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한복음 5:1-16)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7. 7. 24. 03:53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한복음 5:1-16

 

하늘을 나는 독수리는 폭풍우가 일어날 때 그 비를 피하기 위해서 구름 위로 솟아 오른다고 합니다. 다른 작은 새들은 컴컴한 구름 아래 나무 밑이나 바위 틈에 숨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지만, 독수리는 아예 구름 위로 벗어나 여전히 맑고 밝은 태양빛을 즐기며 하늘을 비행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삶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삶은 구름 아래 갇혀 늘 어둡고, 무겁고, 힘이 없고, 두려워합니다. 반면에 어떤 삶은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독수리처럼 밝고, 가볍고, 힘있고, 즐거워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런 독수리와 같은 삶, 밝고, 가볍고, 힘있고, 즐거운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할 말씀은 예수님과 38년 동안 누워지냈던 병자 사이의 대화입니다. 또 주님께서 이 불쌍한 병자에게 행하신 놀라운 치료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치료는 평생 구름 아래 갇혀서 어둡고 비참한 삶을 살던 이 병자를 구름 위로 끌어올리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또 이 은혜는 우리 각자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명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에는 여러 개의 출입문들이 있는데 그들 중 양문이라는 것이 있고 이 문 가까이에는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연못 주변에는 행각 다섯 채가 있고 그 안에는 많은 병자들 곧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있었습니다. 이 병자들이 이 연못 주변에 모여 있는 이유에 대해서, 가끔씩 천사가 못에 내려와서 물을 움직이는데 이 때 물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데스다라는 말은 자비의 집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이름만 들으면 왠지 흰 옷을 입은 수녀님들이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정원을 거닐 것 같은 평화로운 광경이 연상됩니다. 하지만 이런 이름과는 달리 그곳 풍경은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각 사람이 모두 치료하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병들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병자들 중에는 38년 동안 누워서만 지내던 병자도 하나 있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을 방문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의 누운 것을 보시고 또 그의 병이 오래 된 것을 아시고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시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서 이 38년 된 병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님과 병자 사이의 이 대화는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고 물으시는데, 이 병자는 자신의 병이 나을 수 없는 주변의 어려운 상황과 형편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주변 상황이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찾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38년 된 병자의 형편은 매우 어려워서 그의 병이 치료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물이 움직이는 일도 매우 드물거니와, 설사 그런 기회가 온다 해도 병자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합니다. 더구나 이 병자는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이 경쟁에서 치명적으로 불리합니다. 생각해보면, 이 병자의 대답은 매우 당연하게 들립니다. 오히려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시는 예수님의 질문은 이 38년 된 병자가 듣기에 참으로 어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 저의 형편이 보이지 않나요? 누가 나를 도와서 못에 넣어주겠습니까? 자기들 살기도 바쁜 이 세상에 말이에요!”

 

목회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의 심각함을 설명하기 위해서, 자신의 주변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는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나쁜지에 대해서 얘기를 합니다. 들어보면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고, 저도 모르게 그 사람의 상황 속에 함께 빠져들곤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그 어려운 상황을 걱정하며 그 나쁜 사람들에 대해 불평을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 사람의 마음에 평안과 위로를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문제의 근본 원인은 주변의 어려운 상황이나 나쁜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에게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문제의 근본 원인은 바로 나의 죄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돕는답시고 내내 주변의 어려운 상황을 함께 걱정하거나 나쁜 사람들에 대해 함께 불평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괜찮아요,” “당신한테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하면서 그 사람을 문제 속에 더 깊이 주저 앉히는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38년 된 병자와 같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실 때에, 자동적으로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불평과 불만입니다. 그는 이 어려운 상황속에 완전히 갇혀 버린 것입니다. 컴컴한 구름 아래 갇혀서 한 줄기의 빛도 없이 거센 비바람을 맞으며 고단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14절에 보면, 이 병자가 치료된 후에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성전에서 다시 만나셔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 사람의 병은 이 사람의 죄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지 않고 어려운 상황에 갇혀 버린 죄입니다. 이 병자가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고 불평하며 마냥 누워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이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병자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38년 동안 누워만 지내던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매우 과격한 정면 도전입니다. 그에게 익숙한 것은 자리에 누워서 움직이지 않는 삶입니다. “자리에 누워서 움직이지 않는 삶이 그가 알고 있는 유일한 삶입니다. 그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이 사람의 38년 된 병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는 여러가지 영적인 또는 육적인 고질병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두려움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미움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이기심이기도 합니다. 우울증이나 절망이나 외로움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두려움이 많을까 생각을 하다 보니, 옛날에 걱정을 많이 하시던 제 아버지도 생각이 나고 또 저를 많이 괴롭혔던 형도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자신의 두려움이 이런 제 주변의 사람들과 주위 환경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 저는 더욱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심지어 두려움을 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공부하면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마가복음 5:36). 이 말씀이 날아와 제 마음 속에 꽂힌 후에 저의 삶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두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이 말씀이 제 귀에 쟁쟁하게 울렸습니다. “낙무야,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이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여전히 두려워하는 자신을 보면서 절망이 될 때도 많았습니다. 자신이 참으로 완악하고 소망 없는 죄인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또 주님께서 모든 문제들을 아주 놀랍고도 영광스럽게 해결해 주심으로써, 내가 왜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지를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뜻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는 그 문제를 원인이 될만한 사람들이나 어려운 환경들을 탓하며 슬픔과 절망 가운데 주저앉아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이 자체가 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 매우 복잡한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단순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독수리가 구름 위에 있는가 구름 아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나아가 그 말씀을 듣는가 듣지 않는가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입니다. 문제의 당사자는 오직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오직 나의 불신과 불순종의 죄입니다.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 말씀은 이 사람을 하나님 앞에 홀로 세우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변명거리와 불평거리를 찾기에 분주한 이 사람을 붙들고, 오직 한 마음으로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시며 귀를 기울이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님 안에서 소망을 찾도록 도우시는 말씀입니다. 그 전능하심을 믿고 의지하도록 초대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선포하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이 주님의 말씀이 이 사람을 일으켰습니다. 그로 자리를 들고 걸어가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죽은 자와 같은 이 불쌍한 영혼을 살리셨습니다.

 

요한복음 5:25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사람의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사단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이 죄로 인해 사람은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창세기 1:28) 대신 상황과 형편에 정복당하고 다스림을 받는 “38년 된 병자와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이런 우리에게 그의 음성을 들려주시고 우리를 다시 정복하고 다스리는 존재로 회복하시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약속은 분명합니다.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나의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세상이 아무리 악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을 찾지 않고 주의 말씀을 듣지 않는 나의 죄가 문제입니다. 독수리가 폭풍우를 뚫고 구름 위로 날아오듯이, 우리 영혼이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할 때, 주님의 음성은 우리에게 빛이 되고, 능력이 되고, 생명이 됩니다. 우리가 다시 정복하고 다스리는 자가 됩니다. 우리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나는 역사가 넘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