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염려하지 말라 (마태복음 6:25-34)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7. 5. 15. 22:36

염려하지 말라

 

마태복음 6:25-34

 

20년 전에 저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선교사로 살기 위해 한국을 떠났습니다. 떠나기 전에 작별인사차 여러 친지들과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 때 제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외국에 나가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아주 소수의 사람들은 다른 질문을 하였습니다. “왜 선교사의 삶을 살려고 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제가 정든 고향, 좋은 사람들, 안정된 직장을 뒤로 하고,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이유를 궁금해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매우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뒤적거려가며 열심히 제 인생의 꿈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사실 제게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선교 훈련을 받으면서, “먹고 사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할 것이면 선교사로 나가지 말아라하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는 것아마도 이것이 제가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유일한 뾰족한 수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타국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제가 가진 전 재산이 한 달 생활비를 넘어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번도 생활비가 바닥이 난 적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참으로 신묘막측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고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염려한다는 말은 본래 마음이 나뉘어진다또는 생각을 빼앗긴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염려한다는 것은 마음이나 생각이 중요한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일들에 빼앗기거나 그런 것들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먹고 사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근본적으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는 것을 매우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명령의 말씀이며 우리가 순종해야 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왜 염려해서는 안 되는가에 대해서 여러가지 말씀을 하십니다.

 

첫째로, 목숨이 음식보다 더 중요하며 몸이 옷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하고 반문하십니다. 이 말씀은 이해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음식을 먹습니다. 음식이야말로 생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으며,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생명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먹지 않으면 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목숨이 음식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으로 미루어보자면,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음식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4:4절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말씀하십니다. 또 요한복음 4:34에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이 말씀들은 사람의 생명이 음식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시며 또 그 생명을 풍성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숨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는 대신, 우리의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앞에 인용한 말씀들을 예수님께서 하실 때, 주님은 매우 시장하신 상태에 계셨습니다. 심지어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도 예수님은 여전히 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하심은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우리의 생명이 되시며 우리가 생명을 위해 온전히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함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곧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과 음식 사이에 나누어지거나 음식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과 정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이 사람은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을 정도로 큰 부자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무 염려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이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는 먹고 마실 것이 풍성함으로, 자신의 생명이 그만큼 평안하고 풍요로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이 사람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붙들지 않고, 대신에 먹고 마시는 데서 생명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생명을 잃었습니다. 목숨보다도 음식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결과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먹고 마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또 그 생명을 보살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또 그 뜻에 순종하여 살 때, 우리의 생명이 안전합니다. 심지어 이를 위해 우리가 죽더라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며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또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하나님을 가리켜 너희 천부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라고 부르십니다 (26, 32). 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매우 섬세하게 돌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이사야서 49:14,15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것이 자식에 대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엄마가 자신의 품 안에서 젖을 먹던 자식을 잊어버리는 일은 혹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잊으시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눈에 우리는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어린 아이는 두 가지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매우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매우 무능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발견해야 할 자신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를 거듭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6) 하시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30)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렇게 귀한 반면,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매우 무능한 존재입니다. 27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 있느냐?”

 

우리는 고아와 같이 살면 안 됩니다. 고아는 그를 소중하게 여기고 보살펴주는 부모가 없습니다. 그래서 먹는 문제와 입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얼마나 불쌍한 일입니까?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하는 것은 이런 고아의 불쌍한 삶을 자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며, 불신자와 별로 다름이 없이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아주 절실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항상 가슴을 펴고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반듯이 서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너는 얼마나 귀하냐?” 또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 존재인지를 아주 절실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단 1초도 생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품 안에 있는 어린 아이와 같이 돌보십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에는 결코 실수나 실패가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변함 없이 신실하신 사랑이며, 주님의 능력은 한계가 없이 전능하신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엄마 품 안에서 아기가 잠을 자듯이 평화롭게 하나님께 나를 맡길 수 있습니다. 모든 염려의 짐들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것이며, 이것이 아버지의 자녀 된 나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오늘 말씀을 기초로 믿음을 형용하자면, 믿음이란 마치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우리 삶의 가장 깊은 곳까지 하나님을 빨아들이며 하나님으로 흠뻑 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중에 나는 새들도 일일이 먹이시고 들에 핀 백합화도 일일이 입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도 이와 같이 깊이 스며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먹고 마시는 일은 우리가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믿는 자의 삶은 하나에서 열까지 다 하나님 안에서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살아야 합니다. 믿음이란 내 삶 속에 마련된, 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염려를 한다는 것은 그런 공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불신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다른 의지할 것을 찾아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이 없이 살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십니다. “먹고 마시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직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긴 것이 아닙니다. 아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불신으로 염려하는 대신,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일하실 공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면 물이 자연스럽게 스폰지의 빈틈으로 스며들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깊은 곳에 임하십니다. 부족함이 없이 채우시고, 신실하게 돌보시며, 영광스럽게 축복하십니다. 이것은 가능성이 아닙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십니다.

 

33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하는 대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염려한다는 말은 두려움 때문에 마음을 빼앗긴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구하라는 말은 한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며 찾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는 삶과 구하는 삶은 매우 다른 것입니다. 염려하는 삶은 방향이 없이 쫓기며 시달리는 삶이지만, 구하는 삶은 분명한 방향과 목표를 가지고 힘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전에 읽은 책에서, 저자는 염려를 안개로 비유합니다. 한 마을을 뒤덮는 짙은 안개를 물로 바꾸면 겨우 컵 한잔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곧 한 컵의 물이면 한 마을을 안개로 덮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주 사소한 염려도 우리 마음을 이렇게 온통 어둡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의 안색만 보고도 금방 그 사람 속에 근심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염려하는 삶은 이렇게 평생 안개 속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항상 좇아야 할 분명한 삶의 방향과 목표를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란 무엇일까요? 이것은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것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염려하게 하는 두려움의 소리를 듣지 말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죽음의 두려움에 쫓겨 생존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명의 주인 되신 아버지 하나님 안에서 그 뜻을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속에 염려의 안개가 걷힙니다. 하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하시며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평안하고, 풍요롭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이며, 하나님은 우리의 신실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조각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 아버지께 대한 믿음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 중에 어느 한 부분이라도 염려에 감염되면, 이것은 곧 우리 영혼 전체를 어둡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질병이 됩니다. 그리고 이 병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은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아무리 염려할 이유가 충분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염려하는 자가 아니라 믿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세상에 임하시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