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메시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15-17)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5. 12. 12. 03:08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15-17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만나시고 그와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씩이나 거듭 물으십니다. 성경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에 대한 치료와 회복을 위해 세 번의 사랑의 고백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또 본문을 깊이 생각해보면 정말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참 중요한 말씀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15절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여기서 이 사람들에 해당하는 원문의 단어는 이것들이라고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이란 사실 베드로가 사랑할만한 모든 대상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돈과 명예와 권력이 될 수도 있고, 또 베드로 자신의 생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이 모든 것들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이 질문을 통해 미루어보자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보다 더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가 사랑하는 것들 중에서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베드로를 수제자라고 부릅니다. 곧 제자 중 으뜸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택하심을 받은 12명 중에서도 으뜸이라면, 베드로야말로 세상에서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마가복음 14:27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흩어질 것을 예언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마음이 상했습니다. 특히 라고 하시며 자신까지 포함시키는 말씀에 몹시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리고 단언했습니다. “주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 베드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버린다고 할지라도 자신만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죽기까지 따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야말로 예수님을 가장 측근에서 따르는,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자라고 자신했습니다.

 

언뜻 보면 세상 모든 사람들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한다는 베드로의 말과 네가 이 모든 것들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는 예수님의 질문이 상통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 베드로의 최고의 사랑의 대상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자신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야말로 세상 어떤 사람들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베드로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사랑하는 다른 모든 것들보다 더 예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28절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한 배경이 되는 이야기가 바로 앞에 있습니다.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 영생을 얻는 길에 대해 묻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모든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예수님을 좇으라 하셨습니다. 이 청년은 재산이 많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슬픈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베드로는 이 부자 청년에 비해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은 자신이 더 훌륭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고 사랑하는데 있어서 세상과 경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으뜸이 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자,” “세상에서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상급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가장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과의 경쟁입니다. 세상과의 경쟁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서의 경쟁입니다. 이 교훈을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같이 아브라함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모든 것을 버린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세상에서,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어서 아브라함을 능가하는 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에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아브라함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가장 경외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보다도 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그제서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당신을 경외함을 인정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보다 더"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께 대한 더 높은 차원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것"을 나도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양" 곧 "예수님의 양들"입니다. 베드로의 사랑 고백을 받으신 예수님은 그에게 반복해서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주님을 사랑함으로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양이라고 하십니다. “베드로의 양이 아니고 예수님의 양입니다. 예수님의 양들이 누구입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 섬기신 자들입니다. 그러니 매우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심지어 예수님을 못박은 유대인들, 유대인들이 개처럼 취급하는 이방인들, 귀신들린 자들,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노예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 예수님의 양들을 돌보라고 하십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것이고 또 예수님께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사랑하신 자들입니다. 그러니 베드로는 이들의 종이 되어 예수님을 섬기듯 충성스럽게 이들을 섬겨야 합니다. 심지어 예수님보다 더 귀히 여기고 돌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양들을 위해 낮아지신 것보다 더 낮아져서 주님의 양들을 섬겨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3장에는 예수님께서 일곱 교회들에 보내시는 서신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 중 2:6절에는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도다하시고, 2:14,15절에는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하십니다. 니골라당(Nicolaism)이란 초대 교회 때에 있었던 기독교 이단들 중 하나인데 이 말은 문자적으로 “lay conqueror" 또는 "conqueror of the lay people” 평신도의 정복자 또는 지배자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구약 민수기 22-24장에 나오는 발람(Balaam) 또한 흥미롭게도 그 이름의 뜻이 “one that ruined a people” 한 민족을 망친 사람으로 앞에 언급한 니골라당과 비슷합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들의 행위를 매우 미워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 학자들은 니골라당을 성직제도의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곧 교회가 성직자평신도로 분리되며, 성직자들이 종교적 권력을 쥐고 평신도들을 지배하는 형태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평신도란 다름 아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 어린 양입니다. 그리고 성직자란 초대 교황 베드로로 대표되는 교회 지도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본래 마음에 두신 교회란 예수님의 양들이 거하는 하나님의 집이며, 베드로는 주님의 양들을 돌보는 하인에 더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베드로 (성직자)”자신이 예수님을 가장 사랑한다” “자신이 예수님과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집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서 주님의 양들을 평신도로 격하시키고 심지어 그들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고 오히려 양들의 생명을 약탈하는 일도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미리 아셨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수제자이며, 따라서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는 자로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함으로 베드로는 더 이상 자신이 예수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수제자이기는커녕 가장 못된 배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베드로를 낮추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임이 틀림없습니다. 이제 베드로 마음 속에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그를 다시 찾아오시고 용서하시고 심지어 그에게 주님의 양들을 맡기신 예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으로부터 오는 사랑일 것입니다. 그것은 겸손한 사랑입니다. 자기를 잊는 사랑입니다. 진심으로 주님과 주님의 양들을 섬기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쉽게 경쟁하고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보다 더 많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생명보다 더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겸손한 사랑으로 예수님의 양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천해 보이는 한 사람을 예수님의 양으로 영접하고 그의 종이 되어 예수님을 섬기듯 그를 섬기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보다 더 낮아져서 주님과 또 주님의 품 안에 있는 주님의 양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와 같은 은혜와 축복이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