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꿈 꾸는 사람 요셉 – 진리에 순종하는 삶과 본능을 따르는 삶 (창세기 37장)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7. 2. 13. 04:11

꿈 꾸는 사람 요셉 진리에 순종하는 삶과 본능을 따르는 삶

 

창세기 37

 

제가 한국에서 다니던 대학교는 진리에 순종하라는 교훈을 가졌습니다. 지금 기억해 보면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의 신입생이 된 저에게 이 말은 알 듯 모를 듯 한 설렘과 기대를 주었습니다. 특히 진리라는 말이 그랬습니다. 내가 이전에 알지 못했던 것,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것, 그래서 나의 인생에 진정한 의미를 줄 수 있는 것,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알고 싶은 것, 나의 능력이나 노력이나 경쟁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착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만나는 것,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 평생 나의 자랑이 되고 나의 인도자가 되며 나의 친구가 되는 것,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것 …… 아마도 저의 설렘과 기대는 이런 것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진리가 있다면 저는 알고 싶었고, 또 기꺼이 순종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진리에 순종하라는 이 교훈을 곱씹으면서, 대학에 들어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성경 말씀을 공부하고 삶을 살아가면서 제가 배운 바로는, 세상에 두 가지 종류의 삶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하나는 진리에 순종하는 삶이며, 다른 하나는 본능을 따르는 삶입니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의 진리에 순종하는 삶자신의 죄의 본능을 따르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공부할 창세기 37장 말씀에서 우리는 요셉과 그의 형들을 통해서 이 두 가지 종류의 삶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삶은 서로가 매우 대조적이며, 또한 서로 충돌하기도 합니다. 삶의 과정과 결과가 사뭇 다릅니다. 요약하면, 본능을 따르는 삶은 평탄한 듯 보이지만 두려움과 어두움입니다. 반대로 진리를 따르는 삶은 고난스러운 듯 보이지만 평안함과 빛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이며, 아내 라헬로부터 얻은 두 아들 중 첫째입니다. 3절 말씀에 따르면 야곱은 노년에 얻은 아들 요셉을 다른 자녀들보다 더 사랑하였으며 그를 위해서 특별히 채색옷을 만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요셉을 특별히 사랑하자,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고 또 그에게 말을 함부로 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야곱의 편애가 아들들 사이에 이런 문제를 일으켰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셉의 생애를 공부해보면 그를 편애했던 사람이 그의 아버지 야곱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39:4절에 보면,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더라합니다. 39:22절에는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였다고 하고, 41:40절에서 애굽 왕 바로는 요셉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저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요셉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그를 편애했던 것을 보면, 요셉이 매우 충성되고 진실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37장 말씀에서도 요셉의 진실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2절에 보면 그가 그들의 (형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고 합니다. 아마도 요셉은 형들과 함께 아버지 야곱의 양들을 돌보면서 혹시 형들이 잘못을 하면 이를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보고했던 것 같습니다. 또 하루는 야곱이 요셉을 불러서 그를 형들이 있는 세겜이라는 곳으로 보냅니다. 그곳에서 양을 치고 있는 형들과 양떼들이 잘 있는지를 알아보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야곱은 베델이라는 곳에 살았는데, 이곳에서 세겜까지는 약 50km나 되었습니다. 지금은 1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당시 들짐승과 강도들이 우글대는 사막 길을 어린 소년이 혼자 걸어서 여행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아버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이 사나운 형들을 홀로 만나는 것도 내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아버지의 명에 내가 그리하겠나이다하고 떠났습니다. 요셉이 세겜에 도착했을 때는 형들은 이미 도단이라는 곳으로 옮긴 후였습니다. 이곳까지는 약 30km나 더 가야 했습니다. 요셉은 돌아가지 않고 다시 형들을 찾아서 도단까지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명한 일을 끝까지 충성스럽게 감당했습니다.

