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메시지

어머니의 하나님의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기 1장)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5. 1. 15. 13:55

어머니의 하나님의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기 1

 

룻기에 나오는 룻은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의 시어머니인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모압 땅으로 와서 살다가, 그만 남편도 두 아들도 잃고 홀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유다 땅에 양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습니다. 나오미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과부가 된 두 며느리 룻과 오르바를 그들의 어미 집으로 보내고자 했습니다. 이에 오르바는 입을 맞추고 작별을 고했습니다. 하지만 룻은 나오미를 붙들고 말했습니다.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이에 나오미는 룻의 결심이 굳음을 보고 더 이상 그녀를 말리지 않았습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룻의 말을 자세히 보면 그녀가 단순히 나오미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의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이 말은 룻과 나오미의 관계가 단순한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룻이 나오미를 사랑하는 기초에는, 나오미의 뿌리가 되는 그 백성들과 또 나오미의 하나님이 되시는 여호와께 대한 사랑이 깔려있습니다. 이 사랑은 매우 큰 사랑이며 견고한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개인 대 개인의 인격적인 관계를 중시합니다. 예를 들어, “난 네가 무엇을 믿든 상관하지 않아. 너만 나를 사랑해준다면……” 이런 사랑은 보기에 순수하며 조건 없는 사랑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룻이 나오미를 따를 때, “어머니 저는 어머니의 종교가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을래요. 저는 그냥 어머니가 좋아요!”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하였습니다. 또 룻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말했습니다. 이는 그녀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룻과 시모 나오미 사이의 관계는 단순히 두 개인의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 같은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 안에서 맺어진 관계였습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하나님 안에서의 인간 관계는 “Face-to-face”의 관계가 아니라 “Side-by-side”의 관계라고 말합니다. “Face-to-face”의 관계는 서로를 마주 대하고 바라보며, 서로에게 충실한 관계입니다. “나는 너만 바라볼 테니까 너도 나만 바라봐야 해!” 이런 관계입니다. 반면에 “Side-by-side”는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곧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통해서 관계를 맺고 연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Side-by-side”의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늘 “Face-to-face”의 관계를 소망하며, 또 이를 잘 맺어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없는 “Face-to-face”의 관계, 곧 서로에 골몰하는 관계는 결코 건강하거나 아름답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예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자신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자신에게 그만큼 잘해주시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시며 제 삼 일에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6:21). 예수님께서 죽으신다는 말에 놀란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말했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할 것입니다.” 아마 베드로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주님! 나를 두고 어디를 가신다는 말씀입니까?”였을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를 보신 예수님께서는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16:22,23).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한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심지어 그를 사단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하되, 먼저 예수님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자신도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십자가를 져야 했습니다. 베드로의 “Face-to-face” 사랑은 오히려 예수님의 길을 가로막는 걸림이 될 뻔 했습니다. 이 점에서 그는 거의 사단노릇을 할 뻔 했습니다.

 

하나님이 빠진 개인들끼리의 인간 관계는 사랑을 이루기보다는 오히려 분열과 다툼을 일으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늘 누가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지를 경쟁했습니다. 예수님 옆자리를 두고 다투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관계 맺기를 사모하고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이기적인 욕심과 경쟁심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일은 초대 교회에서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3:3,4절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이와 같이 책망합니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고린도 성도들은 유명한 사도들과의 개인적 친분을 내세우며 자랑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13-15절 말씀을 통해 볼 때, 어떤 사람들은 나는 사도 바울님으로부터 직접 세례를 받은 사람이야!” 하고 떠벌리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들이 육신에 속하였다그리고 사람을 따라 행한다책망합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3:9절에서 이렇게 강조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사도 바울과 고린도 성도들을 묶어주는 끈은 그들 사이의 끈끈한 인간 관계가 아닙니다.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끈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통해서 이들이 서로 만났으며, 하나님 안에서 자라가며, 하나님께로부터 상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좋은 인간 관계를 사모합니다. 인간 관계를 잘 맺고 유지하기 위한 책들, 강의들, 프로그램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없는 좋은 인간 관계는 오히려 해로울 수 있습니다. 베드로처럼 사단의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나만 봐! 나도 너만 볼께!” 하는 식의 관계는 결코 건강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이기보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부터 나오는 경건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룻과 나오미의 사랑은 두 과부의 처량한 사랑이 아니라, 모든 이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사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길이 축복하시는 사랑이었습니다. 우리의 관계에 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경외하는 그런 관계를 맺어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