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메시지

거짓 신앙 –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교훈 (사도행전 5:1-11)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5. 11. 28. 14:50

거짓 신앙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교훈

 

사도행전 5:1-11

 

오늘 말씀은 초대 교회에서 일어난 한 불행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사건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 소유를 팔아서 받은 돈의 일부를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남편 아나니아가 나머지를 사도들 앞에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을 하여 그것이 땅을 판 돈의 전부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그가 마음에 사단이 가득하여 성령님을 속인다고 크게 책망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나니아가 쓰러지고 그 혼이 떠나갔습니다. 죽은 것입니다. 일어난 일을 모르고 있던 아내 삽비라도 같은 거짓말을 했다가 역시 죽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이들이 거짓말을 한 것보다도 그 일로 인해 죽임을 당한 것이 더욱 충격적입니다. 이들의 죄가 그렇게 큰 것인가 의문이 듭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본문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이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왜 거짓말이 그렇게 나쁜 죄가 될까요? 오늘날은 정치인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거짓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더구나 죽을 죄로까지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짓은 실상 사단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창세기 3장에 나오는 뱀은 거짓말로 여자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베드로는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하고 책망합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이 사단의 지배 하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단이 그랬던 것처럼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말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고자 했던 것입니다.

 

사단은 기본적으로 거짓말쟁이입니다. 요한복음 8:44절에서 예수님은 마귀를 가리켜 “……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하십니다. 마귀의 거짓말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은 여자를 유혹하여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도록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이 짧은 말 속에는 정말 많은 거짓말들이 들어 있습니다. 거짓된 하나님관, 거짓된 창조관, 거짓된 인간관, 거짓된 세계관, 거짓된 행복관, 거짓된 소망 등을 담고 있습니다. 이 거짓은 단순히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에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세계로, 실상은 있지도 않은 이상한 세계로, 마귀가 꾸며낸 미혹의 세계로 여자를 옮겨놓는 것이었습니다. 이 미혹의 세계로 인도된 여자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담대함이 생기고, 결국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된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이들이 성령을 속였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들이 성령님의 눈을 피해 들키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짓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쨌든 돈이야말로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위해 가장 믿을만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분명 겸손히 섬기는 삶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칭송 받는 삶을 원했으며, “예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감사하는 삶이 아니라, 돈으로 자기 의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이와 같이 이들은 진리와는 거리가 먼, 여러 가지 거짓된 믿음들 가운데 살았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짓말을 한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이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하나님의 진리의 나라가 아니라, 많은 거짓말들로 세워진 마귀의 나라이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한 번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 전체가 거짓이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외식하는 자(hypocrite)”라고 부르십니다. 이 단어 “hypocrite”는 본래 “actor (배우)” 또는 “pretender (~인체 하는 사람)”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전에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젊은 선남선녀들의 애틋하고 마음 저린 사랑 이야기가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이 주인공들의 사랑이 진짜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촬영을 하면서 출연 배우들이 모두 아쉬움을 토로하고 또 어떤 이는 울기도 하였습니다. 보는 제 마음조차 무거웠습니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제 무대를 떠나야 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사실적이더라도, 드라마 안의 세계는 그냥 짜여진 허구일 뿐입니다. 재미있게 보고 눈물마저 글썽이던 제가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지만 쉽게 말해서 거짓입니다. 연극이 끝나고 나면 가슴 저미는 사랑도, 순수한 우정도, 안락한 가정도, 어렵게 이룬 성공도 모두 무대에서 내려지고 불이 꺼집니다.

 

사단은 거짓말을 통해서 우리를 이와 같은 드라마 속의 세계로 인도하며, 그곳에서 살도록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 연극이 끝나고 불이 꺼질지도 모른 채 그 거짓의 세계에서 외식하는 자 곧 배우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단의 주무기는 핍박이 아닙니다. 사단의 주무기는 거짓말입니다. 이런 사단의 꾐에 넘어가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진리의 삶이 아니라 거짓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비극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이 비극은 예수님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마찬가지로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바깥(outside of Jesus)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우리가 진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떠난 삶은 이미 진리를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떠난 삶은 그 자체가 거대한 거짓말입니다. 이것이 곧 세상에서의 삶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삶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하고 사단이 꾸며낸 거짓말들을 믿고 이를 의지하여 사는 삶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참 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연극 속에서는 아무리 진실된 사랑의 고백을 하더라도 그것이 이미 연극이고 거짓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떠난 삶은 이미 어둠 가운데 있는 것이며, 설사 거기에 빛 같이 보이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다만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단의 거짓말일 뿐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행동은 진리의 터인 하나님의 교회에 사단의 집을 지으려는 괴악한 짓이었습니다. 더구나 이 일을 위해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이 공모를 했다는 사실은, 이것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매우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잘못임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죄를 드러내시고, 그에 대한 보응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이 사건은 교회 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잘 드러내줍니다. 교회가 사는 것은 헌금을 많이 거두어 재정을 튼튼히 하거나, 교인들끼리 의리를 지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사는 것은 모든 거짓들을 드러내 고치며, 성령 안에서 진리에 기초한 진실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직 이를 통해,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로 보전되고, 순결하며, 강해지며,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예수님 안에서 성령 앞에 진실한 신자가 되며, 우리 교회가 진리의 반석 위에 세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