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메시지

믿음과 말씀의 만남 (마가복음 2:1-12)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5. 7. 3. 22:26

믿음과 말씀의 만남

 

마가복음 2:1-12

 

‘Chemistry’라는 영어 단어가 있습니다. 흔히 화학이라고 번역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두 사람 사이에 특히 남자와 여자 사이에 마음이 통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어떤 사람은 만나도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심지어 이야기를 나누기도 전에 그런 느낌이 생깁니다. 그러한 감흥이 느낌으로 끝나지 않고 어떤 물리적인 변화들을 가져옵니다. 얼굴이 예뻐진다든가, 목소리가 커진다든가, 공부가 잘된다든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 예수님을 실제로만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단지 예수님을 구경했으며 심지어 그냥 예수님과 같은 장소에 있었던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럼 예수님과 나 사이에 화학적인 반응이 생기기 위해서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요?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용서하시고 치료하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중 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중풍병자와 예수님의 첫 만남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만남은 믿음말씀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이 만남으로 인해 놀라운 일들 곧 화학적인 변화들이 이 중풍병자에게 안팎으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과 나의 만남에 화학적인 반응이 일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믿음말씀입니다. 곧 내가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서 선포되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창조와 권능의 역사가 강력하게 일어납니다.

 

믿음이란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 또는 기대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그리고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오직 예수님을 향하여 나의 모든 관심과 기대와 소망을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중풍병자의 친구들이 이 믿음을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하게 보일 때 이들은 예수님께서 계신 곳의 지붕을 뚫었습니다. 이들의 믿음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보고 그 길을 뚫었습니다. 제가 학생 때 정말 심하게 놀란 것이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아기가 어떻게 엄마의 몸에서 나오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 입니다. 저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어떻게 아기가 그 작은 틈을 비집고 나올 수 있는지 정말 불가사의했습니다. 아기가 세상에 나올 때가 되면 모든 사람들이 이 한 가지에 집중합니다. 산모도, 아기도, 의사도, 밖에서 기다리는 식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힘도 없는 아기가 이 불가능해 보이는 좁은 통로를 무사히 뚫고 나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해산의 고통을 견딥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 길 밖에는 엄마도 아기도 달리 살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중풍병자와 친구들도 이런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살 길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아기가 엄마의 몸을 뚫고 나오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의 갈라진 물 사이로 애굽을 빠져 나오듯이, 그렇게 지붕을 뚫고 예수님께 나아온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이었습니다. 다른 길들은 그게 넓은 길일지라도, 사람들이 많이 다닐 지라도, 그 너머에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을 것이면 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길이 없을지라도 예수님께 나아가기 위해 길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상식에 어긋나고, 전례가 없는 길이라도 그렇게 했습니다. 믿음은 내 마음 속에 닦여 있는 예수님을 향한 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분주하지 않고, 평안하고, 안전한 길입니다.

 

벽을 뚫고 길을 내는 수고를 이 중풍병자와 그 친구들만 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그 수고를 제대로 감당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이들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 병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곧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하며 방안에 긴장이 감돌았습니다. 그곳에 있던 서기관들이 속으로 말했습니다.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이들은 예수님을 참람하다정죄하였습니다. 참람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존귀하심과 영광을 손상시키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 죄는 십계명의 세 번째 계명인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 20:7) 말씀과 관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매우 무거운 죄이며 실제로 레위기 24:11절에는 한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싸우다가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고 저주하므로 돌에 맞아 죽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시고 존귀하신 분이셨습니다. 성직자인 자신들도 차마 그 이름을 입에 담지 못하는데 지금 예수님은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자기 마음대로 를 용서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말씀으로 죄 사함을 선포하신 것은, 중풍병자의 친구들이 지붕을 뚫는 것보다 더 기가 막힌 일이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 중풍병자 사이에는 어느 누구도 넘을 수 없는 두꺼운 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기관들은 이 두꺼운 벽의 수호신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죄인들을 하나님께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높이고 존귀하게 해 드리는 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죄인들은 하는 수 없이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매일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다니며, 게다가 두려움 가운데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기다리는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불쌍한 영혼을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말씀은 거룩하고 높으신 하나님과 비천한 죄인 사이의 두꺼운 벽이 무너졌음을 선포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 벽을 뚫고 내려오셔서 가난한 죄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의 죄를 감당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고아처럼 방황하던 영혼들을 위해 하늘 문을 여시고 그들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신 천국으로 인도하시겠다는 초대의 말씀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기적입니다. 전에 없던 길이,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길이 열리고 이제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축복들이 이 한 마디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미켈란젤로의 작품 중 유명한 천지 창조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과 땅 위의 사람이 서로 손을 뻗어 손가락 끝이 마주 닿을 듯이 가까이 만났습니다. 그림이 재미있는 것은 땅에 누운 사람보다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더욱 간절하게 온 몸을 앞으로 기울여 사람을 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간절하심은 육체를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것과, 그 앞에 나아오는 자들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시는 것과, 축복의 영원한 보증으로 피를 흘리신 것으로 잘 드러납니다. 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를 믿음으로 영접하면 우리 인생에 기적적인 변화의 역사들이 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