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방패와 상급 되신 하나님 (창세기 15:1-21)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7. 5. 1. 03:56

방패와 상급 되신 하나님

 

창세기 15:1-21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은 주로 그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를 통해서 판단됩니다. 그가 갖고 있는 재산의 크기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인생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척도가 됩니다. 철학적으로 말한다면 소유(having)가 존재(being)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한 말이 아니고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라는 독일 철학자가 현대 사회의 문제를 설명하면서 한 말입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오늘날 사람들은 나의 소유물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I am what I have”가 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그 사람 자체가 “nothing”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 더 많이 소유하려고 노력합니다. 사는데 필요한 만큼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한도 끝도 없이 더 많이 가지려고 욕심을 부립니다. 이는 소유(having)가 곧 그들의 존재(being)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존재가 되기 위해서, 먼저 무엇인가를 소유해야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더 많이 갖기 위해 끊임없이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이런 가운데 세상은 포식자와 피식자가 서로 먹고 먹히는 난폭한 정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를 전혀 다른 세계로 인도합니다. 이곳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세계입니다. 이곳에서는 소유(having)이 존재(being)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존재(being)가 소유(having)를 결정합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을 통해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의 요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였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 말씀을 통해 보자면,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을 당시에 아브람은 두려움에 빠져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브람이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 따르면, 아브람과 하나님 사이에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아들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땅 문제였습니다. 십여 년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실 때, 그로 큰 민족을 이루실 것과 (창세기 12:2) 그의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을 (12:7)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의 정든 고향을 떠나서 이 낯선 땅으로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아직도 아들 하나 없었고, 땅 한 뙈기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아브람은 많은 육축과 은금을 갖고 있었습니다 (13:2). 하지만 그에게는 이 재산을 물려받을 아들이 아직 없었습니다. 더구나 아브람과 그의 아내 사래가 나이가 들면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또 정착할 땅도 없이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는 그의 상황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 많은 재산이 사나운 이방인들의 좋은 먹잇감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지만, 결국 이 때까지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아들도 없고 땅도 없는 자신을 보면서, 아브람은 갑자기 깊은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신이 nothing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이런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자신을 너의 방패그리고 너의 상급이라고 소개하십니다. 그냥 방패요 상급이라고 하시지 않고,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자신이 그에게 어떤 존재(being)가 되시는가를 보여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어떤 존재(being)가 되심은 아브람과 깊은 관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의 관계 속에서자신이 어떤 존재(being)가 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곧 아브람의 방패요 아브람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브람을 모든 위험들로부터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 자신이 아브람의 기쁨과 의미가 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어떠하심(being)을 여러 모양으로 설명을 합니다. 주는 인자하시며 진실하십니다 (시편 115:1). 주님은 그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다 이루십니다 (이사야 46:10). 주님께는 능하지 못한 일이 없으십니다 (예레미야 32:17). 이러한 말씀들은 그냥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심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어떤 분이 되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되, 항상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 속에서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방패와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소유물(possession)이라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곧 아브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뻐하며, 이런 아브람을 하나님께서는 보호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과 믿음에 기초한 살아있는 관계 (living relationship)”입니다. 소유(having)라는 것도 소유물사이에 맺어진 일종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유 관계를 에리히 프롬은 죽은 관계 (dead relationship)”라고 부릅니다. 내가 재산을 소유하지만, 나와 내 소유물 사이에는 사랑이나 신뢰같은 살아있는 가치들이 없습니다.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더욱 두려운 사실은, 내가 재산을 소유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재산이 나를 소유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존재(my being)”가 전적으로 나의 소유물(what I have)”에 의존하며, 그것을 떠나서는 나라는 존재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려움과 욕심으로 더욱 소유에 집착하게 되고, 결국은 내가 재산을 소유하는 (possessing) 것이 아니라 재산에 의해 소유되는 (being possessed)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의 방패요 그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소개하셨지만, 아브람은 여전히 아들 문제에 마음이 매여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불평을 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아브람에게는 아들을 갖는 것이 절대적으로중요하였습니다. 아들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방패요 상급이 되신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다른 좋은 것들을 아무리 많이 주신다고 해도 그에게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존재(being)보다 자신의 소유(having)가 더 중요했습니다. 이런 아브람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사랑하시고 그에게 구체적이고 확실한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그리고 아브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은 이 약속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를 아브람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약속은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사라의 몸을 통해 아들을 주실 것과 또 아브람의 자손들이 하늘의 별들처럼 셀 수 없이 많이 번성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아브람의 현재 상황과는 매우 동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직 자녀가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아브람과 사라가 모두 나이가 들어 그들이 직접 아이를 생산하는 것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람의 현실과는 상관 없이 이와 같이 온전한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아브람과 사라의 몸이 늙은 것도, 그들이 현재 무자한 (childless) 것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장이라도 그들에게 아들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께는 무엇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문제가 되는 것은 아브람이 이 하나님을 온전히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곧 아브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되는가 (being)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위해 어떤 존재(being)가 되신 것처럼, 아브람 또한 하나님께 대하여 어떤 존재(being)가 되어야 합니다. 아브람은 이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되면 다른 문제 곧 아들을 갖는 문제(having)는 자연스럽게 해결이 됩니다. 그리고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었을 때, 이미 그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아들 문제를 통해서 그를 조금씩 변화시키셨습니다. 변화란 아브람이 점점 더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변화를 말합니다. 오늘 말씀에서처럼 아브람은 아들 갖기를 포기하고 자신의 종을 상속자로 삼고자 했습니다. 후에 아내 사라가 아이를 생산하지 못하자 아브람은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 이스마엘을 얻었습니다. 더 나중에는 마침내 아내 사라로부터 약속의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또 이스마엘이 이삭을 괴롭히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들 이스마엘을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외아들 이삭을 여호와께 번제로 드리라고 하시자, 아브람은 이에 순종하였습니다. 이삭을 묶어 제단 위에 놓고 그를 죽이려는 아브람을 여호와의 사자가 불러 말리며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기꺼이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는 아브람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 아들을 주시지 않는다고 하나님께 불평하는 아브람과는 매우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전에 아브람은 아들을 갖기 위해 하나님께 불평을 하거나 또는 하나님과 상관 없이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소유(having)를 위해 존재(being)를 포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사람(being)이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그는 자신의 외아들 곧 가장 소중한 소유물(having)을 포기하면서까지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창세기 22:16,17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 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아브람이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being)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시되 사람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정도로 그렇게 축복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한 사람의 소유(having)가 그의 존재(being)를 결정합니다. 반대로, 하나님 안에서는 나의 존재(being)가 나의 소유(having)를 결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깊이 생각해보면, 나의 소유(having)를 결정하는 것은 사실 나의 어떠함(being)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어떠하심(being)”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을 믿고 경외함으로 이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십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심(being)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았을 때도, 심지어 주신 것을 도로 가져가실 때도 하나님의 방패요 상급 되심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과연 그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 되셨습니다. 그의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방패요 상급이 되시며, 나는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자입니다. 사랑과 믿음의 살아있는 관계속에서 모든 좋은 일들이 일어나며, 모든 축복들이 우리 삶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많이 주실 수도 있고, 주신 것을 도로 가져가실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살아계시며 유일하시며 참되신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경외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짓말처럼모든 일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합니다. 우리 각자가 이 은혜 가운데 거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