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예수님 - 주 되신 예수님 (I) (요한복음 2:1-11)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7. 1. 30. 13:59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예수님 - 주 되신 예수님 (I)

 

요한복음 2:1-11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간혹 매우 격심한 변화를 경험합니다. 예를 들어, 젊은 청년이 어느 날 갑자기 군에 입대하거나, 오랫동안 혼자 지내던 사람이 결혼을 하거나 하는 것입니다. 20년 전 제가 한국을 떠나 타국으로 이민을 갈 때였습니다. 떠나기 며칠 전 한 친구가 제게 지금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결혼 전날 기분과 입대 전날 기분을 섞어 놓은 것 같아!” 이러한 격변의 결과로 우리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입대한 청년은 엄격한 군율에 따라 살아야 하며, 결혼을 하면 평생 무한 책임을 지는 배우자와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합니다. 또 이민을 가면 만나는 사람들, 쓰는 언어, 삶의 습관, 심지어 먹는 음식까지 모두 바꾸어야 합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들입니다. 하지만 크리스천들은 이런 경험들과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변화를 겪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 곧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Lord)”이라고 부릅니다. 곧 예수님께서 나의 주인 (Master)”이 되신다는 말입니다. 이제까지 자신이 주인이 되어 마음대로 살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주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 분이 나를 절대적으로소유하시며, 다스리시며,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그냥 부르는 호칭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를 가늠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나의 주가 되시는지를 깊이 알고 이를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직 그리할 때 우리는 진정 크리스천으로 변화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갈릴리 지방에 있는 가나라고 하는 마을에 혼인 잔치가 열렸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혼인잔치는 매우 즐겁고 특별한 행사입니다. 고대 유대인들은 보통 결혼 전에 1년 간의 약혼 기간을 가졌으며, 이 기간이 끝나면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는 성대한 혼인잔치를 열었습니다. 이 잔치는 대개 추수가 다 끝나고 날씨가 선선한 가을에 열렸으며, 보통은 1주일 길게는 2주일 내내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이 기간 동안 신랑과 신부, 그들의 친구들, 그리고 초대된 마을 사람들은 맛난 음식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며, 온갖 게임, 노래, 춤 등을 즐겼습니다. 상상만 해도 흥이 나는 광경입니다. 모든 고단한 일들을 다 끝낸 후, 시원한 계절에 밤이 늦도록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마음껏 먹고 마시며 즐기는 모습은 마치 우리가 장차 참여할 천국잔치와 같습니다. 이런 혼인 잔치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과 그 제자들도 함께 초대를 받아 참석하였습니다. 그런데 잔치가 한참 무르익을 무렵 중대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아마도 손님들이 생각보다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잔치에서 포도주는 마치 자동차의 연료와 같습니다. 사실 참석자들이 일주일 혹은 이주일 내내 춤과 노래로 잔치를 즐기며 기쁨으로 신랑 신부를 축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다른 것이 아니라 포도주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마치 노래방에서 음악에 맞추어 신나게 노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음악이 꺼진 것과 같습니다. 이 문제로 인해 생애 최고의 날이 되어야 할 혼인잔치가 신랑 신부에 아픈 기억으로 남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심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또 자신이 누구이신가를 세상에 드러내십니다. 11절 말씀에 따르면, 이 일은 예수님께서 처음 행하신 표적입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앞으로 행하실 사역의 표준(model) 또는 원형 (prototype)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만큼 많은 의미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점은 예수님이 주님 (Lord)”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때를 따라서 일하십니다. 또 주님이신 예수님은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이신 예수님은 영광을 받으시며 우리의 믿음을 받으십니다. 또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점은 주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첫째로, 주님은 말씀으로일하십니다. 주님은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서일하십니다. 주님은 가장 좋은 것을 가장 나중에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하신 일은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말하자면 주님의 일은 항상 영광스럽습니다.” 많은 의미들을 포함하고 있어서 짧은 시간에 다 소화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늘 설교에서는 두어가지만 살펴보고 다음 주 설교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 문제를 발견한 마리아는 예수님께 가서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하며 그 문제를 알렸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예수님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때를 따라서 일하심을 보여줍니다. 사실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은 촌각을 다투는 다급한 문제였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이 일을 해결하실 수 있다면, 만사를 제쳐두고 당장 그 일부터 하셔야 했습니다. “상황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하시며 한가한 대답을 하셨습니다. 마리아나 잔치를 치르는 주인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대답이 참 무심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문제나 상황은 언제나 다급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이나 상황들에 대해 우리는 즉각적인해결을 원합니다. 우리의 때는 언제나 지금 당장입니다. 