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메시지

스데반의 역사 교육 (사도행전 7:1-53)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6. 1. 19. 12:15

스데반의 역사 교육

 

사도행전 7:1-53

 

사도행전 7장에서는 초대 교회 일곱 집사들 중 하나이며 기독교 역사의 첫 순교자로 알려진 스데반이 그를 고소하는 공회 의원들 앞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부르심으로부터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 이르기까지 1000년이 넘는 방대한 역사입니다. 역사 교육은 매우 중요합니다. 철학자이며 소설가인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것을 반복하게 되어 있다 (Those who cannot remember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it).” 역사를 통해서 배우지 못한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는 또 인간의 역사가 많은 잘못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 말은 오늘 스데반이 공회 앞에서 들려주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그리고 이 교훈 앞에 눈과 귀를 막고 있는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참으로 실감나게 적용이 됩니다.

 

스데반이 피고인으로 공회 앞에 서게 된 이유는 그가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고 (6:11), “이 거룩한 곳곧 성전과 율법을 거슬려 말했다는 (6:13)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모세성전율법은 거의 하나님과 동일시 되는 지극히 성스러운 것들이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이것들은 그들이 이방인들과 전혀 다른 선민임을 나타내주는 중요한 표식들이었습니다. 모세와 성전과 율법이 있는 한, 자신들이야말로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확신하며, 자긍했습니다. 하지만 스데반이 보기에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반복해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 역사를 회고함으로써 스데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거짓되고 허황된 긍지에서 깨어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참 모습을 발견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스데반이 전하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어떤 역사입니까? 이스라엘의 역사를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영광이스라엘의 죄입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할 수 없이 크신 영광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말할 수 없이 악한 죄가 씨실과 날실로 얽힌 이야기들입니다. 이것은 훌륭한 믿음의 조상들과 또 그들이 남긴 거룩한 유산들 곧 성전과 율법을 가진 유대인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입니다. 이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을 이제 스데반이 말하려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4명의 중요한 역사적 인물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요셉과 모세와 다윗입니다.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역사적인 인물들입니다. 하지만 스데반은 다른 시각으로 이들을 설명합니다. 2절에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의 형편이 어떠했음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그는 메소보다미아에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24:2절은 더 구체적입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며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는 강 저편 곧 메소보다미아에서 이방 신들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였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그를 이끌어 내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내신 것입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요셉에 대해서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셔 그를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9,10) 라고 말합니다. 곧 요셉의 생애에 일어난 극적인 사건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연출하신 것들이었습니다. 다윗에 대해서도 다윗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아……” (46) 라고 합니다. 다윗과 그 집이 받은 많은 복들은 다만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믿음의 조상들은 실상은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드러내기 위한 재료들에 불과합니다. 그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신실하심,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그리고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진정한 주이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화가가 물감과 캔버스를 이용해서 명작을 그렸다면, 그 영광은 당연히 그 화가에게 돌려져야 합니다. 물감이나 캔버스는 다만 사용된 재료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사야서 45:9절 말씀입니다. “질 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 너의 만든 것이 너를 가리켜 그는 손이 없다 할 수 있겠느냐?” 이 말씀에서와 같이, 아브라함은 진흙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진흙이 솜씨 좋은 토기장이의 손에 빚어져 위대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그렇더라도 그의 본질은 여전히 진흙일 뿐입니다. 그가 위대한 것은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고린도후서 4:6,7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능력 있는 삶을 살았지만, 전능하시며 보배로우신 하나님과 연약하며 질그릇 같은 자신을 구별하는 겸손한 지혜가 있었습니다. 이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그 몸을 통해 드러나시도록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높으심만큼이나,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드러난 사람들의 죄는 깊고 악했습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조상들인 야곱의 열 두 아들들 중 열 명은 시기심으로 형제 요셉을 애굽에 팔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도자로 보내주신 모세를 거절하고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틈만 나면 우상을 만들어 절하고,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사람들을 스데반은 이렇게 책망합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슬러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 도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성령을 거슬렀습니다. “단 한번도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늘 악하게 행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역사를 공부하고 이런 자신들의 모습을 깨달았다면, 교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끔직한 죄를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역사에 관한 또 하나의 흥미로운 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외교관이며 정치가인 아바 에반(Abba Eban)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다른 모든 대안들을 다 소진했을 때야 비로소 사람들과 나라들이 지혜롭게 행동한다는 사실이다 (History teaches us that men and nations behave wisely once they have exhausted all other alternatives).” 구약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여러 말씀으로 그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예레미야 7:3,4절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유대인들을 설득하십니다.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가나안 땅)에 거하게 하리라.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슬려 살면서, “여호와의 전곧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그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거짓말을 믿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그렇게 아끼고 자랑하던 성전을 무너뜨리시고, 그들을 이방 나라들 가운데 흩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난 후 겨우 그때서야 너무 늦게 이들은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성전을 지킨답시고, 불의를 행하며 심지어 참 성전 되신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또한 우리 개개인의 역사입니다. 한 개인의 역사는 하나님의 영광이 질그릇 같은 내 인생에 임한 이야기들입니다. 그 이야기들 곧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영광스러우신가하는 것과 그리고 내가 얼마나 악하고 약한가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이 지식이 더욱 깊어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질그릇이라고 했으며 심지어 노년에 쓴 서신 디모데전서에서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 불렀습니다 (1:15). 바울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그리고 자신의 지나간 삶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배운 지혜를 끝까지 지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들 다 잃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을 때 역사를 통해 배우고 지혜로운 삶을 사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담은 겸손한 질그릇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