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 II (마태복음 7:6-12)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7. 6. 30. 04:40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 II

 

마태복음 7:6-12

 

제가 올스톤에 산 지가 벌써 10여 년이 넘었습니다. 한 곳에 오래 살 때 좋은 점은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식당에도, 주유소에도, 미장원에도, 카페에도 친해진 이웃들이 있습니다. 이 이웃 사촌들은 제가 그들의 가게들을 방문하면 반갑게 맞아주고, 제가 원하는 것들을 알아서 챙겨주고, 또 주문하지 않은 것을 덤으로 주기도 합니다. 손님과 주인 사이의 거래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귐이 알게 모르게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올스톤이 더욱 내 집으로 느껴집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본질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사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 34: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고 알게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가 우리 신앙의 여정을 통해서 변화되고 성장하는 것은 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내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주님과 사귀는 것입니다. 이 사귐을 통해서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주님이 내 집으로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하는 기도와 관련하여, 기도란 거룩한 것을 구하여 받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많은 좋은 것들을 선물로 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물 속에는 항상 더 좋은 선물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들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들은 모두가 거룩한 것이며, 신령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의 받되, 그 선물 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오히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과 나 자신을 주님께 드려 주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이것이 거룩한 것을 감당하는 올바른 자세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힘이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우리는 이 약속을 믿고,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간절히 찾고 구하고 두드려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도에 관해 생각해볼 것은 기도란 가장 좋은 것을 구하여 받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의 9-11절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 예수님의 말씀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하나님 아버지는 선하시며 인자하셔서,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우리가 믿고 붙들어야 하는 중요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인자하십니다. 이것은 성경의 중요한 주제들 중 하나입니다. 시편은 반복해서 노래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하나님의 본질적이고 절대적인 속성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란 그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해처럼 비처럼 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 선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토록 인자하신 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는 자주 어떤 사람에 대해 선하다,” “착하다또는 좋다라는 말을 씁니다. “그 사람 괜찮아!”라고 한다든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라고 말하며 평가를 합니다. 하지만 선하다는 말은 사실 사람에게 쓸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쓰여질 수 있는 말입니다. 마가복음 10:17절에서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선한 선생님이여!” 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자신의 선하심을 부인하신 것이 아니라 이라는 것이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체이시며, 오직 하나님만 선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선하거나 좋을 수 없습니다. “선하다라든가 좋다라는 개념 자체가 하나님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과, 말씀과, 하시는 일들은 모두 선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을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이 곧 선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들이 곧 선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은 다 선한 것이며, 또 선한 것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우리에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것이며 우리를 위해 좋은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34: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도다.” 또 로마서 8:3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겠느뇨?” 이 말씀들은 모든이라는 단어를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되, “모든 좋은 것으로 부족함이 없게 하시며,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주십니다. 인색하게 조금 주시는 것도 아니고, 또 귀한 것을 아깝다고 감추어두시고 안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모든 좋은 것을 아낌 없이 주시는인자하심입니다. 이것이 자녀들에 대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그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확실하게 보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인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경험하고 알아가는데 있어서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의 생명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3:4절에서 예수님은 마음이 완악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이 예수님의 말씀은 선을 행하는 것은 곧 생명을 구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많은 선한 일을 하셨으며,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하신 많은 일들은 사실 한가지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양들의 생명을 구원하고 풍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나의 생명을 살리고 더욱 풍성하게 하는 방식으로선하시고 인자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명을 살리고 풍성하게 하는 하나님의 선하신 일들이 때로는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닐 수 있습니다. 심지어 전혀 반대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주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오히려 무서운 진노로, 견디기 어려운 고난으로, 캄캄한 어두움으로, 아득한 절망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전히 내게 선하시고 자비하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보게 될 결국은 더욱 건강하고, 풍성하고, 거룩하게 변화된 우리의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우리는 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소가 가려운 곳을 긁기 위해서 언덕에 몸을 비비는 것과 같이, 기도 또한 우리의 간절한 필요들을 위해 비빌 언덕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도의 비빌 언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입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내 영혼의 깊은 소원들을 간절한 마음으로 비벼대는 것입니다. 그 비빌 언덕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아니라면, 그것은 황소가 허공에 대고 몸부림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심하게 몸부림을 친다 해도 결코 가려움을 해소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의지하지 않는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많은 말들을 의지하여 기도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아버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비슷한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호소하지 않고, 나의 길고 간절한 기도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의 기도는 이런 이방인의 기도와 달라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정확히 선하시고 인자하신 아버지를 향한 기도여야 합니다. 오직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의지할 때, 우리의 기도가 명확하고, 담대하고, 확신 있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인자하십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은 우리를 생명을 위해 선한 일을 하시며 아무 것도 아끼지 않으십니다. 여기에 우리의 기도의 담대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세상에는 선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에서 구할 것도 없습니다. 세상에는 아버지의 사랑도, 생명의 진리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유일한 비빌 언덕은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입니다. 주님으로 충분하며 차고 넘칩니다. 우리 각자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고 알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좋은 것들로 풍성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안에서 더욱 풍요로워지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 하나님과의 사귐이 날로 더욱 깊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