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도행전 3:1-10, 16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의 제자들 베드로와 요한은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치유하는 기적의 역사를 행합니다. 이는 바로 예수님께서 하셨던 능력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제자들 가운데 임하셨을 때, 제자들 또한 주님께서 하신 일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각 나라 방언으로 선포될 뿐 아니라, 성령께서 행하시는 기적의 역사들이 그 복음의 진리 됨을 함께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복음이 우리 가운데 역사할 때 일어나는 구원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제 구 시, 곧 오늘 날로 오후 세 시 기도시간에 맞추어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성전에 들어가는 길에 “미문”이라는 성문 앞에서 한 앉은뱅이 걸인이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습니다. 성경 원문에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그러했다고 합니다. 그는 항상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살아야 했습니다. 아침이 되면 사람들이 그를 메어 와 성전 문 앞에 두고, 저녁이 되면 다시 그를 메어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지나가는 사람들의 적선을 구걸하며 지냈습니다. 그는 참으로 연약하고 불쌍했습니다. 보기 민망할 정도로 딱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그의 앞에 동전을 던졌지만,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는 않았습니다. 대충 휙 던지고는 급히 그 앞을 지나갔습니다. 앉은뱅이 거지 또한 사람들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땅바닥에 얼굴을 묻고 습관처럼 “한 푼 줍쇼” 애원하며, 무엇인가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동전이 떨어지면 급히 이를 주어 주머니에 담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들어가려 할 때, 이 앉은뱅이 걸인은 으레 하듯이 구걸을 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그를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이는 그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그를 강하게 노려보았다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그를 앉은뱅이 걸인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보았습니다. 그의 비참한 모습에 쯧쯧 하며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속에 숨겨져 있는 귀하고 영광스러운 영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불러 말했습니다. “우리를 보라!” 베드로 자신이 그를 주목하여 볼 뿐 아니라, 그는 앉은뱅이 걸인 또한 자신을 똑바로 보도록 초대하였습니다. 땅에 묻은 그의 얼굴을 들어 베드로의 눈을 보도록 했습니다. 사람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며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것은 그 영혼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며, 그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사람은 손으로 만져줄 때도 온정을 느끼지만, 관심과 애정이 어린 눈으로 바라볼 때 자신이 사랑을 받고 있음을 깊이 느낍니다. 특히 오늘날은 사람들이 서로 눈을 마주치고 깊이 바라보지 않습니다. 바쁘기도 하고, 서로 관심이 없기도 하고, 또 관계가 자주 사업적이기 때문입니다. 앉은뱅이 걸인과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걸인이 바라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이 아니고, 오직 그들이 던져주는 동전이었습니다. 사람들 또한 그의 앞을 바삐 지나가며 저 걸인과 같은 불행이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렇듯 스쳐가는 중에, 아무도 이 걸인과 눈이 마주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를 주목하여 보며, 그 또한 자신을 보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이와 같이 눈과 눈이 마주치고,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사랑의 역사이며 인격적인 관계의 역사입니다. 이 사랑의 통로를 통해 복음의 진리와 성령의 능력이 흘러나가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말을 들은 걸인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제자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베드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내가 있는 것을 네게 주노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이렇게 말을 하고 베드로는 그의 오른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엄마 뱃속부터 앉은뱅이였던 그의 발과 발목에 힘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가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간 그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베드로가 이 걸인에게 준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평생 힘이라고는 느껴보지도 못했던 그의 약하디 약한 힘줄과 근육에 힘을 불어넣었습니다. 이 능력은 그의 몸을 일으켜 세웠을 뿐 아니라 그의 영혼이 기뻐서 뛰며 하나님을 찬미하기까지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는 능력입니다. 베드로가 이 앉은뱅이 걸인에게 준 것이 바로 이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 바로 “능력”입니다. 곧 이 앉은뱅이 걸인처럼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무엇인가를 의존하여 연명하는 삶이 아니라, 그의 안에서 나오는 능력으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몸과 영혼이 강한 힘과 능력으로 온전하게 움직이며 기능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3장 16절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 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능력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말해줍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또 그 이름을 믿는 믿음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그들의 능력의 근원을 “돈”에서 찾습니다. 참으로 돈이 주는 힘은 대단하며, 돈이 없을 때 사람들은 무기력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참 능력이 “은과 금”에 있지 않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있음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는 능력이 이 불쌍한 앉은뱅이 걸인을 치유하고 일으킵니다. 믿는 자는 “돈”을 의지해서 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해서 삽니다. 믿는 자의 능력은 “금과 은”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돈이 믿음”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믿음이 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며, 오직 그 이름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능력으로만 삽니다.
16절에서 베드로는 이 믿음을 가리켜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즉 이 믿음은 내 안에서 자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로부터 온다”는 말은 여러 가지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이 믿음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떠나서는 믿음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또 믿음이 예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더 깊이 알 때 우리의 믿음이 더욱 견고해짐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라는 이름을 부적이나 주문처럼 사용하는 것이 결코 절대로 아닙니다. 이는 예수라는 그분을 깊이 알고, 살아계시며 세상을 통치하시는 참 하나님이신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빌립보서 2:9).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주님의 주 되심을 고백하고, 그 이름 앞에 굴복하며, 또 그 주님께서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능력으로 다스리심을 믿고 그 이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 자신이 능력으로 살 뿐 아니라, 병든 자를 치료하고 연약한 자를 일으켜 세우는 일을 하게 됩니다. 능력은 오직 “예수님의 이름”과 “그 이름을 믿는 믿음”에 있습니다. 우리가 평생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살며 일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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