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메시지

믿음의 말을 하자 (열왕기하 6:24-7:2)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4. 9. 11. 20:16

믿음의 말을 하자

 

열왕기하 6:24-7:2

 

아람 왕 벤하닷이 그의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 성을 에워쌌습니다. 사마리아 성은 당시 북이스라엘의 수도였습니다. 아람 군대가 성을 포위하자, 성 안에 식량이 떨어져 사람들이 심하게 주렸습니다. 심지어 평소에는 꺼리고 먹지 않는 당나귀 머리나 겨와 같은 것들조차 높은 값에 거래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왕이 성 위를 지날 때, 한 여인이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하지만 왕의 대답은 별로 소망스럽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돕겠느냐? 내가 먹을 주겠느냐 마실 것을 주겠느냐?” 왕이 또 무슨 일이냐 물은 즉, 여인의 사연이 참으로 기가 막힌 것이었습니다. 이를 들은 왕은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절망과 분노에 휩싸인 왕은 그의 노를 선지자 엘리사에게 쏟았습니다.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날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그리고 왕은 사자를 보내어 엘리사를 치도록 하였습니다.

 

왕의 사자가 오는 것을 안 엘리사는 문을 닫고 그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7 1절에서 엘리사는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구원의 약속이 너무나 드라마틱한 것이었습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 자기 자식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인데, 하나님의 약속은 단 하루 만에 성문이 열리고 식량이 넘쳐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의 장관이 대답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능력이 많으신들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오늘 말씀에서 보면 이스라엘의 왕과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는 너무나 다릅니다. 왕은 모든 권력을 갖고 있었지만, 외적의 침입 앞에서 또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매우 무기력했습니다. 이와는 달리 엘리사는 이 절망스러운 상황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듯 여호와의 구원을 선포했습니다. 이 둘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왕과 그의 장관이 하는 말들을 보면 이들이 의심이 많은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왕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희를 도우랴?” 합니다. 또 왕의 장관은 엘리사가 전해주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듣고도 이를 믿기를 거부했습니다. 7 1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밤새 아람의 군대를 쫓아내셨습니다. 하지만 왕은 이를 아람 왕의 계략으로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실상 하나님의 구원은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그들과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가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을 베푸십니다. 하지만 의심이 많은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이 너무나 멀리 있었습니다. 아예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늘 문이 열려도 결코 일어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 구원이 눈 앞에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지만, 그리고 말끝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담았지만, 정작 하나님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절망과 의심에 눌려있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은 무슨 동화 속 이야기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매우 가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일 성문에서일어날 일입니다. 그것은 겨우 믿음의 기도건너편에, 손을 뻗치면 바로 닿을 곳에 있습니다. 다만 절망과 의심이 우리 눈을 덮어 우리가 보지 못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가까이 있습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다만 믿음의 눈이 필요할 뿐입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구원이 가까움을 믿고,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선지자 엘리사가 왕의 장관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지만 왕의 장관은 이를 비웃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그의 대답은 한 마디로 말하면 지극히 인간적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를 탓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도 많이 그와 같으니까요. 하지만 그의 지극히 인간적인 말이 하나님 앞에서는 불신이 되고 죄가 됩니다. 사람들 가운데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과 행동이 하나님과 그 말씀 앞에서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아니시고 거룩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적인 말이 겸손도 미덕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가 나누어야 하는 영적인 대화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일들을 우리의 짧은 지식으로 판단하고 재단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우리가 그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고 우리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처녀인 그녀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천사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가 나눌 믿음의 대화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인간적인 말을 하지 말고, “영적인 믿음의 말을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에 대해, 왕의 장관이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자, 엘리사는 그를 책망하여 말했습니다.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의 일들을 하십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그 구원의 축복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이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삶은 여러모로 불행합니다. 고난의 때에는 의심과 절망에 시달리고, 축복의 때에도 그 축복의 열매를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이는, 이스라엘의 왕과 같이 또 왕의 장관과 같이 항상 하나님께 대해 외인이 되어 겉돌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가까이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또 믿음의 말을 함으로 그 구원의 약속을 내 속에 받아들이며, 이를 통해 축복의 열매를 누리는 기쁨에 참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믿음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