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와 바알 선지자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열왕기상 18장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에 관한 책이지만, 흥미롭게도 그 안에는 하나님 외에 여러 신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바알과 아세라가 있습니다. 거룩한 책에 이런 이방 신들의 이름들이 소개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말해서, 이는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의 많은 장면들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우상들과 다투시고 경쟁하십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만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사실 이것은 성경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 개개인의 삶에서 매일, 그리고 평생 동안 일어나는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는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도용하는 거짓된 우상들이 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며 또한 하나님을 깊이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예배를 받으시는 “참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열왕기상 18장에 기록된 이야기도 우리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계시하는 중요한 증거들 중 하나입니다. 본문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는 450명의 바알 선지자 및 400명의 아세라 선지자와 맞서 싸웁니다. 이 싸움을 통해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첫째, 여호와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여호와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십니다.
아합은 북이스라엘의 17대 왕입니다. 열왕기상 16:30절은 아합왕에 대해서,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주목할 것은 “여호와의 보시기에”입니다. 아합 왕의 때는 북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영적으로” 가장 어두웠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아합 왕 시절의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평화롭고 풍요로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열왕기하 3:4,5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의 털과 수양 십만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 이 말씀에 따르면, 아합 왕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동안, 이웃 나라인 모압은 해마다 어마어마한 양의 조공을 이스라엘에 바쳤습니다. 또 아합은 자신을 위해 상아궁을 짓고 여러 성들을 건축하였습니다 (열왕기상 22:39). 이것들은 이스라엘이 매우 강성하고 평화로웠으며, 물질적으로도 풍요를 누렸음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 아합은 최소한 “최악의 왕”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보시기에” 그는 이전의 다른 어떤 왕들보다 더욱 악한 “최악의 왕”이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기록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그가 우상 숭배자였기 때문입니다. 아합은 우상숭배자의 딸이며 또 자신이 지독한 우상숭배자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바알을 위해 단을 쌓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섬겼습니다. 그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우상 숭배자였습니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죄이며 악입니다.
아합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심한 기근을 보내셨습니다. 삼 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땅의 대부분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전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천수답”입니다. 일 년도 아니고 삼 년 동안이나 비가 내리지 않았으니, 아마도 땅에 있는 모든 물이 다 말라버렸을 것입니다. 생명이 살 수 없는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에 따라 그리고 당신의 때를 따라서 땅에 기근을 보내시기도 하시며, 또 비를 내리시기도 하십니다. 아합 왕이 좇는 우상 바알은 “풍요의 신 (god of fertility)”이라고 합니다. 바알은 비와 바람과 번개 등 날씨를 주관하는 신으로 믿어졌습니다. 당연히, 비가 내리면 바알 숭배자들은 바알이 그 비를 보내주었다고 믿고 바알에 절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갈 감사와 영광을 바알이 가로채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오늘 사건을 통해 “누가 참 하나님인가”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게 하십니다.
첫째, 여호와는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여호와는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합을 만난 엘리야는 그에게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과 400명의 아세라 선지자들을 갈멜산으로 모으라고 요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갈멜산으로 나아왔습니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에게 이렇게 제안을 합니다. 각기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자기 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곧 바알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을 부르고, 엘리야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로 응답하는 신” 즉 하늘에서 불을 내려 드려진 제물을 태우는 신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바알 선지자들은 송아지를 잡아 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자신들의 몸을 칼과 창으로 상하게 하면서 몸부림을 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29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더라.” 바알은 듣지도 대답하지도 않습니다. 이는 바알이 살아있는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존재는 아예 없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송아지를 잡아 단 위에 놓고, 심지어 그 위에 물을 넘치도록 붓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엘리야가 기도를 마치자 하늘에서 여호와의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강력한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여호와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에 반응을 하십니다.
여호와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또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일한 생명의 근원이 되십니다. 엘리야는 송아지를 잡아 단 위에 놓고 그 위에 물을 넘치도록 붓게 하였습니다. 희생 제물과 나무가 물에 흠뻑 젖었고 둘레의 도랑까지 물이 가득하여 이것들이 불에 탈 가능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엘리야는 모든 ‘가능성’을 없애버렸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죽음”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모든 인간적인 가능성을 없애버림으로써, 살아계신 하나님,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서도 여전히 진리입니다. 곧 인간적인 가능성이 끝났을 때, 하나님의 불가능한 일들이 시작됩니다. 인간적인 생명이 끝났을 때, 하나님의 부활과 영생이 시작됩니다. 인간적인 소망이 끝났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됩니다. 이는 오직 여호와만이 살아계시며 우리를 위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불가능한 중에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며 소망 중에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여호와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달리 말하자면,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에서 여호와의 불이 내려와 태우는 것을 본 백성들은 엎드려 말했습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이에 엘리야는 백성들로 바알 선지자들을 모두 잡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기손 시내로 끌고 가서 그곳에서 죽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오직 하나님만을 향하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줄 때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명기 6:4,5). 예수님께서도 첫째 계명을 주시면서 이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하십니다 (마가복음 12:29). 성경은 자주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을 “음란하다”고 정죄하며, 예수님께서도 이런 사람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부르십니다. 이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주”이시며, 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전부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에 대한 주님의 지극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음란한 마음”을 회개하지 않을 때, 그 지극한 사랑이 우리가 견디기 어려운 진노가 됩니다. 유감스럽게도 뜨겁게 사랑하시며 질투하시는 하나님께는 미지근한 “중간 지대”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께로 온전히 돌이킬 때까지 계속 질투하십니다.
셋째로,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주님께서 전능하시며 또 신실하셔서 능히 그 하신 말씀들을 그대로 이루심을 의미합니다. 바알 선지자들을 멸한 후, 엘리야는 아합에게 말했습니다.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과연 얼마 후에 바다에 작은 구름이 일어나고, 곧 하늘이 컴컴해지고,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바알 선지자들을 죽이자, 하나님께서 삼 년의 가뭄을 끝내시고 땅에 비를 내리셨습니다. 이것은 비를 내리시는 분이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그 원하시는 뜻대로 하시는 행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곧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이 되심은 주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으로 증거됩니다. 그 능력은 세상을 창조하신 능력이며, 만물을 붙드시고 뜻대로 다스리시는 능력이며,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는 능력이며, 원수들을 심판하시고 멸하시는 능력입니다. 이러한 능력들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으십니다. 사단 마귀는 하나님을 맞설 수 없으며, 심지어 죽음의 권세도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우상은 “거짓 신”입니다.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이 한 명의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야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이는 그들의 신 바알은 거짓 신이며,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여러가지 면에서 “부요한” 시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대해서는 참으로 “가난한” 시대입니다. 우상 숭배자인 아합이 다스리던 이스라엘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영적으로 가장 어두웠던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많은 놀라운 이적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때를 “아합의 때”라고 부르지 않고 “엘리야의 때”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이 시대의 “엘리야”로 부르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은 다름이 아니라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하나님으로 예배를 받으시며, 우리에게 축복의 비를 내리는 은혜가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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