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고린도전서 15:12-26)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7. 9. 25. 03:14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고린도전서 15:12-26

 

오늘은 부활 곧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언젠가 제 아버지가 앞에 성경책을 펴놓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젊었을 때 성경책을 읽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부분을 읽고 책을 덮었다. 이렇게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성경을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서 다시 성경책을 열고 찬찬히 읽으면서 이제야 깨닫는 것이 있다. 성경책에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성경책이 아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제 아버지는 예수님의 부활때문에 성경을 덮었다가 예수님의 부활때문에 다시 성경을 찾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성경은 성경이 아니고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예수님의 복음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속한 15 3,4절 말씀입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예수님의 죽으심이 복음의 씨이며 뿌리라면, 예수님의 부활은 복음의 줄기이며 열매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사람들 중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복음을 영접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아주 치명적인 독이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사신 것과 또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이 다시 살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변증하였습니다. 사실 부활을 증거하는 것이나 그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역사적으로 증명하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이런 노력이 도움이 될 수는 있겠으나,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의 벽을 무너뜨리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장차 있을 우리의 부활을 믿기 위해서는 하나님 안에 있는 복음의 진리전체를 통째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 안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Elmer Gantry라는 소설이 있는데 미국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Sinclair Lewis라는 작가가 쓴 것입니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00년대 초로 아직 비행기 곧 하늘을 나는 기계가 발명되지 않은 때입니다. 이 소설 속에 신학교의 한 노교수와 학장이 나누는 흥미로운 대화가 있습니다. 그 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노교수:온갖 새로운 직업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의학, 광고 등…… 세상은 정말 빨리 변하고 있어요! 학장님, 내가 말하건대 앞으로 40년 내에 사람들은 하늘을 나는 기계를 타고 다니게 될 겁니다. 아마도 한 시간에 100마일이나 되는 속도로 여행을 할거라고요!”

학장:오 친구! 만약 사람이 하늘을 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왜 우리에게 날개를 주시지 않았겠습니까?”

노교수:그렇지만 성경책에도 그런 예언들이 있습니다.”

학장:그것들은 단순히 영적이고 상징적으로 하늘을 나는 것을 말할 뿐입니다. 안돼요! 성경의 분명한 목적을 거스르지 마세요. 나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마지막 날까지 사람이 여기 땅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보여주는 글들을 성경에서 백 개라도 찾아서 보여줄 수 있어요.”

노교수:, 그런가요?”

 

위의 대화에서 노교수는 가까운 장래에 사람들이 하늘을 나는 기계 곧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학장은 이것을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부정합니다. 우리도 비행기가 없던 시대에 살았더라면 아마도 수백 명의 사람들을 태운 거대한 쇳덩어리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오늘날의 모습을 상상하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비행기 여행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이제는 쇳덩어리가 하늘을 날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모르는 세상은 죽음에 갇혀있어서 부활이 무엇인지 상상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부활은 증명할 필요조차 없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삶의 일부입니다.

 

바울은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이라는 조건문으로 그의 변증을 시작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을 경우 생기는 문제들을 크게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복음이 거짓이 됩니다. 둘째,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게 됩니다. 셋째, 우리에게 더 이상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없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모두 기독교 신앙전체를 뿌리째 뽑아버리는 매우 중대한 것들입니다. 따라서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우리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시 죽음에 갇히고, 어둡고 두려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복음이 거짓이 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약속하신 대로 죽음의 권세를 파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부활이 그 정점을 이루기는 하지만, “부활은 사실 성경 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부활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신실하심을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모티브입니다.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 다니엘과 같은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다 죽음과 같은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다시 살리심을 경험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의 부활을 통해서 자신이 창조주이시며 구원의 주이심을 우리에게 드러내시고 증거하십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하나님의 영광죽음의 그림자에 가리워지게 됩니다. 이와 함께, 하나님께 대한 성경의 모든 증거들도 다 거짓이 됩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게 됩니다. 16,17절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우리가 복음을 통해서 믿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하셔서 (redeem), 법적으로 우리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모든 죄를 용서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 아니기 때문에, 죽음이 더 이상 우리를 가둘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죄의 삯곧 죄에 대한 형벌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죽으심도 이를 통한 죄사함도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사실상 믿기 이전의 삶에서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 것입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에게 더 이상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없습니다. 18,19절 말씀입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부활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해 거치는 유일한 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활이 없다면 하나님 나라의 영생으로 들어가는 길이 막히는 것이며, 우리의 천국 소망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20년 전에 저는 뉴질랜드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건너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짐을 싸서 미국으로 부쳐버렸습니다. 그런데 비자 문제로 미국으로 곧장 올 수가 없게 되었고 저는 2년 정도를 한국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살림살이는 미국에 가있고 몸만 한국에 있는 꼴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세상에서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골로새서 3:2,3절 말씀입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포함해서 우리의 모든 소중한 것들을 다 하늘 나라로 보내고 이제 우리 몸이 들어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과 영생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0:28절 말씀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이 말씀에 따르면 죽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육체의 죽음이며, 다른 하나는 몸과 영혼곧 그 사람 전체의 죽음입니다. 육체의 죽음은 몸에서 영혼이 분리되어 나가고 몸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죽음입니다. 또 다른 죽음은 몸과 영혼이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이것을 가리켜 둘째 사망이라고 부릅니다 (요한계시록 21:8). 그리고 이것 곧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히 분리되어 지옥의 불못으로 떨어지는 것이야말로 진짜 죽음이며,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죽음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육체의 죽음으로, 그리고 죽은 자들을 잠자는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선언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으리라.” 굳이 말하자면, 이 생명은 둘째 생명이며 영생입니다. “둘째 사망이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 것과 같이, “둘째 생명은 하나님과 영원히 연합하여 고통이나 상함이 없는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겪게 될 첫째 사망곧 육체의 죽음은 아주 잠깐 동안 잠을 자는 것입니다. 이 잠에서 깨어날 때 우리는 모두 우리의 생명을 지으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는 내일을 위해서 먹을 것도 준비하고, 계획도 세우고,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침대에 누워 단잠을 잡니다. 내일 아침 해가 뜰 때 다시 잠에서 깨어날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치고 잠이 들면 주님의 때에 모두 깨어납니다. 그 날을 위해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복음 5:29).” 예수님을 믿거나 믿지 않거나 우리는 모두 잠에서 깨어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을 정산해야 합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죽음의 장막에 갇혀서 죽음 너머의 세상을 보지 못하며, 따라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악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은 죽음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삶을 살며 내일을 준비합니다.

 

죽음은 영원한 진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진리가 되십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26)입니다.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심지어는 죽음도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 뒤에는 부활로 이어지는 영원한 세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를 통째로받아들일 때, 부활은 당연한 사실이 됩니다.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는 부활이 없는 세상이야말로 상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안에서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이 소망 안에서 영생의 열매를 맺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