 

요셉은 어떻게 이렇게 항상 충성되고 진실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사람입니다. 창세기 39:2절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라고 하며, 3절에는 또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고 합니다. 21절에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라 하며, 23절은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은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합니다. 이 말씀들은 요셉의 삶이 항상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인 것을 보여줍니다. 요셉은 누구와 함께 있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항상 하나님 앞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그는 생애를 통해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에서 노예로, 노예에서 죄수로, 그리고 죄수에서 애굽의 총리로의 격변을 거듭하는 매우 드라마틱한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전혀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의 인생 여정은 요동치는 파도와 같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그의 깊은 영혼은 항상 거울처럼 맑고 잔잔한 호수였습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물론 말할 수 없이 큰 은혜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연약한 우리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은혜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마치 요셉이 아버지가 지어준 채색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요셉은 위로 10명의 형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직 그만 채색옷을 입었습니다. 채색옷은 여러가지 색깔의 옷감을 사용해서 만든 옷입니다. 그래서 항상 눈에 잘 띄고 다른 사람들과 구별이 됩니다. 이로 인해 시기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따돌림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옷이 더럽혀지거나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합니다. 요셉은 때로 이런 채색옷이 부담스럽고, 그래서 벗어버리고 싶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옷을 벗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먼 여행을 떠날 때도 그 옷을 입고 갔습니다. 이것은 요셉이 항상 아버지의 사랑안에 거하였으며, 또 아버지의 그 특별한 사랑을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했음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우리에게 이런 채색옷과 같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피로 눈에 띄게 표시된, 그리고 우리가 결코 벗어서는 안되며 벗을 수도 없는 우리의 정체성 (identity)”입니다. 누군가가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으면 우리는 나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입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시기하거나 조롱하거나 의심하더라도 나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입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세상에 대한 도전입니다. 이것은 요셉의 삶에서 매우 잘 드러납니다. 내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라고 고백을 하면, 세상 사람들은 과연 그럴까?” 의심합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너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고 우기며, 심지어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의 18-20절 말씀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형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하는지라.” 요셉의 형들은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보여주신 꿈 이야기를 듣고 이를 시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요셉을 죽여서 하나님의 꿈이 요셉의 생애에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하고자 했습니다. 자신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와 같이 거짓에 속아 어둠 가운데 거하는 세상에서 진리의 빛은 항상 매우 성가신 존재입니다. 세상은 그 빛을 꺼버리고 다시 평안한 어둠속에서 계속 깊은 잠을 즐기고 싶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나의 얼굴을 하나님을 향하여 살면서, 그 빛을 반사하고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이것이 진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진리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간혹 무미건조한 철학이나, 엄격한 윤리나, 어려운 수학을 연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도 진리의 일부가 될 수 있겠으나 진리의 본질을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리의 본체는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또 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딱딱한 계명들이 아니라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그 꿈은 심지어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합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꿈은 진리 되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은 진리의 일부입니다. 변할 수 없는 영원한 약속이며, 현금보다 더 믿을 수 있는 자기앞수표입니다. 왜냐하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친히 그 꿈을 이루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삶은 하나님의 꿈이 그의 생애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가 늘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라는 채색옷을 입고, 그가 늘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마음에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진리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사람들이 자주 꿈 꾸는 삶은 본능대로 사는 삶입니다. 나의 본능이 원하는 대로 소유하고, 즐기고, 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꿈이 아닙니다. 이것은 신기루일 뿐입니다. 거기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기대했던 행복은 전혀 없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만 없애면 평생 마음 편하게 살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습니다.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린 후 그들은 평생 죄의식에 시달리며 거짓속에 갇혀 살았습니다. 자신들의 잘못이 드러날까 두려워 늘 말도 소근소근” “! !” 했을 것입니다. 발 밑에 지렁이만 꿈틀거려도 소스라치게 놀랐을 것입니다. 심지어 후에 요셉을 만나서 그로부터 용서를 받았지만 이들의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나의 본능대로 사는 삶은 겉으로 보기에 평안하고 즐거워 보이지만 실상은 많은 회한들을 남길 뿐이며 미래의 소망이 없는 고통스러운 삶인 것입니다. 참된 꿈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꿀 수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영원한 진리이십니다. 항상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입고, 그의 얼굴을 향하여 살며, 주님께서 주신 꿈을 마음에 품고, 주님과 함께 걸으면 그것이 진리에 순종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 때,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끊임없이 은혜를 베푸시며 마침내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이루십니다. 우리 각자의 삶이 이와 같은 요셉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