이런 조급함으로 인해 우리는 늘 문제나 상황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말하자면, “문제가 우리의 왕이 되어 우리에게 호령하며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절대로 문제 앞에서 서두르시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속이 새까맣게 타 들어가는 위급한 문제일지라도, 예수님은 주님의 때에 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때까지 잠잠히 기다리기를 원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자주 로 인한 갈등들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25년의 긴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입니까?” 하고 탄식하며 (시편 35:17; 79:5 ), 선지자 하박국은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입니까?” 하며 부르짖습니다 (하박국 1:2). 예수님의 제자들도 부활하신 주님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입니까?” 하고 다그칩니다 (사도행전 1:6). 이러한 탄식과 초조함은 또 우리의 탄식과 초조함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힘과 방법으로 문제를 빨리해결하고자 하다가 더 큰 어려움을 만납니다. 하지만 정말 좋은 것은 문제를 즉시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좋은 것은 믿음으로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때야 말로 가장 좋은 때이며, 주님의 해결책이야말로 가장 좋은 해결책이기 때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하나님의 시간 스케일은 우리와 많은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그것은 자주 우리가 참고 기다릴 만한 시간이 아닙니다. “믿음이 아니고서는 달리 참고 기다릴 수 없을 만큼 길게 느껴지는 시간입니다. 중요한 것은, 때가 전적으로 주님의 소관임을 마음으로 영접하고, 또 주님의 때가 가장 좋은 때임을 믿으며, 그 때에 주님을 영광을 볼 것을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을 들은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마리아의 요청에 예수님께서는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하셨습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예수님께서 “No!”라고 하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리아는 이에 대해 “Yes!”로 대답을 합니다. 그녀는 하인들을 모아 놓고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이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무조건 “Yes!” 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때를 따라서 주님의 방법으로 일하시는 반면, 우리는 이 주님께 즉각적이고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항상 준비된 상태로 깨어서 주님의 말씀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며 우리는 주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마리아의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시면, 아마도,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왜 항아리에 물을 채우나요? 그게 이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나는 차라리 포도주를 구하러 나가겠습니다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밤새 바다에 나가 그물질을 하였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이 말씀에 순종하여 제자들이 배 오른 편으로 그물을 던지자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이들이 고기를 많이 잡은 것은 마침 그 때에 그 쪽으로 많은 고기들이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들이 고기를 많이 잡은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또 열왕기하 5장에 보면, 아람 왕의 군대장관인 나아만이 그의 문둥병을 고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았을 때, 엘리사가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그가 이 말씀에 순종하여 가서 요단강 물에 자신의 몸을 일곱 번 담그자 과연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과 같이 깨끗해졌습니다. 그가 이렇게 치료된 것은 요단강 물이 치유의 효능을 가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이렇게 치료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속담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에 빗대어, 저는 순종은 하나님을 춤추시게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으로 우리를 움직이시며, 우리는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대에 “No”라고 하셔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Yes”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말씀만 하시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30갤런 가까이 들어가는 커다란 돌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하인들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채우는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인들은 항아리의 아구까지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렇게 말씀에 끝까지 순종했을 때, 물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또한 밤새 그물질을 하였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눈 앞에 믿기지 않는 일어났습니다. 군대장관 나아만 또한 그가 몸을 여섯 번 요단강에 담그는 동안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순종하여 일곱 번을 채웠을 때, 말씀대로 그의 살이 깨끗해졌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100% 끝까지 순종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며 그 말씀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주님 되신예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서 말씀으로 일하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주님 안에서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때를 따라 사는 것이며,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내 문제가 아무리 심각하고 다급하더라도, 우리는 주님 앞에서 방정을 떨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때를 따라서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이는 내 삶을 다스리는 주는 내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님 앞에서 믿음과 순종으로 행할 때, 우리는 참으로 우리의 기쁨이 되시는 춤추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믿는 자들이 매일 누리는 잔치입니다. 우리 각자가 예수님께서 나의 진정한 주님이 되시는 축복된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