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 (요한복음 1:29-34)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7. 10. 23. 04:18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

 

요한복음 1:29-34

 

우리가 몸이 아프면 병원에서 가서 의사의 치료를 받습니다. 그런데 환자는 병을 앓고 있는 당사자이지만, 자신의 병이 어떤 상태이고 또 그 병이 어떻게 치료되는지를 잘 설명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자신이 병에 걸려있는지를 모를 수도 있고, 병이 얼마나 심각한지, 왜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치료를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그 과정이 얼마나 어려우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드는지, 또 몸의 건강을 회복한 후의 즐거움이 어떠한지 등이 모두 막연할 뿐입니다. 이런 내용은 의사가 더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의 병과 치료를 의사의 눈으로 보면 훨씬 더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이는 우리 영혼의 구원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이 일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만 우리가 이 말씀들을 읽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우리가 여전히 세상 속에 있는 나의 눈으로구원을 보고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내용과 의미와 은혜를 충분히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눈으로, 예수님의 눈으로 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을 그렇게 읽어야 할 것이며, 오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 대한 세례 요한의 증거입니다. 이 증거는 구주 예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구원하시는지를 잘 설명합니다. 세례 요한의 증거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신 일은 첫째, “세상 죄를 지고 가신 것이며, 둘째,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신 것입니다. 가장 나쁜 것을 가져가시고, 대신에 가장 좋은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두 가지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을 떠받치고 있는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주님의 은혜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지며, 또한 성결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 변화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삶은 오직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이 두 가지 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기둥 같은 은혜를 우리 마음 속에 굳게 세우고, 이 은혜를 의지하여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세상 죄란 세상의 모든 죄를 말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죄나 예수님을 따르는 몇 사람들의 죄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죄입니다. 현재의 죄뿐 아니라 과거의 죄와 미래의 죄를 모두 포함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모든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는 온갖 나쁜 것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두려움, 수치심, 미움, 질병, 형벌, 죽음 등이 죄로부터 생기는 무서운 문제들입니다.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세상의 죄의 뿌리가 너무 깊고 무거워서 아무도 그것을 뽑아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깊고 무거운 세상의 죄를 홀로 들어 메셨습니다. 그리고 다 지고 가셨습니다. 이제 죄는 그 죄를 지고 가신 예수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세상의 모든 죄는 이미 예수님께서 지고 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죄나 죄인을 볼 때, 우리는 두려움이나 수치심이나 형벌 대신, “그 죄를 지고 가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지고 가신다는 것은 어떻게 하신다는 것일까요?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 죄에 대한 벌을 대신받고 그 죄를 용서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은 한 손해보험회사였습니다. 손해보험이란, 예를 들어, 건물에 불이 났거나 배가 항해 중 침몰했을 때 생기는 손해를 대신보상해주는 제도입니다. 따라서, 손해보험에 가입하면, 건물이나 선박의 주인은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더라도, 보험회사가 제공하는 보상을 통해서 원래의 상태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고의 위험이 높은 물건들은 보험회사에서 받아주지 않거나, 보험료를 높이거나, 담보범위(coverage)를 제한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고의 위험이 없는 물건만 위험을 담보하는 손해보험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안에서는 이야기가 전혀 다릅니다. 어떤 점에서는, 손해보험이 위험을 담보(cover)하는 것이나, 예수님께서 죄를 담당(cover)하시는 것이나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손해보험은 사고의 위험이 없는 물건만 받아주는 반면, 예수님께서는 모든 죄인을 다 받아주십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인자로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하시면서 여러가지 일들을 하셨습니다.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쫓으시고, 천국 복음을 가르치시고, 제자들을 키우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하신 또 한가지 중요한 일은 사람들의 죄를 예수님 앞에 드러내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의 절정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받는 데서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그의 백성으로 택하신 이유는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목이 곧고 (출애굽기 32:9) 패역한 (민수기 14:33)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들과 우상숭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켜 차라리 소돔과 고모라 땅의 사람들이 그들보다 낫다고 하십니다. 이들은 결국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는 죄까지 범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죄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누가복음 23:34).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용서의 기도를 드리실 때, 주님 앞에는 사람들의 죄의 민낯이 남김없이 발가벗겨져 드러나 있었습니다. 이를 앞에 두시고 주님께서 용서의 기도를 올리신 것입니다. 이것은 죄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 기도는 가장 극악한 죄를 앞에 두시고 하신 용서의 기도임으로, 이 용서의 은혜에 포함되지 않는 죄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온 세상의 죄를 다 드러내고, 동시에 온 세상의 죄를 다 덮습니다. 사람들은 온전한 죄(total sin) 가운데 있으며,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온전한 은혜(perfect grace)를 베푸십니다.

