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메시지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 (마태복음 14:22-36)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5. 9. 13. 13:22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

 

마태복음 14:22-36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깊은 밤의 어둠을 뚫고 파도가 일렁이는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로 오십니다. 14:24절은 당시 제자들의 사정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 한 가운데 있었으며, 심하게 부는 맞바람으로 인해 항해가 더디고 물결도 위협적으로 넘실거렸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깊은 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었으며, 예수님마저 함께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상황은 여러모로 절망적이었습니다. 아무도 이들의 사정을 알 수도, 도와줄 수도 없었습니다. 꼼짝없이 물고기 밥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깊은 밤의 어둠을 뚫고 넘실거리는 파도를 걸어 제자들에게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둠 속에서도 그들을 보고 계셨으며, 성난 파도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오셨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 기도를 마치신 후 그들에게로 오시고, 그들과 함께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임재하심또는 함께 하심의 능력입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면서 자주 이 제자들과 같은 상황에 빠집니다. 많은 위험들에 둘러싸여, 구원의 소망이 없이 두려움과 절망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하나님도 예수님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어둠 속에 들리는 무서운 바람 소리와 성난 파도 소리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주님의 임재하심과 함께 하심은 여전하십니다. 주님께는 그런 상황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다만 우리가 보이는 것들과 들리는 것들을 두려워하며 주님께 대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 오시자 제자들은 놀라서 유령이다하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즉시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두려움에 지친 제자들을 진정시키시고 안심시키셨습니다.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사실 예수님께서 오셨다고 해서 상황이 당장 나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밤은 어둡고 물결은 거세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다하심으로 제자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영어 성경(KJV, NIV 등)은 예수님께서 "나다!" 하시는 이 부분을 보통 “It is I"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원어대로 번역하면 “I AM”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 출애굽기 3장에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가리켜 부르신 이름이기도 합니다. 출애굽기 3:14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I AM WHO I AM).” 성경학자들은 이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고 설명하고자 노력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존재하심이 어떤 것에도 제한을 받지 않으며,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냥 스스로 존재하십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은 특이하게도 떨기나무에 붙은 불꽃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떨기나무는 보잘것없는 가시덤불이라고 합니다. 메마른 호렙산에 드문드문 자라는 이 가시덤불에 불이 붙었으니 얼마나 쉽게 타버리겠습니까? 하지만 출애굽기 3:2절 말씀은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합니다. 이는 불이 이 덤불을 태움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스스로 존재하는불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불은 그것이 타기 위해 연료를 의존하지 않습니다. 연료가 떨어지면 꺼지는 그런 불이 아닙니다. 연료가 있든 없든, 그것이 가시덤불이든 아름드리 나무이든 상관없이 타는 불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물에 떠 있으려면 하다못해 널빤지 조각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빠져 죽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무것도 없이 그냥 물 위를 걸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에 서서 걸으시기 위해 무엇인가가 필요하시지 않았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스스로 존재하시는분이시며 어떤 것도 의존하지 않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스스로 계신 하나님과 비교하면 우리의 삶은 늘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며 또 위태하게만 보입니다. 우리는 존재하기 위해, 보다 정확히는 생존하기 위해 많은 것들에 의존해야 합니다. 우선 매일 먹어야 합니다. 나와 가족을 위해 매일 하루 세끼 먹을 양식을 공급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버겁게 느껴집니다. 쌀독에 아무리 쌀이 많아도 정말 순식간에 타버리는 떨기나무와 같습니다. 며칠만 지나면 바닥이 보입니다. 또 우리는 안정된 삶을 위해 늘 무엇인가를 또는 누군가를 의지합니다. 안정된 직장이 있으면 나름 살만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같이 경쟁이 치열하고 빨리 변해가는 시대에 안정된 직장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마치 작은 조각배로 바다를 건너듯 시시때때로 거센 바람과 거친 파도에 마음을 졸이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존재생존은 매우 의존적이고 조건적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요동합니다.

 

이런 우리가 참으로 의지할 것은 쌀독의 쌀이나 안정된 직장이 아닙니다. 가시떨기 덤불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타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참으로 의지할만한 분이십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그래서 어떤 제약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전혀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도 어떤 의미에서 제약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을 제약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히브리서 6:13,1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음으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하나님께서는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어 맹세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17절에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하시고 또 18절에는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하십니다. 이 말씀들이 증거하듯이, 하나님은 한 마디로 신실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신실하신 성품에 의해 제약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런 주님의 성품으로 인해 "하는 수 없이"라도 자기 백성에게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십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쌀독의 쌀처럼 떨어지거나 조각배처럼 위태롭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며, 보호하시며, 인도하십니다. 그 신실하심과 인자하심에 결코 변함이나 실패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다를 건너 제자들에게 가신 것은 주님의 능력을 보이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의 신실하심을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께서 믿을 만한 분이심을 우리에게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배우는 학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야말로,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신실하신 공급자"이시며 "신실하신 보호자"이심을 배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다 안전하고 안락한 삶의 항해를 위해 더 크고 튼튼한 배를 짓습니다. 이런 사람들과는 반대로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그 배에서 내려와 물 위를 걸었습니다. 믿음의 학교에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질 때, 주님께서 그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풍랑이 이는 가운데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간 베드로의 믿음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책망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들이 바람이나 파도나 어둠의 문제가 아니라 실은 믿음의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믿음은 스스로 계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걸맞은 높고 깊은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도 예수님처럼 심지어 죽음의 바다라도 빠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건너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게 하시고 이에 걸맞은 큰 믿음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