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복음을, 특히 이방인들에게, 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입니다. 그는 평생을 예수님을 증거하는데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도 그 열매 중 하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어떻게 전도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복음을 어떻게 증거하셨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했습니다. 2절에서 그는 말합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바울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는 것도 많았습니다. 또 고린도 사람들을 포함한 헬라인들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 말을 유창하게 하는 사람, 또 지혜롭게 보이는 사람을 훌륭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바울은 듣기에 아름다운 말과 지혜로 고린도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작정했습니다. 내가 아는 것은 오직 예수님과 예수님의 십자가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에 대해 줄기차게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어떻게 구원의 복된 소식인지를 설명해주고,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이도록 했습니다. 그는 자나깨나 예수님과 주님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증거했습니다. 그를 통해, 예수님과 주님의 십자가가 증거되었습니다.

 

바울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라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으로 하였습니다. 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하지 않고 거기에 십자가를 덧붙였을까요?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예수님의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가 없는 예수님은 예수님이 아니고, 십자가가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흠모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서는 글쎄요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장차 십자가에 못박히실 것을 말씀하셨을 때, 제자인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말렸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를 예수님은 심하게 꾸짖으셨습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십자가를 지는 자입니다. 십자가를 싫어하고 지지 않는 자는 그가 설사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사단의 종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이 거기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십자가는 공개적으로 당하는 수치입니다. 홀로 외롭게 감당해야 합니다. 정말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십자가가 가장 아름답고 보배로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세상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멸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야 말로 하나님의 뜻의 완성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십자가가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것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십자가야 말로 생명과 존귀함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 대하여 빌립보서 2 6-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기를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모든 이름 위에 높으신 왕이 되신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이름 위에 높으신 왕이 되신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예수님의 높으신 이름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예수님 곁에서 자신도 덩달아 높은 이름을 갖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같이 높은 이름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베드로나 바울 정도, 그것도 아니면, 베드로나 바울의 직계 제자 정도라도 어쨌든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높은 이름을 갖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고린도 교회에는 시기와 분쟁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구약에도 비슷한 예가 있습니다. 민수기 12장에서 보면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일로 모세의 형이며 누이인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며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이들이 비난한 것은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한 사실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모세의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권위였습니다. 이들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가장 높은 지도자로 행세하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도 같은 자리에 앉기를 원했습니다. 그들도 모세처럼 높은 이름, 높은 직분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장 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온유함을 나타내는 단어는 또 겸손함또는 낮아짐으로 번역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모세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람입니다. 어떤 점에서 가장 높은 사람입니까? 온유한 점에서, 겸손한 점에서, 낮아지는 점에서 가장 높은 사람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가장 높은 지도자로 세움을 받은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가장 낮은 자요 가장 겸손한 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친히 말씀도 하시고, 모세를 높이시고, 또 모세를 통해 많은 이적들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론과 미리암의 눈에는 모세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겸손히 낮아져 종처럼 충성스럽게 일하는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온갖 욕을 먹어가면서, 돌에 맞아 죽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광야 길을 헤쳐나가는 그의 외로운 눈물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높이신 그의 이름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십자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너만 하나님의 종이냐! 우리도 하나님의 종이다!” 하며 시기하고 다투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가 정말 탐내고 다투어야 할 것은 높은 이름이 아닙니다. 우리가 탐내고 흠모할 것은 낮아지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고 약한 것이지만, 하나님께는 지혜이고 능력입니다. 예수님과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심이 함께 증거될 때, 거기에 성령님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역사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겸손한 모세를 높이시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 가장 높은 이름을 주신 것처럼, 우리가 부끄러움을 참고 십자가를 증거할 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함께 하시고 그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제자의 삶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전도에도 다른 길이 없습니다. 다른 예수님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나도 그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임하는 곳에 반드시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높은 이름이 아니라 낮은 십자가를 사랑하는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참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며, 성령의 나타나심과 역사하심을 체험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