 

두 개의 십자가.png


십자가는 본래 중죄인을 처형하는 사형틀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죄인인 우리들이 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위 그림 중 왼쪽에 있는 십자가가 우리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짓는 죄는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 이웃에 대한 사랑 없음, 자신을 높이는 교만, 그리고 하나님 대신 세상 재물과 쾌락을 더 사랑하는 우상 숭배입니다. 이 죄들은 하나 하나가 다 하나님께서 지극히 미워하시는 치명적인 허물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신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죄들을 십자가에 들어올리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우리 대신 주님께서 이 죄들을 다 지시고 심판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 심판의 고통을 당하시는 예수님께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시며 부르짖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7:46). 이렇게 세상의 모든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지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세상의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이제 죄의 역사는 다 끝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지 세상의 죄를 가져가신 것만이 아닙니다. 이 십자가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위 그림의 오른쪽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든 의(righteousness)를 이루셨습니다. 그 의란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신 것이며, 자신을 죽기까지 낮추신 것이며, 죄인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사랑하신 것이며, 또 세상의 유혹을 죽기까지 저항하심으로 시험을 이기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든 좋은 것들을 다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본래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아들이시며, 따라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셔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셔야 했을까요? 이는 죄인들에게 그 의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희생으로 이루신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주시고, “자 이것은 네 것이야!” 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 대신 죄의 십자가를 지시고, 대신 우리에게 의의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주님과 죄인의 십자가.png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죄의 끝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 의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자면, “진노의 심판이 십자가에서 끝났으며, “은혜의 축복이 십자가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시대가 끝나고, 성령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라고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궁극적인 목적은 그를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단순히 성령을 주신다고 하지 않고,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세례란 죽음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심은 단지 우리의 삶을 도우시며 개선하기 위해서 아닙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심은 우리의 모든 과거의 육적인 삶을 죽이고,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영적인 삶을 살도록 다스리시기 위해서입니다. 곧 우리의 로 임하시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영적인 삶을 살 능력과 지혜와 기쁨이 다 성령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는 우리의 영적 생명의 심장과 같습니다. 우리의 몸에서 심장은 온 몸에 피를 공급합니다. 신선한 피는 온 몸을 두루 다니며 산소와 영양분을 전달하고, 동시에 이산화탄소와 노폐물들과 거두어들입니다. 따라서 심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면 몸 전체가 쇠약해지고 온갖 질병에 노출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희미해지면, 우리 안에 죄의 노폐물들이 쌓이며 성령께서 일을 하실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과거의 육신적인 삶, 율법 아래 종 된 삶,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 은혜가 살아있을 때만, 이 심장의 박동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은혜로운 삶, 신령한 삶, 행복한 삶, 영원한 삶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며, 우리에게 성령 세례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눈에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지극히 값진 보석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하시기 위해서 주님의 모든 지혜와 사랑과 능력을 쏟아 부으셨습니다. 아들까지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은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이 주님의 눈으로 그리고 주님의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깊이 음미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은혜 가운데 거하며 신령한 복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